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인터뷰 시간이 다 돼가자 그는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인터뷰 뒤에 잡혀 있던 식사약속 시간을 미루겠다는 거였다. 미안한 마음에 남은 질문들은 몇 가지만 골라 하겠다고 말렸지만 그는 ‘시간에 쫓기면 자기도 할 말을 다 못한다’며 기어이 점심식사 약속을 30분 미뤘다.
<오세훈,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의 저자로 만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 중장기 자문단으로 페루와 르완다에서 활동하며 그곳의 이야기를 쓴 책이지만, 인터뷰는 두 나라에서 시작해서 대한민국의 구석구석까지 다루며 길게 이어졌다. 지천명을 지난 나이에 지구 반대편 두 나라로 훌쩍 떠나겠다 마음먹은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리고 그가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은 무엇인지, 이 책을 계기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참 많았다.
그는 우리 사회가 성장보다 성숙, 수치보다 가치를 위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화두를 던지며, 젊은이들에게는 개도국으로 나가서 새로운 인생의 경험을 쌓을 것을 조언했다. 작은 어항에 자신의 꿈을 가두고 ‘안정적인’ 인생의 집을 짓는 청년들에게, 넓은 바다로 나가서 소중한 경험을 쌓고 언제 열릴지 모르는 새로운 길을 찾으라는 거였다. 젊은이들에게 안정이 아닌 도전을 주문하며 지금도 “도전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가 다음에는 어떤 도전을 선택할지 궁금하다.
"성장보다 성숙, 수치보다 가치 위한 사회로 발전해야”
Q 고려대 교수가 되신 지 석 달 정도 지났습니다. 근황부터 간단히 말씀해주시죠.
4월 1일자로 고려대 MOT(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MOT는 쉽게 말해서 기술경영, 공대와 경영대의 융합형 대학원이라고 보면 됩니다. 요즈음은 방학이라 다음 학기 강의 준비를 하느라 열심히 책 보고 세미나 하고 있습니다.
Q ‘페루편’ 프롤로그 제목이 “공존의 가치를 만들기 위하여”입니다. 공존의 가치와 페루행, 르완다행은 어떤 관계인지 조금 설명해주시죠.
우리 사회는 전환기를 지나고 있는데요, 성장률은 조금 떨어진 상태지만 계속해서 성장해나갈 겁니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내적 성숙이 이뤄지고 있느냐, 하는 부분은 많은 국민들이 걱정할 정도죠. 특히 세월호 사고를 겪으면서 국민들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불균형 성장이죠. 성장은 했으되 성숙하지는 못한 상태. 책에도 썼지만, 마치 사춘기 아이 같은 거죠. 성숙을 이루려면 가치의 측면에서 조금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야 됩니다.
양보하고 배려하고, 경쟁의 과정에서 넘어진 사람들, 경쟁의 대열에 끼지도 못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같이 가는 게 성숙한 사회죠. 이제는 성장보다는 성숙, 수치보다는 가치 쪽으로 중점이 옮겨가야 됩니다. 그런 얘기(가치 중심의 사회)들을 이제 말로는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걸 가슴으로 받아들이려면 말하는 것 갖고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행동으로 직접 해야 된다는 거예요. 얘기를 하더라도 직접 갔다 온 얘기를 해야 설득력이 만들어진다는 거죠.
Q 페루행을 결심한 것은 이덕수 전 서울시 부시장이 영감을 준 덕분도 있다고 책에 쓰셨는데, 어떤 영감을 줬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예전에(서울시장 시절) 모시고 있던 이덕수 전 부시장님이 에콰도르에 자문단으로 가셔서 저한테 메일을 보내오셨어요. 활동을 1년 연장하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 이거 뭔가 있다!’ 하고 생각하게 된 거죠. 코이카 자문단에 대해서 찾아보니까, 제 생각과 딱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선택했죠. 지금도 그분은 에콰도르를 다녀오셔서 아프리카 르완다에 가 계세요.
