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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박세길 “청년세대, 2017년 대형사고 안 치면 설 땅 없다”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5. 9. 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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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박세길 “청년세대, 2017년 대형사고 안 치면 설 땅 없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다현사)>의 저자 박세길. 그를 이렇게 소개하는 기사는 이 기사가 마지막이 되었으면 한다. <다현사> 이후 17년. 박세길 작가가 다시금 ‘한국현대사’를 제목으로 내걸고 ‘미래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작가’로 거듭나기 위한 책을 냈다.

이번에 그가 주목한 것은 청년세대다. “민주화와 경제성장은 왜 보수정부와 삼포세대를 낳았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청년세대의 삶을 한국현대사에 비추어 설명한 책,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이 그것이다. 박세길 작가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청년세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현대사 사건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현재부터 과거로, 다시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열한 가지의 질문들을 통해 꼬일 대로 꼬여버린 청년세대의 현실을 뿌리부터 살펴본다.

그가 오늘날 청년세대에게 던지는 힌트는 “퀴 보노(Cui Bono)?”라는 짧은 질문이다. ‘누가 그 일로 인해 이익을 얻는가’라는 뜻의 질문. 복잡한 현실을 볼 때나 쉽게 이해되지 않는 역사의 순간을 볼 때, “퀴 보노?”라는 단순한 질문을 던져보면 의외로 쉽게 답이 보인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누가 이익을 얻는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해 누가 이익을 얻는가? 분단과 냉전 해체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통해 누가 이익을 얻었는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그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사람 중심의 세상’이라는 대안 역시 아직은 명쾌한 ‘정답’보다 숱한 질문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박세길 작가의 표정에는 희망과 기대가 역력했다. 그가, 2017년 ‘촛불세대’에 의한 ‘대형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Q 프롤로그에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성찰과 탐색의 시간을 보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0년간의 성찰과 탐색을 1차 결산한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하셨는데, 성찰의 화두는 무엇이었나요?

지금 청년세대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발휘한 현대사는 IMF 외환위기예요. 성찰의 화두는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는 뭔가’라는 거였어요. 외환위기 이후에 항상 따라붙는 질문인데 쉽게 답하기는 어렵죠. 솔직히 (이 책을 쓰는 데) 자신이 없었어요. 제 글 스타일이 너무 구닥다리라서.(웃음) 마침 원더박스 정희용 편집장을 만나서 많이 도움을 받았죠.

Q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다현사) 이후 근 20년이 지났습니다. ‘자신의 경쟁자는 자신’이라는 점에서, <다현사>는 너무 강력한 경쟁자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부담감이 굉장하죠. 지금도 어디 가면 ‘<다현사> 저자 박세길’이라고 얘기해요.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에서 과거의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그렇게 얘기하는데, 굉장히 부담스럽고 솔직히 말하면 불편합니다. ‘<다현사>의 박세길’이라고 하면 과거를 추억하는 의미에서 박세길일 뿐이에요. 미래의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루빨리 ‘다현사 저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어요. 이 책(<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이 ‘새로운 박세길’이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Q 책의 맨 앞에 “어제의 청년이 오늘의 청년들에게”라고 써뒀습니다. 책의 내용을 보면 지금의 청년세대에 대한 40~50대 기성세대의 미안함이 정서적으로 깔려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우리 세대들은 나름대로 지킨다고 지켜왔어요. 신자유주의 모순을 정면돌파 하지는 못한 채 자기의 이익을 지킨다고 지켜왔는데, 그 덤터기를 청년들이 뒤집어쓰게 됐어요. 그런 상황에 대해 미안함이 없다? 그건 정말 심각한 거죠. 안철수가 젊은 세대의 호응을 얻은 까닭은 말 한마디 딱 잘 했기 때문이에요. “미안하다.” 우리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첫 번째 메시지는 ‘부채의식을 가져라’ 하는 거예요.

Q 책 제목처럼 “열한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답을 찾는 형식으로 내용이 구성돼 있습니다. 그 질문들은 어떤 기준으로 정한 건가요?

