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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한강 "노벨상? 글 쓰는 사람은 그냥 글 쓰게 해야"

책소식/출판계 소식

by 최규화21 2016. 5. 2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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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북DB

[현장] 한강 "노벨상? 글 쓰는 사람은 그냥 글 쓰게 해야" - <흰> 출간기념 기자간담회




"예전부터 이 간담회는 예정돼 있던 자리였어요. <흰>이라는 신작을 여러분들한테 소개해드리고, 흰 떡을 맞춰서 여기 오신 분들과 나누자고 얘기된 자리예요. 소박하고 조용한 행사가 될 거라고 짐작했는데, 짐작과는 달리 압도적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자리가 됐네요."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기자들과 만났다. 5월 24일 오전 서울 동교동의 카페 꼼마 2호점에서 열린 '<흰> 출간기념 기자간담회'. 17일 새벽 영국 런던에서, 소설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카페를 가득 메운 기자들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흰>은 <소년이 온다> 이후 새롭게 선보이는 소설. 2013년 겨울에 기획해 2014년 초고를 완성했고, 이후 2년여 간 글을 매만진 끝에 내놓는 작품이다. '나', '그녀', '모든 흰'이라는 세 개의 부 아래 모두 65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책 속 사진은 미디어아티스트 차미혜 작가의 작품이다.



한강 작가는 독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로 말문을 열며, 맨부커상 수상 뒷이야기를 짧게 풀어놓았다. 수상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영국에 갔다고 했다. 신작 <흰>은 2017년 가을 영국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라, 그동안 이메일로만 소통해온 현지 출판사 편집자와 직접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강 작가는 "편안한 마음으로 방문했다가 상을 받고 나서, 기뻐해주시고 고맙다고 해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생각하는 동안 일주일이 지나갔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신작 <흰>에 대한 소개로 이어갔다. 한강 작가는 "<채식주의자>를 완성한 게 11년 전, 책이 출간된 건 9년 전"이라며 "그 뒤로 내 생각들, 질문들이 한 장편소설의 끝에서 다음 장편소설의 시작으로 이어져가는 방식으로 써왔다"라고 <채식주의자> 이후의 창작에 대해 언급했다. <흰>은 한강 작가가 2013년 가을 폴란드 바르샤바에 머물며 쓴 작품. 바르샤바라는 공간은 한강 작가에게 큰 영감을 준 도시였다.



"폭격으로 파괴됐다 재건된 도시에 머물면서 그 도시를 닮은 어떤 사람을 상상했어요. 그 사람이 어쩌면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이 세상에 잠깐 머물렀다 떠난 저희 언니라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에게 삶의 어떤 부분을 주고 싶다면 그건 아마 흰 것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더럽히려야 더럽힐 수 없는 투명한 생명, 눈부신 것들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쓰게 됐어요."



<흰>을 함께 만든 한강 작가와 차미혜 작가는 '소실.점'이라는 전시도 함께한다. 6월 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성북동 '오뉴월'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전시에는 두 작가의 협업으로 탄생한 영상과 설치, 사진 등이 전시된다. 한강 작가는 이에 대해 "언어가 아닌 방식으로 무언가 할 수 있으라는 생각은 못하고 살아왔다"며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서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한강 작가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현장의 취재열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예정된 시간을 넘겨가며 진행된 일문일답. 아래는 한강 작가가 기자들과 나눈 주요 문답 내용이다.





"나는 한국문학 속에서 자라난 사람... 애정도 있고 빚도 있다"



Q <채식주의자> 영문판 번역을 한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할 때 한강 작가와 서로 상의를 했나요? 아니면 결과물을 보고 감수를 했나요?



<채식주의자>라는 책은 그동안 여러 언어로 번역이 됐어요. 그 책은 제 책이긴 한데 제가 읽을 수 없는 책이잖아요. 번역자와 편집자를 무작정 신뢰할 수밖에 없었죠. 영어로 번역된다고 해서 반갑더라고요. 제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에. 데보라가 처음 번역본 보내줬을 때 굉장히 반가웠어요. 여러 개의 메모와 질문들을 곁들여서 보내줬고, 그렇게 여러 번 왔다 갔다 했죠. <소년이 온다>는 사회·역사적인 맥락, 한국의 특수한 정서를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거라서 더 많이 메일이 오고 갔어요. 한 줄을 설명하기 위해 메일 한 페이지를 써야 했을 때도 있었어요. 점점 더 긴밀하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Q 우리나라에 훌륭한 작가가 많습니다. 한국 문학의 발전 가능성 혹은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글자 그대로 한국 문학 속에서 자라난 사람이에요. 계속해서 한국 문학 작품을 읽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 문학에 애정도 있고 빚도 있습니다. 많이 읽히길 바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런 것(맨부커상 수상)은 화제가 되지도 않을 만큼 많이 일어날 거라고 믿고 있고요, 지금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돼요. 좋은 번역자도 많이 나타났고 외국의 편집자들도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어서 이제부터 시작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영문판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 느낌은 어땠는지 궁금하고요. 영문판 번역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채식주의자> 번역본을 받았을 때 제가 <소년이 온다>를 쓰고 있던 시점이었어요. 쓰고 있는 소설이 더 중요하니까, 톤이 잘 가고 있는지 정도의 관점으로 봤어요. 저는 소설에서 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목소리를 담는 것, 목소리의 질감 같은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데보라의 번역은 저와 똑같이 톤을 가장 중요시하는 번역이었어요.