처음 목적지는 아프리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라는 나라가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처음에 페루로 간 거예요. 2013년 12월에 페루에 가서 다음해 3월쯤에 우연히 코이카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공고를 봤어요. 마침 르완다에서 도시전문가를 필요로 한다는 거예요. ‘아 이건 운명이구나’ 하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페루에서 6개월 활동 마치고 귀국할 생각이었는데, 거기서 르완다 활동을 지원한 거죠. 임용절차를 페루에서 밟고, 한 달 정도 한국 와서 교육받은 뒤에 바로 르완다로 가게 됐습니다.
Q 중년의 나이에 가족들과 수개월 동안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참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들은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집사람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면 다 이해하고 참아주는 사람이라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애들은 좀 뜬금없다 생각했죠. 아버지가 오십 넘어가지고 페루로 간다질 않나, 이제 한국으로 오나 싶었는데 르완다로 또 가질 않나. 애들한테 좀 미안했죠. 제일 죄송한 건 부모님이었죠. 두 분 다 여든을 넘으셨으니……. 제가 서울시장 그만두고 영국도 가고 중국도 갔어요. 그때는 부모님이 싫은 소리 안 하셨어요. 그런데 페루 간 다음부터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통화할 때마다 “언제 오냐?” 그러셨어요. 마음이 많이 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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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 꿈 이루는 과정은 집 짓기가 아니라 길 찾기”
Q 책의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청년들이여, 개도국으로 가라!”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비슷하게 ‘중동으로 가라’는 발언을 했다가 여론에 의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하하하. 중동은 개도국은 아니고요, (박근혜 대통령 말씀도) 우리나라에 일자리가 없으니까 나가라는 말씀은 아니었을 거예요. 제 얘기는 결이 또 달라요. 인생을 결정하기 위해서 경험해볼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젊은이들이 너무 고지식해요. 젊었을 때 인생을 결정하면 한평생 갈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기회가 여러 번 생겨요. 꿈을 이뤄가는 과정은 집 짓기가 아니라 길 찾기와 같습니다. 길을 떠나면 갈림길을 만나서 망설이기도 하고, 이 길은 넓어 보이고 저 길은 좁아 보여서 이 길로 갔는데 금방 그 길이 좁아지기도 하고, 길이 없어 보이다가 갑자기 탁 트인 대로가 나타나기도 하고, 그게 인생이거든요.
‘코이’라는 물고기는 어항에 넣어 키우면 5센티미터쯤 자라요. 그런데 그걸 연못에서 키우면 20센티미터까지, 강이나 호수에서 키우면 1미터까지 커요. 자기가 사는 세상에 맞춘다는 거죠. 조그마한 어항이 다인 줄 알고 설계도를 그리면 거기 맞는 집밖에 못 짓는 거예요. 제일 큰 실패는 목표를 못 이룬 것이 아니라, 너무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만 이루는 거거든요. 대기업 취직, 공무원 취직, 그런 설계도를 그려놓고 성공해도, 어항에 자기를 맞춰서 성장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기성세대가 여기서 일자리를 못 만들어주니까 나가서 찾으라는 말씀이 절대 아니에요. 정말 큰 실패는 작은 목표를 달성한 뒤에 ‘안정’으로 들어가는 인생 설계를 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정말 후회를 많이 할 수도 있는 선택이에요. 굉장히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혼자 골방에서 심사숙고해서 알게 되는 길이 아니라는 거예요. 6개월도 좋고, 3개월도 좋아요. 나가서 보라는 거예요. 자기가 알고 결정하면 후회가 없죠. 그런데 나중에 ‘살아보니 그게 아니더라’ 하면 억울해서 어떡해요.
Q 르완다편 맨 뒤쪽에 보면 거기서 만난 분들이 직접 쓴 수기가 있잖아요. 페루와 르완다 현지에서 만난 청년들 가운데 모범적인 사례로 소개할 만한 사람이 있나요?
르완다에서 만난 30대 여성 윤효정씨요. 대한민국 미래를 밝게 보는 이유는 윤효정씨 같은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제 딸이라면 “그만하면 됐으니까 (한국) 들어가서 시집가라” 하고 싶을 정도인데도(웃음), 거기서 계속 보람을 찾는 인생을 살잖아요. 그 친구는 한 4년 전에 봉사단원으로 르완다 무심바 마을에 들어가서 마을을 확 바꿔놨어요.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정말 쉽지 않아요. ‘잘돼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건 정말 쉬운데, ‘왜 잘살아야 되는지’부터 설명하는 건 정말 어려운 거예요. 그 친구는 봉사단 마치고 귀국했다가 지금 코이카 ‘관리요원’으로 다시 르완다에 가서 근무하고 있어요.
