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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특집인터뷰 1] “청소년들, <아리랑>으로 민족정신의 모태 배우길”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5. 9. 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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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북DB

[조정래 특집인터뷰 1] “청소년들, <아리랑>으로 민족정신의 모태 배우길”




“36년의 치욕 그리고 분노, 그리고 우리가 했던 저항, 이것은 앞으로 360년의 우리의 정체성이 돼요.”

우리가 <아리랑>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조정래 작가는 이렇게 정리했다. 식민지배와 분단이라는 민족의 비극 앞에서, 인간의 본능인 망각을 붙들어서 독자를 계속 ‘재무장’시키는 것이 소설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독자들이 <아리랑>에 호응한 이유는 “역사적 발견에의 욕구” 때문이었다고 해석했다.

올해는 광복 70년이 되는 해.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이야기가 8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또 무수히 나오겠지만, 그때마다 또 그렇게 반짝 떠들다 지나가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입맛이 씁쓸하기도 하다. 한편으로 ‘광복 70년’보다 ‘건국 70년’을 앞세우려는 움직임 때문에 논란도 일고 있다. 민족 전체의 역사를 남한만의 반쪽 역사로 만들려는 시도에 대해 조정래 작가는 단호하게 말했다. “한마디로 어리석음이에요. 그렇게 한다 해서 바뀌지 않아요. 진실은 하나니까.”

<아리랑> 청소년판 출간을 맞아 진행된 조정래 작가 특집 인터뷰. <아리랑>이 완간 20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청소년 독자들을 만나게 된 것에 대해 “민족의 정신적 모태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소망한다”고 기대를 표현했다. 조정래 작가는 ‘경쟁교육’의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자신이 “몸짱의 원조”였다는 이야기에는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창작 이면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와 문학청년들을 위한 조언까지 이어진 인터뷰에서, 한국 문학계 ‘거장’의 모습과 친근한 이웃 할아버지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Q 근황은 어떠십니까?

제일 중요한 근황은 다음 작품 준비죠. 우리나라 교육문제 지금 심각하잖소. 사교육의 광적인 범람 때문에 작가로서 더 이상 묵인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년에 책을 내려고 작년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해오고 있어요.

Q 듣기로는 원래 그 책이 올해 이맘때 나오기로 돼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렇죠. 그런데 백내장 수술을 해가지고 지금 회복 단계이기 때문에, 의사가 눈을 쉬어주는 게 좋겠다고 해서 1년을 연기한 거예요. 예정대로 했다면 (올해) 6월에는 책이 나왔을 텐데……. 서두를 필요 없죠 뭐.

Q 내년부터 오대산 월정사 숲에 들어가신다던데, 그것도 건강 때문인가요?

그건 아니고,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데, ‘문화올림픽’이라는 말이 있잖소. 그 일환으로 월정사에서 3만 평 정도 터를 제공하고 흔히 얘기하는 ‘힐링’을 위한 명상원을 만드는데, 한 부분에다가 내 집필실을 지어주겠다고 했어요. 600~700미터 고지에, 서울이 (온도가) 30도일 때 거기는 18도. 모기가 없어요. 작년 여름에 한 달 가 있어봤는데 너무 좋아요. 내가 거기서 쓴 원고와 집필 자료들은 다 강원도에 기부채납하고, 강원도는 그걸 영구히 조정래문학관을 통해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게 한다는 조건에 흔쾌히 받아들였어요.

Q 올해가 광복 70년, 또 <아리랑> 완간 20년 되는 해입니다.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고 책을 준비하고 계시다 했는데, 마침 이런 때에 <아리랑> 청소년판이 나온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소회가 어떠십니까?

이것(<아리랑> 청소년판 출간)을 동의한 것은, 우리처럼 역사의 수난이 심한 사람들일수록 역사를 영혼 속에 각인시키고 기억해야만 그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수학 영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민족 역사의 참극을 기억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우린 지금 광복 70년을 맞았는데 똑같이 분단 70년이 돼버렸어요. 분단은 일제시대의 유산인데 그걸 극복 못한 채로 일제시대의 두 배의 세월을 살아버린 이 비극은 우리를 분단시킨 강대국의 책임만이 아니에요. 2차 책임은 우리한테 있어요. 5천 년 함께 살아온 민족이면 마음을 합해 통일하도록 노력했어야 되는데, 7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적대하고 있는 이 상황이 과연 말이 되느냐고요. 그게 광복 70년, 분단 70년 역사의 교훈이에요.

