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해 가을부터 올 봄까지 1년 반 동안, 집안 어른 세 분이 잇따라 돌아가셨다. 한 사람의 ‘부재’를 채 실감하기도 전에 또 검은 양복을 꺼내 입어야 했던 시간. 70~80년을 ‘있던’ 사람이 단 3일 만에 ‘없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그때서야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가족은 ‘유가족’이라는 사실을.
내게는, 우리 가족에게는 그런 슬픔이 오지 않을 거라고 아무리 부정하며 살아도,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를 쓴 김여환 작가는 그런 이별의 순간에 “떠나는 자의 편안한 안식과 죽음 뒤에 펼쳐질 가족의 삶 속에 숨겨진 위로”를 주는 사람이다. 호스피스 의사로서 지켜본 960번의 이별. 그 속에서 그의 기억 속에 각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기도 했다. 김여환 작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환자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기억해내면서, 굳이 슬픔이나 안타까움 같은 감정을 앞세우지 않았다. 담담한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진실함’ 하나로 읽는 사람을 울컥거리게 만들었다.
그의 ‘죽음’ 이야기는 사실 ‘삶’ 이야기였다. 이 책은 죽음 이전과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게 하는 깊은 생각의 밭이다. 그가 “죽음의 법칙을 극복하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꼽은 것은 “건강에 집착하는 노력”이 아니라 “노력의 일부를 인간다운 살아감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나도 알았다. 죽음에 대한 고민은 늘 ‘얼마나 잘 죽을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살 것인가’로 끝나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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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환 제공)
Q 책을 읽고 호스피스 병동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많이 해소됐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여전히 많을 텐데, 호스피스 의사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호스피스 의사라고 하면, 생활의 대부분이 죽음과 연관돼 있는 줄 오해해요. 호스피스 의사는 죽음도 함께 하는 의사이지, 죽음만 돌보는 의사는 아니거든요. 저 역시 어쩌면 죽음에 대해 할 이야기보다는 삶에 대해 할 이야기가 더 많아요. ‘호스피스 의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별로 질문을 하지 않다가, ‘가정의학과 의사’라고 하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할 때가 꼭 있죠.
Q 선생님 스스로는 호스피스 의사가 되기 전에 호스피스 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실제로 일을 시작하고 나서 ‘아 그런 건 착각이었구나’ 하고 깨달은 적이 있나요?
호스피스 의사가 되기 전에는 암성통증을 관리하는 의사로서 그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암성통증이라는 걸 조절하기 위해서는 죽음도 알아야 했고, 삶도 쉽게 해석할 수 있는 가치관을 지녀야 했죠. 마지막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환자와 환자보호자들은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거칠게 변하거든요. ‘태풍의 눈’ 속에 나 혼자 처절히 던져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어요. 태풍의 눈 속은 조용하잖아요. 조용한 가운데 뭔가 터지기 직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죠.
그 상황이 무섭고 두렵기 때문에 많은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들이 그만두는 경우도 있고요. 사실 다음 상황을 볼 줄 알면 아무것도 아닌데, 고요함을 고요함대로 즐기면 되는데, 시간이 걸리는 일이더라고요. 그 태풍이라는 것이 한번씩 반드시 겪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패턴을 알고부터는 견딜 수 있게 됐어요. 그러기까지 5년 이상 걸리더라고요. 호스피스 병동 의료인들을 위한 소진 예방 프로그램들도 있는데 근본적으로는 해결이 안 됐어요. 하나의 도피 정도랄까. 일시적인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Q 선생님의 첫 어린이 호스피스 환자, 열두 살 ‘빈이’ 이야기를 참 마음 아프게 읽었습니다. 선생님을 비롯한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빈이와 함께 동물원 구경에 나서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보는 것처럼 인상적이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그런 외출을 하는 경우가 흔한가요?