Q 제가 SNS에 오세훈 전 시장님 인터뷰를 하러 간다고 하니까, 페루 코이카 봉사단원인 남지현씨가 ‘주신 밥솥 잘 쓰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댓글을 남겼더라고요.
그 친구도 참 불가사의예요. 한번은 제가 그 친구 아픈 걸 봤어요. 우리 같으면 ‘한국 가서 몸 좀 추스르고 오겠다’ 할 텐데, 남지현씨는 거기서 버텨요. 남지현씨가 들어간 데는 ‘해 떨어지면 집 밖에 나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치안이 안 좋은 동네예요.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저도 “그만 집에 가라”는 소리가 턱 밑까지 나올 정도였는데, 남지현씨는 안 가고 버텨요. 그런 젊은이들 예를 들라면 끝도 없어요. 윤효정씨나 남지현씨 같은 분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여기 사람들하고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선진국 가서는 그게 안 보여요. 그래서 개도국 가라고 하는 거예요. 일자리가 많아서 가라고 하는 게 절대 아니라고요.(웃음)
Q 남지현씨가 질문도 하나 해주셨습니다. 코이카의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직접 현장에서 보고 느끼신 대로 한번 말씀해주시죠.
우리나라가 아직 국제원조의 역사가 일천해요. 한창 시행착오를 겪을 때입니다. 일을 해본 사람들은 ‘아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은데’ 하는 생각이 왜 안 들겠어요? 그렇지만 선진국은 원조의 역사가 몇 십 년 되기 때문에 그동안 쌓인 노하우가 있는데, 우리는 이제 10년도 안 된 경험을 가지고 누굴 돕겠다고 나간 거 아니에요. 아직 높은 점수를 주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한국 청년들이 일머리도 좋고 코이카라는 조직도 역량이 있기 때문에 참 좋은 평을 받고, 여러 개도국에서 코이카가 와주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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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발령받았을 때 부인이 좋아하는 도시가 경쟁력 있는 도시”
Q 책에서 ‘개도국의 도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치안부터 챙기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 도시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척도 가운데, 중요한 순서대로 세 가지만 꼽자면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세 가지로 말할 것도 없고요, 한 가지로 얘기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척도가 있어요. ‘나 같으면 거기 가서 살고 싶을까?’ 이렇게 질문하면 돼요. 뉴욕에 가서 살고 싶어요? 파리에 가서 살고 싶어요? 살고 싶다는 대답이 나오면 그게 경쟁력 있는 도시라는 말이에요. 좀 더 실감 나게 예를 들어볼까요? 남편이 그 도시로 발령이 났을 때, 부인이 좋아하면 그 도시가 경쟁력 있는 도시예요. 왜 여자의 관점이 중요하냐? 교육이 중요하거든요. 애들을 거기서 키워야 돼잖아요. 여가시간에는 뮤지컬이라도 한 편 볼 수 있어야 하고, 주말에는 즐기러 갈 데가 있어야 돼요. 그런 도시가 경쟁력 있는 도시예요.
Q 책을 보면 서울시장 재임 당시 추진한 사업들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도 보입니다. 재임 당시 가장 애착을 가지고 추진하던 사업은 무엇인가요?
보통 사람들은 아마 눈에 보이는 부분만 아실 거예요.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니 새빛둥둥섬이니 하는 것들만 각인돼서. 사실은 제가 한 것 중에 소프트웨어가 훨씬 많아요. 서울시의 청렴도를 처음으로 1위로 끌어올린 것이나, 120 다산콜센터 같은 거죠. 120 전화 한 번에 민원이 해결돼버리잖아요, 그 전에는 공무원 담당자 찾는 데만 해도 몇 통화 해야 됐어요. DDP 백 개를 합해도 120 하나를 못 쫓아와요.