해답을 찾는 출발은 질문을 제기하는 거잖아요. 해결은 과제를 던지는 것에서 시작하고. ‘이 시대 청년들의 입장에서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이 뭘까’ 생각했죠. (질문이) 이어지는 겁니다. 첫 번째 ‘청년들의 고통은 어떻게 시작됐나’에서 시작해서, 외환위기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으니까 또 외환위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죠. 그럼 그 사이에 진보세력은 뭘 했나 또 묻는 겁니다. ‘답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해서 2부에는 과거로 가보고, 다음에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해서 새 희망의 단초를 찾아보는 질문으로 마무리된 겁니다.





Q 정규직 경력 일자리 위주의 채용,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청년주거 문제 등의 현실을 통해 기성세대의 탐욕을 꼬집어주셨습니다.

탐욕 더하기 어리석음이죠. 나중에는 부메랑으로 돌아왔잖아요. 구조적인 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은 접어둔 채, 당장의 자기 이익만을 지키려다 보니까 결국 너나없이 다 바보가 된 거예요. 부동산에서 아주 극명하게 드러나죠. 저부터, 집에 가다가 부동산 중개사무소 앞에 집값 시세 써붙여 놓은 걸 보면, ‘우리 아파트 값이 올랐네’ 그러면서 뿌듯해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게 아무 도움이 안 돼요. 대부분 집이 한 채잖아요. 집값 올라봐야 내다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식 세대들은 그만큼 부담이 더 늘어나는 건데 뭘 좋아하는 거냐고요. 그런데도 대부분은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도 모르고 집값에 목을 걸어요.

정치권이 조작하는 면도 강하죠. 그것만 ‘펌프질’ 하면 표가 된다는 걸 알고. 수준 이하의 코미디가 펼쳐지는 거예요. 냉정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민주정권이라고 일컬어지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할을 했죠. 그게 지금 청년들에게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에요. 한때 냉소주의가 극에 달했던 이유도 그게 아닐까 싶어요. 그나마 자기들이 믿었던 정치집단이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가해자로 다가왔으니까요. 그 냉소주의가 극단화된 것이 ‘일베’예요.

Q 청년세대에 대한 이런저런 규정들이 많습니다. 88만원세대, 삼포세대, 20대 개새끼론……. 그중 작가님이 가장 의미를 두는 세대규정은 무엇인가요?

안타까운 게, 그동안 수많은 규정들이 있었습니다만 진보개혁세력에서는 부정적인, 어두운 면을 많이 강조했어요. 거꾸로 보수세력에서는 긍정적인 면 위주로 규정해왔어요. P세대(참여 Participation, 열정 Passion, 잠재적 힘 Potential Power, 패러다임 변화 Paradigm-shifter), G세대(녹색 Green, 세계화Global) 하는 식으로. 저는 이 점을 잘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긍정과 부정의 두 면을 함께 봐야 됩니다. 현재로서는 ‘촛불세대’라는 표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부정적인 현실 속에서도 미래지향적 에너지를 펼쳐낸 것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였단 말이죠. 여기에 저는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한국이 단기간에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 원동력은 평등주의 지향을 품은 국민들의 열정과 헌신이었다.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저축률, 여전히 세계 수위를 차지하는 교육열은 성장 엔진에 끊임없이 기름을 부었다. 과감하고 도전적인 기업 창업과 투자 열기, 모험을 감수한 경영자들의 열정도 경제 도약의 중요한 견인차였다. 만약 이러한 요소가 없었다면 어느 누가 지휘봉을 잡더라도 한국의 산업화는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진짜 주역은 단연 국민들 자신이었다.(174쪽)



Q 인터뷰 서두에, 청년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현대사가 외환위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책에서는, 미국과 세계자본이 한국을 신자유주의 체제 이식의 타깃으로 삼았다고 분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한국이었을까요? 한국은 미국의 오랜 우방이고, 정치․군사적 목적을 위해서라도 잘 살게 놔둘 필요가 있었을 텐데.

그 전에는 소련이 살아 있었잖아요. 한국은 반소전선의 보루,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쇼윈도였죠. 그때는 (미국이 한국을) 뜯어먹으면 안 돼요. 오히려 잘 먹여줘야죠. 과거에는 한 나라가 ‘반미’ 노선을 채택하게 되면 바로 사회주의 진영으로 떨어져나갔단 말이에요. ‘도미노효과’로 다른 나라들도 주루룩 떨어져나갔는데, (소련 붕괴 이후) 이제 갈 데가 없는 거예요. 미국은 홀가분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거예요. 거기다가 (한국경제가) 살도 많이 쪘잖아요. 그만큼 월가 금융자본은 배가 고팠고요. 한국은 최적의 먹잇감이었어요. 냉전체제 해체라는 게 현대사와 우리 삶에 알게 모르게 파괴적인 영향을 많이 미친 거예요. 