사춘기라는 것은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왜 사는지도 모르고 공부에, 시험에, 경쟁에 시달리고만 있어요. 경쟁이 뭐예요? 내가 살기 위해서 상대를 죽여야 되는 거예요. 잔혹한 거예요 이거. 인간은 경쟁으로 사는 게 아니라 서로 협력해서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거예요. 서로 나눌 때 행복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무한경쟁이라니, 어떻게 인간이 무한히 경쟁할 수 있어요? 무한히 사랑할 수 있어야죠. 그래서 교황이 한국에 와서 ‘무한경쟁이 있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라고 대단한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 무한경쟁의 피곤 속에서 시달리면서 애들이 왜 사는지 생각할 여유도 없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볼 시간도 없고 그래서, 이 긴 소설을 줄여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도록 핵심을 뽑았습니다. 그래서 <아리랑> 청소년판을 내는 데 동의를 한 거였어요.

Q ‘요즈음 사람들은 재미를 찾아 0.1초 만에 관심을 돌리는 데 익숙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더 그럴 거고요. 그런 청소년들에게는 이 청소년판 소설도 꽤 길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웃음)

그 말을 한 것이 20년 전이에요. <태백산맥>을 쓰면서. 이미 그때 소설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까지 있었단 말이에요. 텔레비전이 처음 나왔을 땐 다이얼을 돌렸는데 그 뒤에 리모컨이 나와서 0.1초 만에 장면이 바뀌어버리잖아요. 이러한 시대에 과연 소설이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가, 그것도 대하소설이……. 굉장히 고민했어요. ‘이건 소설 읽기를 방해하는 철저한 적들이다. 문화의 적들이다.’ 그건 싸움이에요, 전쟁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그래서 몇 가지 정리한 게 있어요. 대하소설을 쓰는 데 10년, 20년씩 걸려버리면 작가가 늙어버려요. 신체가 늙음에 따라 의식의 긴장이 풀리면 소설은 더 지루하게 될 수밖에 없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래서 첫째, ‘최대한 시간을 단축한다’. 두 번째,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하느라 지쳐가지고 소설을 들춰볼 시간이 없어요. 그런데도 “여보, 정신 좀 차리고 읽어봐” 하는 게 소설이에요. 사람들이 하루 8시간 노동하는 것의 두 배로 16시간 노동을 바쳐야 돼요. 그러려면 술 마시고 그러면 안 되죠. 술 끊어! 스스로를 완전히 전쟁을 하는 전사처럼 만들어버렸어요. 감동이라는 게 뭐예요? 상대방의 영혼을 훔치는 거예요. 그들이 도둑 맞은지 모르게. 그러려면 그런 노동을 집중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리고 구성도 뒤로 갈수록 장면 이동을 빠르게 했어요. 리모컨으로 장면 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 소설이 읽히려면, 뒤로 갈수록 급진적으로 긴박하게 사건이 움직여야 돼죠.

그렇게 세 가지를 동시에 소설에 집어넣었어요. 소설은 언어 기하학이에요. 언어로 쓰는 기하학. 기하학에 빈틈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어떻게 하면 독자들을 끌어들여서 놓지 못하게 할 건가, 여기까지 구성이 끝나야 되는 거라고요. 나한테 ‘왜 술 끊고 소설 썼냐’고 묻는 작가는 바보예요. 이런 시대에 그런 종합적 고민을 하지 않고, 독자들보고 자기 책 안 읽는다고 푸념하고 있으면 돼요? 소설 읽기를 방해하는 수많은 매체들을 뚫고, 무찔러서 꼼짝 못하게 만들어야 될 거 아니냐 말이에요. 독자들이 내 소설을 읽느라 하룻밤을 새웠다면 나는 백 밤, 천 밤을 새운 거예요. 그런 노력들이 청소년 독자들한테도 유효하겠죠.




Q 청소년들한테 선생님은 할아버지 세대잖아요. 그런데 이미지와 다르게(?) ‘트렌디’한 면이 있어요. 젊은 세대가 즐겨 듣는 라디오 ‘컬투쇼’에 출연하신다거나, 작품 속에 인터넷 용어나, 이모티콘도 쓰신다거나. 그런 것도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소설의 적들과 싸워 이기기 위한 노력인가요?

문화와 문명이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것, 그 현실의 반영이 소설이에요. 현실의 삶이 반영되지 않은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고요. 인간의 삶을 관찰하고 투시하고 그것을 총체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소설이에요. 그러다 보면 변화하는 현실이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표현될 수밖에 없잖아요.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 속 삶의 문제점과 갈등을 해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쓰다 보면 당연히 그게(젊은 세대의 언어가) 나와야만 되죠.

Q 선생님의 청소년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청소년 조정래’는 어떤 아이였나요?