그리고 제가 무상급식 반대해서 복지 잘 안 한 것 같지만, 복지 시스템이 얼마나 잘 됐는지 몰라요. 복지 시스템은 눈에 안 보이잖아요. 수혜자가 아니면 잘 모르죠. 진짜 어려운 사람들, 경쟁의 대열에 설 수도 없는 사람들이 진짜 복지의 수혜자가 돼야 하거든요. 북유럽 나라 같으면 부유층도 복지혜택을 받아야죠. 그러나 아직은 우리나라의 발전단계가 그렇게 안 돼요. 서울형 복지를 완비해놓은 것, 그런 것이 제 보람이죠.
그리고 서울 공기가 맑아진 것. 서울 시내에 약 9000대의 버스가 있는데, 그걸 전부 CNG(압축천연가스) 버스로 바꿨어요. 탄소 알갱이가 한 알도 안 나와요. 이게 얼마나 큰 도시 경쟁력인데요. 전에는 서울 버스가 다 경유차였어요. 제가 국회의원 시절에 그 법을 만들고, 운명처럼 제가 서울시장에 취임하는 날에 그 법이 시행됐어요. 수도권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 한마디로 저는 하드웨어 시장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시장이었다는 거죠. 이런 얘기는 한 시간도 더 할 수 있는데 참는 거예요.(웃음)
Q 페루편에 이광석 전 비서관과 주고받은 편지를 그대로 실었습니다. 2011년 무상급식 논란과 퇴임 당시에 대한 소회가 담겨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 책 초반에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전문을 실은 건가요?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닙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면 절대 보편적 복지 같은 정책을 들고 나올 수가 없어요.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직 엄청나게 많이 있다는 걸 모르지 않잖아요. 그 사람들을 어느 정도 해결해주고 나서 보편적 복지를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저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은 액수를 나눠준다고 해서 복지국가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쨌든 힘든 사람들한테 복지혜택이 더 가야 돼요.
이제 4년 정도 지났으니까 마음 놓고 이야기해도 다 이해할 것 같은데, 명목이야 좋지만 그렇게 해서 지금 복지국가 됐어요? 감당할 수 있어요? 지속가능해요? 부작용이 없어요? 아무리 공존의 가치가 중요하지만 틀린 건 틀렸다고 하고 공존을 해야죠.(웃음) 이광석 전 비서관이 서울시를 위해서 정말 일 열심히 한 주인공인데 후회하고 마음 약해지지 말라고 그렇게 편지를 보낸 거예요.
Q 그러면 스스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복지모델은 무엇인가요?
빈부격차가 줄어든 상태에서, 기회를 잃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가 진짜 복지국가예요. 그런 나라는 교육 기회가 균등하죠. 뒤처졌다가도 교육을 균등하게 받으면 역전이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때요? 일단 한번 뒤처지면 교육의 기회까지 불균등해지니까 다음 대에 가서도 회복하기가 쉽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뒤처지는 거예요. 거기에 좌절하는 거죠. 우리 부모님들이 열심히 산 이유가 뭐예요? ‘나는 지금 힘들게 살지만 우리 애는 나보다 훨씬 잘 살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잖아요. 최소한 그런 사회는 만들어줘야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그런 점은 제도로서 보완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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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머리 아닌 가슴으로, 손 아닌 발로 쓴 책”
Q 책 속에서 읽은 “도전이 행복하다”라는 문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도전은 무엇인가요?
그걸 나도 모르니까 도전이죠.(웃음) 전 인생을 살아가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데 큰 비중을 둬요. 과거에는 먹고사는 게 너무 중요했어요. 생존이 온 민족의 비전이었어요. 저도 그렇게 컸거든요. 저희 아버지가 아주 빈약한 건설회사의 샐러리맨이셨어요. 이 회사는 정상적인 상태보다 부도난 상태일 때가 더 많아요. 월급이 몇 달씩 안 나와요. 그래서 어렸을 때 부도라는 말을 들으면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아주 끔찍했어요. 어머니는 돈만 꾸러 다니시다가, 결국 봉제 일을 시작하셔서 남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셨어요.