제가 놀랐던 것은 <채식주의자> 1장에 보면 주인공 영혜가 유일하게 말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을 정확하게 내 감정 톤 그대로 번역했다고 느꼈어요. 뭔가 마음이 통했다고 느꼈어요.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요. 저는 원작에 충실하다는 것의 기준은 감정과 톤의 전달에 있다고 생각해요. <소년이 온다>는 역사적인 맥락을 그대로 놔두면 잘 모르기 때문에 편집자와 같이 상의해서 아주 조금씩 바꾼 부분도 있어요. 반 페이지 정도, 세 부분 정도 편집자와 번역자, 제가 모두 상의를 해서 바꿨어요.



Q 현재의 뜨거운 관심과 압도적인 칭찬의 분위기를 앞으로 글을 쓸 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이 자리가 끝나면, 지금 쓰고 있는 작업도 돌아가서 하고 싶고요. 제가 드릴 말씀은 다 드린 것 같고, 더 드릴 말씀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글을 써가면서 책의 형태로 이야기드릴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제 방에 숨어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맨부커상 수상 후에 영국에서 한국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오늘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거든요.(웃음) 출판사 분들이 택시를 타라고 하셨지만…. 바라건대 아무 일 없이 예전처럼 살고 싶습니다.





"<채식주의자>는 조금 불편할 수 있는 소설... 질문으로서 읽어주시길"



Q 맨부커상 수상 당시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그 얘기를 좀 들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시차 때문에 거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졸린 상태였고요,(웃음) 현실감 없는 상태로 상을 받았어요. 다행히 발표 직전에 커피를 한 잔 마셔서 무사히 그날을 마무리했어요. 제 생각에는 제 마음이 담담한 가장 큰 이유는 책을 쓴 지 오래돼서 그런 것 같아요. 벌써 11년 전에 쓴 소설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건너서 이렇게 먼 곳에서 이 소설에 상을 준다는 게 좋은 의미로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당시에는 기쁘다기보다는 참 이상하다는 느낌이었어요.



Q 많은 분들이 <채식주의자> 책을 사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소설은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소설인데요, 질문으로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11년 전에 제가 던졌던 질문에서 저는 점점 나아가고 있고, 계속 나아가고 싶다고 제 책을 새롭게 읽으시는 분들께 꼭 드리고 싶습니다. 희망하는 점이 있다면, 그 소설만 읽지 마시고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동료 선후배 작가들이 아주 많거든요. 훌륭한 작품들이 너무 많은데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Q <흰> 작품에 대해 좀 여쭤볼게요. 번 작품은 소설이라고 돼 있지만 시나 산문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새로운 형식은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새로운 형식으로 써보겠다고 생각하고 쓴 게 아니라, 그냥 썼어요. 처음에는 흰 것에 대한 산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썼는데, 쓰다 보니까 어떤 페이지는 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페이지는 언니를 상상하면서 허구의 인물이 들어오면서 소설에 가까워지더라고요. 끝내면서는 완전히 소설이 됐다고 느꼈어요. 실험의 의지 없이 써가다 보니 실험적인 형식이 돼버린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Q 한글로는 "흰"이라는 한 글자의 형용사 제목을 쓰셨는데, 영어 부제로는 "The Elegy of Whiteness"(엘레지 오브 화이트니스)라고 하셨어요, 제목은 어떻게 붙이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하얀'도 있고 '흰'도 있잖아요. '하얀'하고 '흰'은 느낌이 다르죠. '흰'이라고 하면 삶과 죽음이 다 들어 있는 것 같고, '하얀'이라고 하면 솜사탕 같은 너무 깨끗한 느낌이 들었어요. '흰'이라는 형용사의 상태에 있을 때 삶과 죽음의 서늘함이 다 담긴다고 생각했어요. 영국의 편집자와 이야기 나누다가 '하얀'과 '흰'의 느낌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영어로는 다 똑같아서 그것을 표현하려면 이렇게 제목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물어보더라고요. 어쩌면 이 영문 제목을 부제로 넣으면 한국 독자들도 '흰'의 느낌을 조금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부제를 붙이게 됐어요.



Q 맨부커상 수상 이후에 노벨문학상 얘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작가로서 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아주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고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는 글을 쓸 때 글을 읽는 독자를 생각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제가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과 바람 사이에서 흔들리면서 글을 쓰다가 완성이 되면, '어떻게 되긴 됐네' 하는 느낌으로 끝나거든요. 상이라든지 그 다음의 일들에 대해 생각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할 것 같아요. 글 쓰는 사람은 그냥 글 쓰라고 하면 좋겠어요. 상이라는 건 책이 완성된 다음의 아주 먼 결과잖아요.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채식주의자> 세계 27개국 계약... 인도 남부 소수언어로도"

기자간담회에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세계에 소개한 에이전트,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도 함께 자리했다. 그는 한강 작가에 대한 세계 출판계의 따끈따끈한 반응을 전했다. <채식주의자>는 27개국과 출간 계약이 완료됐다. 이구용 대표는 "아직 한강 작가한테도 말하지 않은 새로운 소식"이라며, 인도 남부의 소수언어로도 번역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도에서는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가 함께 출간될 예정이다.

중국에서도 신작 <흰>을 포함해 한강 작가의 모든 장편소설을 출간할 계획이다. <소년이 온다>는 11개국과 출간 계약이 완료됐다. 이구용 대표는 "<흰>에 대한 관심은 수개월 전부터 있었다"며 "한국어판은 이미 해외 에이전트에게 전달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다른 작가들이 표현하지 않은 독특한 방식과 작가의 자전적 메시지가 어우러져 많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흰>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사진 :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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