조금 특이했어요. 농촌이었으니까 집집마다 닭 안 키우는 집이 거의 없었어요. 근데 어느 날 문득 외삼촌이 기르다가 두고 간 닭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니까, 달걀이 나오는데, 물컹해요. 나오는 순간 굳어지는 거예요. ‘내가 잘못 봤나?’ 또 보니까 똑같아요. 배 속에 있을 때는 물컹물컹해요. 산소와 접촉하면서 탁 굳어지는 거예요. 그런 걸 글로 써요. 외삼촌에 대한 그리움을 그걸로 연결시켜요. 선생들이 탄복하죠. “아 이 쪼그만 놈이!” 그러니 계속 글쓰기는 1등이죠.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관찰하는 거죠.

벌교에 뚝방이 있어요. 물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거기에 게들이 살잖아요. 큰 참게가 제일 맛있잖아요. 그놈을 잡으려고 엎드려가지고 갈대순을 잘라서 끝으로 넣으면 (게가) 물고 나와요. 그때 때려잡는 거예요. 소설 <유형의 땅>에 그 장면이 나와요. 소년의 체험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필요할 때 재생시켜 내잖아요. 릴케가 한 문학청년에게 한 대답이 있잖아요. ‘작가가 되려면 끝없이 많은 걸 체험하라. 그걸 다 잊어버려라. 그리고 필요할 때는 완벽하게 재생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비로소 작가가 될 수 있다.’ ‘삐비’라는 거 알아요? 풀의 어린 순이에요. 그걸 먹으면 달아요. 배고플 때 삐비를 뽑아 먹어요. 삐비 먹을 때의 묘사가 <태백산맥>에 나오잖아요. 아지랑이가 막 올라오는데 그걸 따먹어야 되는 그 애들의 슬픔. 이거 전부 체험한 거잖아요. 50년 만에 깨끗한 사진처럼 되살아 올라오는 거예요.

그게 어떻게 되느냐? 뇌 구조가 다른 거예요. 논리적으로 설명 안 돼요. 그래서 ‘예술가들은 특이한 영혼의 존재’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청소년 시절의 나는 그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보통 애들하고 다른 곳에 관심을 두면서 살았어요. 관찰력, 그것이 쌓여가지고 문학의 길로 가게 된 거예요. 공부는 그냥 적당히 해버리고 다른 데 관심이 되게 많았어요. 그게 축척되는 거예요. 그때의 친구들이 지금도 그러죠. “너는 문학 할 줄 알았어. 소설 쓸 줄 알았어.”

Q 곧 나올 예정인 책을 제가 먼저 봤거든요. 선생님의 문학여행에 대한 사진집을 봤는데, 청소년 시절에 대단한 강골이셨더라고요. 역기를 들고 있는 사진도 있고.

그건 고등학교 때예요. 십대 때 자기과시도 되고 건강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서 운동을 많이 했어요. 고등학교 때 태권도, 그때는 당수도라 그랬죠. 당수도를 시작했는데, 5.16쿠데타가 일어나자마자 ‘깡패 중에 당수도 하는 놈이 많다’ 그래가지고 전 학교에 당수도부를 없애버렸어요. 박정희라는 분이 참 재밌는 분이에요.(웃음) 그래서 갈 곳이 없잖아요. 문예반은 우리 아버지가 지도선생이었으니까 못 가고. 학교가 희한한 학교예요. 학생들한테 특활 예산을 배정해줬으니까. 그래서 “역도부 하나 만들자” 그랬죠. 근육이 멋있잖아요. 난 요즘 유행하는 몸짱의 원조예요 원조.(웃음) 특이하게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Q 보통 글 쓰고 책 읽는 걸 좋아하는 학생들을 보면 약간 유약한 이미지도 있는데, 의외네요.

내가 그 많은 소설을 쓰면서도 지금까지 병이 하나도 없어요. 내가 지금 일흔셋인데, 일흔한 살 때 세 권짜리 소설을 쓴 문인이 백 년 동안 한 명도 없는 거예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데, 한 권짜리는 쓸지 몰라도 <정글만리> 세 권짜리를 쓴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그리고 평론가들이 말하는데, 평생에 대하소설 세 편 쓴 건 나 하나밖에 없대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십대 때 건강을 확보한 것이 큰 자양분이 됐을 거예요.

지금도 소식, 채식, 그리고 매일 국민보건체조와 30분에서 한 시간씩 산책. 하루도 안 어겨요. 내가 <아리랑>하고 <한강>을 쓸 때 취재여행을 세계로 다녔어요. 그때 뉴욕 가서, 호텔 앞에서 혼자 체조를 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이(Hi)!” 그러고. 늙은 동양인 놈이 호텔 앞에서 체조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재미있어요.(웃음) 하루도 안 빼놓고 했어요. 그것이 다 쌓이고 쌓여서 건강을 유지하는 힘이 됐어요.




