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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 언론에 건강한 태풍이 불기를

긴 글/칼럼

by 최규화21 2013. 3. 2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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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놀라운 기사를 봤습니다. 한 기자가 지난해 이른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부정 보도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 기사를 썼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 원희복 선임기자. 그는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 통진당 경선의 진실>이라는 기사에서, 통합진보당 김재연, 이석기 의원에 대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자격심사 합의를 비판했습니다.


그는 취재 결과, 부정선거 의혹의 “결론은 간단하면서도 명확”했다며 검찰의 수사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모두 1735명을 수사해 20명을 구속기소했지만,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구속은커녕 입건도 못 시켰는다는 사실을요. 아이러니하게도 구속된 비례대표 후보 3명은 모두 이른바 ‘탈당파’로, 그 가운데 2명은 맨 처음 가장 강력하게 부정경선 의혹을 제기했던 이들이라는 사실도요.


그는 결론적으로 “새누리당은 그렇다 해도 민주당은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라고 민주통합당을 비판했지만 주목해야 할 대목은 그 아래입니다. 그는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데 우리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분위기에 매몰돼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기 바빴지 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라고 글을 마친 것입니다.


기자는 밥이 아니라 ‘자존감’을 먹고삽니다. 그런 기자가 자신이 속한 언론의 행태를 ‘하이에나’에 빗대며 반성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저 역시 어쭙잖게 기자 명함을 들고 다니는 사람입니다만, 제게는 그런 용기가 없었습니다. 기자에게는 ‘실수하지 않는 것’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봄, 지면 위에 들뛰던 그 날선 말들이 떠오릅니다. 부정경선, 당권파, 경기동부, 종북세력, 폭력집단……. 확인하고 검증할 틈도 없이 쏟아져나온 말들은 제대로 걸러지지 못하고 날마다 헤드라인을 달궜습니다. 한쪽에서는 목숨까지 걸고 저항했지만(분신 자결한 고 박영재 당원), 이미 확신에 찬 언론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 역시 다를 바 없었습니다. ‘조중동’이 아니라 진보언론의 비상식적 ‘매도’는 그들에게 더 큰 배신감과 상처를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원희복 기자의 ‘사과’ 기사는 온라인판에만 게재됐고 종이신문에는 실리지 못했습니다. 원 기자 스스로도 <미디어오늘> 기사를 통해 “개인적인 사과 차원이지 <경향>의 공식 입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고, 편집국장은 관련한 입장을 묻는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답변을 피했다고 합니다. 그의 ‘사과’가 신문사 안에 어떤 태풍을 몰고 왔을지 짐작하기는 힘듭니다. 그의 용기가 아무쪼록 진보언론 내부의 건강한 반성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 역시 반성합니다. 누구의 잘못인지 가려지기도 전에 부정선거의 장본인으로, 패권주의 정치의 주도세력으로, 심지어 종북주의 세력으로 낙인 찍힌 이들에게 사과합니다. 의문 투성이 보도를 보고도, ‘쫄따구’ 기자라는 제 지위만 탓하며 결국 모른 체한 것, 잘못했습니다. 기자라는 무거운 이름의 의미를 다시 한번 뼈아프게 새기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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