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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증 하나의 무게

긴 글/칼럼

by 최규화21 2013. 2. 1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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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철탑 위에(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쌍용자동차 해고자), 다리 난간에(유성기업), 종탑 위에(재능교육)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 말입니다. 모진 바람이 사방으로 몰아치는 그곳에서 아슬아슬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그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모습만으로도 제 몸이 다 시립니다.


  그런데 인터넷 신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다보면 참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가끔 ‘저렇게 안 되려면 너무 나대지 말고 고분고분 일해야 한다’는 식의 댓글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펙 열심히 쌓아서 정규직 돼야겠다’거나 ‘나는 능력 있으니까 저런 일 안 겪게 되겠지’ 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하늘’에 오른 사람들을 보면서 얻은 교훈(?)이라는 게 어째 그 정도밖에 안 되는지. 그들의 얘기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고 월급이나 올려달라는 것인가요. 사람을 기계처럼 쓰고 버리는 자본주의라는 하늘, 당신의 머리 위에도 똑같이 있는 그 하늘의 검은 그늘을 바로 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답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 한편으로, 그들의 마음이 이해는(용납은 안 되지만) 됩니다. 저도 한때는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15년 전쯤 됐을까요, 고등학생 시절에 단체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충청도에 있는 큰 장애인 시설이었는데, 거기서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소식지 포장 일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장애체험’이라는 것도 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여기저기 돌아다녀보기도 하고 안대로 눈을 가리고 걸어보기도 했죠.


  체험을 마치고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대개 ‘장애인들의 처지가 이해된다. 앞으로 잘 도와줘야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무슨 생각에선지 “사지 멀쩡하게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몸조심 잘하겠습니다” 하고 말해버렸습니다. 그곳의 상근활동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잠시 제 얼굴을 쳐다보다가 “봉사활동을 왜 왔냐? 그런 마음으로는 여기 올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가 돼보자고 만든 시간인데, 저는 끝까지 제 처지에서 그저 이색적인 놀이(?)를 잠깐 했을 뿐입니다. 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모든 장애인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내 한 몸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보다 훨씬 정의롭고 보람된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노동자들에는 더 그렇습니다. 모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나 혼자 ‘잘나가는’ 일보다 훨씬 정의롭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경쟁’의 시계를 늦추는 것은 내게도 쉽고 이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나는(아니 나만은) 저러지 말아야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자기계발’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둔갑한 ‘처세술’ 책이 서점에 저렇게 많이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죠. 오늘도 출근 준비를 하며 출입증을 목에 겁니다. 명함만 한 크기의 얇은 플라스틱 딱지. 어쩌면 ‘하늘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간절한 꿈일 겁니다. 그들의 꿈을 나만의 욕심으로 독차지해버리지 않겠다고 조용히 약속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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