그때는 온 국민이 그렇게 살았어요. 자아를 실현하고 보람을 찾고 하는 비전은 사치였어요. 제가 사법시험을 공부한 것도, 솔직히 말하면 생존을 위해서였어요. 그때는 도전이라는 게 없었어요. 그냥 생존을 위해서 뛰어왔어요. 솔직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정말. 변호사를 하면서 ‘이제 굶진 않겠다’ 하는 생각이 드니까, ‘내가 사회에 뭘 기여해야 되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비전이에요. 가족의 안정과 생존이 충족되니까 그제야 비전과 목표가 생기기 시작한 거죠.
저는 또 방송을 하면서 ‘스타’가 됐어요. CF를 하나 찍으면 몇 천만 원씩 받고 그랬어요. 그런 혜택을 받고 보니까 저도 뭔가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환경운동을 시작했어요. 공추련(공해추방운동연합) 시절부터 환경운동연합이 만들어지면서 거기서 무료 법률상담을 했죠. 거창하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저는 원래 실용주의자니까, 환경운동은 실용적인 기여를 하는 거라서 환경운동을 하게 됐죠. 쓰레기 문제, 대기질 문제, 물 문제 같은 것이 많았죠.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 많았어요.
전 지금도 새로운 시도를 하면 막 피가 끓고 재밌어요. MOT에서 제가 학생들하고 대화하는 게 편할 것 같아요? 이것도 새로운 도전이에요. 제 DNA에 그런 게 있나 봐요. 페루로 나갈 때도 두렵고 그랬는데, 이 책을 쓰면서 ‘이건 내가 처음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니까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코이카 중장기 자문단을 하면서 그 결과를 책으로 펴낸 사람은 제가 처음일 거예요. 그래서 이 책에도 썼지만, 여기에 누가 또 보태기를 바라요. 그게 보태고 보태지면 매뉴얼이 되는 거거든요. 매뉴얼이 쌓인 사회가 선진국이 되는 거예요.
Q 일기 형식으로 된 책인데, 처음부터 책으로 엮을 생각으로 일기를 쓰신 건가요?
처음에는 가족들한테만 글을 써서 보냈어요. 가족들한테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하고 보여주려고 쓴 건데,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그러다가 주변에 있는 참모들한테도 보내자는 생각을 했죠. 그랬는데 반응이 좋은 거예요. 왜 괜히 칭찬하는 거 있잖아요.(웃음) 그래서 또 지인들한테 보내기 시작했고, 르완다 가서는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독자의 범위가 늘어난 거죠.
페루에 가기 전에 페루에 관한 책을 찾아봤는데, 기껏해야 ‘어디 가면 소매치기 조심해라’ 하는 여행서적이거나, 반대로 아주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책밖에 없는 거예요. 그 중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페루를 알아가면서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기왕 글을 쓰는 것, 이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하면 나중에 이 나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구나. 그 과정에 한국 사회를 투영하면 이건 내 글이 되겠구나.’ 그렇게 목표가 부가되면서, 책의 내용이 뒤로 갈수록 조금 변화가 있죠.
Q 그동안 몇 권의 책을 펴내셨는데 ‘저자’로서 이번 책을 한번 자평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어요?
어디에 기준을 둘 거냐 하는 것에 따라 좀 달라질 텐데, ‘머리로 쓴 글이 아니라 가슴으로 쓴 글’, ‘손으로 쓴 글이 아니라 발로 쓴 글’이라는 점에서 보면 스스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머릿속으로 이성적으로 가르치려든다거나 뽐내려고 하는 글은 이 책 속에 한 편도 없습니다. 가슴으로 느낀 것을 그날그날 쓴 글이에요. ‘저는 이런 나라에 와서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는 얘기를 한 거예요. 제 생각과 가치관이 이렇게 바뀌어갔다는 걸 솔직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제가 귀국하고 나니까 사람들이 ‘당신은 뭐가 바뀌었어?’ 하고 참 많이 물어봤어요. 대답을 잘 못했어요. 최근에 마음에 드는 시를 발견했는데, 그 시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목표를 향해 뛸 때는 옆도 뒤도 안 보여요. 그러다 어느 순간 딱 멈춰서면 지금 어디쯤 왔는지 휘 둘러보게 돼요. 그 생각의 흔적들이 이 책에 담겨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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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