당연히 흔하지 않죠. 그러나 환자가 원하면 어떤 경우에도 외출과 외박은 허락했어요. 아흔 넘은 할아버지가 마지막 제사를 모시고 오게 해드린 적도 있고, 큰아들이 억울한 사건에 연루돼 구치소에 있는 할머니가 큰아들 면회를 가시게 해드린 적도 있어요. 딸 결혼식에 가시게 해드린 환자도 있고, 제가 일한 병동뿐만 아니라 다른 호스피스 병동에도 구구절절 사연이 많을 거예요.
Q 책에는 빈이뿐만 아니라 여러 환자들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그런데 매일 숱한 죽음을 ‘선언’해야 하는 호스피스 의사 입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다 간직하고 있는 것도 참 힘들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냥 다 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의미 없는 일은 없어요. 나름대로 슬픔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었거든요. 왜냐면 언젠가 제가 떠난 그 자리에서 어쩔 줄 모르면서 울고 있을 제 딸아이가 보였기 때문이에요. 제 딸을 위로해줄 글을 남기고 싶어서, 환자들에 대한 그 생생한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한 신문기자가 말기 폐암 환자에게 물었다.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쓸쓸하게 대답했다.
“저는…… 그런 것은 선배가 되고 싶지 않은데요.” (67~68쪽)
Q 환자 가족들 입장에서는 숨기고 싶은 이야기도 있을 텐데, 그들은 어떤 뜻에서 이 책의 출간을 허락해주셨나요? 혹시 환자 가족 중에 이 책을 읽고 소감을 전해주신 분이 계신가요?
책에 나온 환자분들 이름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명으로 썼어요. 아직 우리 정서상 자신의 죽음 이야기가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보시고, 빈이 아버님이 고맙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빈이를 기억해줘서 고맙고, 자기들보다 제가 더 낫다고 칭찬까지 해주셨죠.
저는 사실 호스피스 의사로 일하면서, 칭찬을 듣거나 비난을 듣거나 감정변화가 별로 없도록 세팅이 돼 있는 사람이에요. 호스피스 의사는 결론적으로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정의 극과 극을 많이 경험하게 돼요. ‘휘둘리지 말고 살아야지’ 하고 생각을 많이 하죠. 이번에 빈이 아버님이 칭찬을 해주셨을 때는 정말 과도한 칭찬을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감사하지만 한편으로 그 칭찬 뒤에 있는 슬픔이 느껴져서 오히려 더 서글프기도 했어요.
Q 책에 환자의 가족이었다가 자원봉사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사례가 많나요? 가족을 떠나보낸 공간이라서, 호스피스 병동에 다시 오고 싶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사례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드물죠. 우연히 길 가다 저와 마주쳐도 겸연쩍게 눈물만 글썽이면서 피하는 보호자도 있으니 말예요. 황철환 선생은 형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떠나보내고 발마사지 봉사자로 변한 경우예요. 인생에서 한 번만 하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호스피스 봉사가 남달랐죠. 때로는 봉사자가 본의 아니게 환자를 자극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 뒷감당은 의사인 제 차지였죠. 물론 황 선생은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어요.
Q 책에서 선생님이 “이 정도면 대충 얼마나 남았나요?”라는 질문 대신 듣고 싶다고 하신 질문 중에서 하나를 여쭤보겠습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무엇을 가장 하고 싶어 하던가요?”
“안 아프면서 죽고 싶다.” “죽을 때 힘들면 선생님이 알아서 재워주세요.” 등이었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호자들은 마지막까지 환자와 대화하고 싶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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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박지운 그림, 본문 218쪽, 쌤앤파커스 제공)
Q 손수 어머님의 사망 선언을 하신 이야기를 읽을 때, 울컥 하는 마음을 달래느라 혼이 났습니다. 어머님의 죽음이 선생님께 남긴 교훈은 한마디로 무엇이었나요?
“죽음은 내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으로 예방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운명론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요.