Q 외환위기는 김영삼 정권의 과오지만 신자유주의 체제 도입은 김대중 정권의 과오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은 빠른 시간 안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했다는 항변을 하기도 합니다. 김대중 정권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요?

상대가 미국 아닙니까? 전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 역사는 그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치달았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를) 대안으로 인식했다는 것. 마지못해서 한 것이 아니었다는 거죠.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면 역사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거예요. 하지만 적극적인 신자유주의 드라이브 때문에 단기간 안에 신자유주의 체제가 이식되고 한국사회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지경까지 온 거죠.




Q 최근 들리는 그리스의 경제위기 소식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과거 우리의 외환위기 때도 생각이 나는데요, 채권단이 요구한 긴축안을 국민투표로 부결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도 채무불이행 선언을 했어야 해요. ‘너 죽고 나 죽자’ 했을 때 타협의 여지가 생기는 거거든요. ‘같이 죽을지 같이 살지 방법을 찾자’ 하면 같이 살 길을 찾을 수 있거든요. 결국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우리 외환위기는, 채무액이 그리 큰 편도 아니었어요. 진짜 (세계자본의) 작전에 말린 거예요. 그렇다면 더 센 작전을 썼다면 오히려 저쪽이 “앗 뜨거!” 하면서 충분히 물러날 수 있는 거죠. 그럴 안목과 배짱이 있는 정치가들이 없었다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Q 신자유주의 사회의 대안으로서, 사람 중심의 가치, 사람 중심 세상에 대한 강조가 여러 번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사람 중심의 세상인가요? 표현만 다른 복지국가 아닌가요?

사람 중심의 세상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마저 넘어서는 전혀 다른 개념이죠. 그걸 원활하게 작동시키는 하나의 기제로서 복지가 있죠. 복지라는 게 뭡니까? 국가의 개입을 바탕으로 조세정책을 통한 부의 재분배를 하는 것. 여기는 엄연히 전제되는 게 자본이 중심이라는 거죠. 자본 지배적인 것. (사람 중심의 세상은) 기본 전제가 다른 거예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은 수용하는 새로운 모색이죠.

Q 최근 정의당 대표선거에 나선 30대의 조성주 후보가 “이념 없는 진보도 가능하다”며 2세대 진보정치를 표방한 바 있습니다. 작가님의 말씀과 일면 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주장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건 ‘과거의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진보’라는 의미죠.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나온 얘기라고 보지는 않아요. 저는 2017년 대선 국면이 결정적일 것이라고 봅니다. 청년세대는 이때 뭔가 대형사고를 쳐야만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지, 아니면 설 땅이 없어요. 청년들도 뭔가 그때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고요. 2008년 촛불시위의 힘이 2017년 대선으로 한껏 정치화될 거라고 예상합니다. 그 사이 의식에서 엄청난 진화가 일어났거든요.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을 직감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시대의 주역이 되겠죠. 거기에 이 책이 자그마한 불쏘시개 역할을 해주면 보람 있을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희망을 품게 할 만한 책을 한 권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청년들이 살 길을 찾으려면 세계적인 시각을 가져야 해요. 그중에서도 중국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을 어떻게 우리 무대로 만들 건가.’ 한반도 전체를 보는 통일지향적 관점은 물론, 주변국들을 잘 꿰뚫고 있어야 돼요. 저는 요즘 청년들 만나면 조정래 선생의 <정글만리>를 읽어보라고 해요. 역사도 우리를 객관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는 거잖아요. 시간적으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는 방법도 있지만, 공간을 확장해서 우리를 대면해보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데 상당한 자극제가 됩니다.


지금 우리는 진행 방향이 급격히 바뀌는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다. (줄임) 촛불 시위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게다가 청년 세대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적으로 커다란 공감과 지지를 끌어냄으로써, 20년 이상 한국 사회를 점철해 온 신자유주의적 가치관과 사회문화에 균열을 일으켰다. 한 시대의 마감과 새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총체적 변화가 지금 막 시작된 것이다.(253~255쪽)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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