Q 청소년 시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건강을 위한 선생님의 꾸준한 노력이 없었다면 저희가 이런 작품들을 읽을 수도 없었겠네요.

그러니까 삶이라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천리를 가듯 그렇게 지치지 말고 꾸준하게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가야 해요. 희노애락에 휘말리면 안 돼요. 끈질긴 노력을 해서 안 되는 일이 없어요. 예전에 ‘시골의사’ 박경철이라는 사람이 인터뷰를 나왔다가 갑자기 대본에도 없는 걸 묻더라고요. “선생님 최선을 다한다는 게 뭡니까?” 그래서 “자기 스스로가 감동할 만큼 노력하는 것, 그게 최선을 다하는 거다” 했죠. 쉬운 말로 인생은 딱 마라톤 경주예요. 꾸준히 달리는 자에게 완주의 기쁨이 오죠.

Q <아리랑> 청소년판을 읽는 청소년들이 작품 뒤에 숨어 있는 선생님의 삶의 태도까지 읽으면 좋겠네요.

그럼요. 그래서 우리 아들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필사하라고 한 거 아니오. 당나라 시대부터 ‘열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필사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 있다’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 아들 며느리한테 필사를 시킨 것이고, 그걸 본받아가지고 독자들이 필사 릴레이를 해가지고 (필사본이) 태백산맥문학관에 전부 전시되고 있잖아요. 아마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일일걸요? 한 권도 아니고 열 권짜리를. <태백산맥> 필사를 하니까 독자들이 <아리랑> 필사도 시작했어요. 서너 명이 보내왔길래 아리랑문학관에 전시장을 마련하려고 해요.

Q 지금의 독자들이 선생님의 책을 손에 놓지 못하고 읽는 것처럼, 청소년 시절에 선생님이 손에서 놓지 못하며 읽은 책들은 어떤 것이었나요?

고등학교 때 정음사와 을유문화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냈어요. 일본어판을 중역해서. 책이 굉장히 귀할 때라서 서로 빌려보는 게 미덕이었던 시절이죠. 보성고등학교에서는 세계문학전집 한 질을 갖다놨었어요. 시험 볼 때 애들이 시험 보느라 정신없으니까, 그때 셰익스피어, 헤밍웨이 그런 작품은 거의 다 읽었어요. 에드거 앨런 포 작품은 단편이니까 공부시간에 책상 아래에 숨겨 놓고 다 읽고. 지리 수업 같은 때 딴 나라 면적 이런 거 볼 필요 없잖아요. 그러다 (들켜서) 군밤도 좀 맞고.(웃음) 그때 참 재미있게 많이 읽었어요.

Q 그때 읽으신 책 가운데 지금의 청소년들도 꼭 읽어야 할 책들을 고르자면요.

가릴 거 없잖아요. 세계문학전집 100권 다 읽어야 돼요. 한국문학전집도 100권씩 다 나와 있잖아요. 이미 ‘이건 틀림없이 읽어야 된다’는 가치부여를 해놓은 것이 그거(문학전집)잖아요. 딴 책 말할 필요 없어요. 그래서 난 문예창작과에서 이야기(강연)할 때도 그래요. “그 200권(세계문학전집 100권+한국문학전집 100권)을 4년 동안 기본적으로 읽어야 된다. 그걸 완전히 소화하고, ‘이 사람들이 내가 쓰려고 한 작품을 다 썼구나’ 하고 더 쓸 용기가 안 생기면 문학 하지 마라. ‘잘 썼는데 별거 아니네.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어’ 하는 자신감이 생길 때 문학 해라. 일단 반드시 읽어라.”

그래서 내가 젊은 작가들에게 주는 선물이 있어요. (서랍에서 선생님의 사인과 글귀가 적힌 종이 하나를 꺼냈다) 읽어봐요. (기자 : “문학, 길 없는 길. 읽고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쓰고 쓰고 또 쓰면 기필코 열릴 길”) 문학은 길이 없어요. 이건(“길 없는 길”) 화엄경에 있는 말이에요. 도의 길만 길 없는 길이 아니고 문학도 자기가 찾아가는 거예요. 창작이라 그랬잖아요 창작. 새로운 길이니까. 끝없이 새로워야 되니까. 세 가지(읽기, 생각하기, 쓰기)를 안 하면 안 돼요.


(* 2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정래 인터뷰 2 - “문학은 ‘길 없는 길’... 치열성 없이 작가 못해”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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