Q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임종체험이나 죽음준비학교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그런 프로그램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해서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모의고사 잘 친다고 해서 수능을 잘 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죽음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주어진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들이 마지막에 편하게 마무리하시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죽음에 있어서는 옳고 그른 것은 없는 것 같아요.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163쪽)
Q 선생님은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때 결혼을 하시고 졸업 후 13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결혼하실 때, 다시 의사의 길을 걷게 되기까지 그 시간이 13년이나 될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다시 의사로 살아간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어요. 그래서 의학책도 다 버렸죠. 그 시간을 버티고 다시 도전하게 된 힘은, 어리석게도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열등감 때문이었어요.
Q 글솜씨에 놀랐습니다. 모든 의사가 이렇게 글을 잘 쓰면 저 같은 기자는 먹고살 길이 없겠다 싶은데요, 글쓰기는 언제부터 시작하셨습니까? 글쓰기 노하우도 한 토막 전수 부탁드립니다.
살면서 ‘글쓰기’를 해서 칭찬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상을 타본 적도 없고요. 그러나 건방지게도 호스피스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대구의 한 신문에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라는 칼럼을 쓰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부족하지만 초창기의 글은 정말 부끄럽죠.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나, ‘나는 글 좀 쓰는데……’ 하는 마음은 정말로 없어요. 단지 제 글에는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를 나열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글의 마지막을 중요하게 여겨서, 항상 마무리할 문장을 먼저 써두고 글을 쓰는 편이에요.
Q 책 마지막에 ‘더 읽어보면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이 가운데서 딱 한 권만 골라서 추천하신다면 어떤 책을 추천하시겠어요?
<혼자 가야 해>라는 동화책이에요. 임종실에서 보호자들과 함께 읽은 그림책이죠. 2012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서 시청자에게 3분 정도 읽어줬는데, 그날 책이 100권이나 팔렸대요. 제 책은 안 팔고 다른 사람 책을 팔았네요.(웃음) 제 책보다 훨씬 훌륭한 책이에요.
Q 지난해 10월 갑작스럽게 호스피스센터장 자리에서 물러나셨다 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지난가을 드라마틱한 일들이 펼쳐졌어요. 제게 재능이 있다면 먼 훗날 이 이야기도 재밌게 풀어내겠죠.(웃음) 아직 전업주부예요. 제 딸이 한의대생인데, 한창 일할 나이에 집에서 놀고먹고 있다고 구박을 심하게 합니다. 사실 ‘짐앤닥터(Gym & Doctor)’ 클리닉을 준비 중이에요. 의학을 치료의학과 대체의학으로 구분하자면, 의사들이 주로 하는 건 치료의학이에요. 대체의학의 중심은 음식과 운동이죠. 호스피스 의사로 일하면서, 암을 진단받고 투병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이 할 운동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걷기 아니면 가벼운 등산밖에 없죠. 그때의 고민으로 지금 치료의학과 대체의학을 접목시키는 클리닉을 준비하고 있어요.
조금 더 과학적으로, 사람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도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죠. 그래서 지난 달 스포츠생활지도사 자격증에도 도전해서 합격했어요. 51세의 나이에.(웃음) 호스피스 의사로 살 때는 제가 정말 건강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놀면서 각 운동센터를 기웃거린 결과(필라테스 1년, 보디빌딩 5개월 했어요) 제가 제일 체력이 약했어요. 지금은 복근도 생기고 햄스트링, 삼각근 등이 올록볼록 올라와 있어요. 이번에는 ‘건강을 요리하는 의사’로 변신 중입니다. 월간지에 같은 제목의 칼럼도 연재하고 있고요. 언젠가 그 글들도 책으로 묶어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해주세요.
제가 돌본 ’죽음’ 그 자체는 그리 힘든 것은 아니었어요. 환자들은 단지 죽음 앞에 있었던 ’죽어감’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했어요. 죽음을 미리 배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삶을 더 정성스럽게 살아간다면 갑작스런 죽음이 밀어닥쳐도 절대로 당황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