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평화의 불씨'를 지킬 사람, 누구입니까

긴 글/칼럼

by 최규화21 2013. 3. 11. 10:34

본문

월요일 새벽입니다. 직장인에게 이 시간은 늘 반갑지 않습니다만, 오늘은 특히 더 피하고 싶습니다. 바로 오늘(11일)은 한국과 미국 군대가 ‘키리졸브 훈련’을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키리졸브 훈련은 2008년부터 매년 봄에 열려왔습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한반도 긴급상황 시 한반도 밖에 있는 미군을 얼마나 빨리 효과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지를 점검하고 집중 연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21일까지 진행되는 이 훈련에 한국군 1만여 명과 미군 3500여 명이 참가한답니다. 통합실시 되는 ‘독수리 연습’에는 미군 1만여 명 등 20만여 명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의 군사훈련입니다.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무력시위입니다.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는 “한반도 정세와 무관한 연례적 한미 연합훈련”이라 했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과거보다 사뭇 심각합니다. 북한은 훈련이 시작되는 11일부터 “정전협정 효력을 전면 백지화해버릴 것”이라며 “마음먹은 대로 정밀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정대로 키리졸브 훈련은 실시된다고 합니다. 답답하고 분통 터지는 노릇입니다. 국민들의 불안감에는 아랑곳 않고 전쟁이라는 파국을 향해 맞서 달리기만 하는 모습이 절망적입니다. SNS에는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비해 11일 학교가 휴교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안감이 퍼지는 와중에 군 장성들은 주말에 군 골프장을 찾아 골프를 즐겼다는 기사도 보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북에서는 “정밀타격”, 남에서는 “정권붕괴”(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 등 날카로운 말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전쟁을 막으려는 지도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청와대부터 국회까지, ‘북한은 도발을 중단하라’는 소리만 할 줄 알았지 ‘평화협상의 테이블에서 만나자’는 소리는 할 줄을 모릅니다. 일촉즉발의 말싸움이 왜 시작했는지 살필 줄 모르고, 무작정 ‘네가 무릎 꿇으라’는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된다고 간단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을 왜 만드는지 뿌리를 살펴야 합니다. 핵을 둘러싸고 그동안 해온 북한과 국제사회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요구하면서, 한편으로 금융과 무역을 봉쇄하고 고립시키는 제재 조치에 앞장선 미국의 행동도 따져봐야 합니다. 물론, 일단 전쟁을 막고 나서 말입니다.


전쟁이 나면 이런 논의들은 아무 쓸모가 없어집니다. 오직 적을 죽이고 내가 살아남는 문제만 유효합니다. 사회적으로도 이성이 마비되고, 본능이나 광기만이 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저런 토론이나 연구보다, 우선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필요해 보입니다. 전쟁을 해서 적을 죽이고 이기는 것이 용기가 아닙니다. 다들 전쟁을 선동하는 말로 핏대를 세울 때, 조용히 평화를 말하고 실천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3월 11일 아침이 옵니다. 오늘 한반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차마 예상하지 못하겠습니다. 불안한 아침, 꺼져가는 평화의 불씨를 모아쥐고, 전쟁으로 치닫는 기차를 막아설 용기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