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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4', 이 숫자를 기억해주세요

긴 글/칼럼

by 최규화21 2013. 3. 1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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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비가 내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울적한 마음이 더 가라앉습니다. 지난주, 멀리 전남 여수에서 들려온 비통한 소식 때문입니다. 14일 여수산단 내 대림산업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나 노동자 6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쳤습니다. 너무도 억울한 죽음. 유족들은 아직 장례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30대 초반부터 50대 초반까지 쌩쌩한 목숨들이 한 순간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좀처럼 황망함을 씻을 수 없나 봅니다. 노동자들은 안전관리에 소홀한 회사를 탓하며 책임을 묻고 있고, 반면 회사는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다고 대응하고 있습니다. 16일 건설플랜트노조가 주최한 집회에는 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공동 진상조사 실시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사연도 듣습니다. 이들은 대림산업 소속의 노동자가 아니라 모두 하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고 합니다. 그 공장에서 가장 위험한 공정의 일당이 11만 원인데, 그 때문에 형제가 같이 그 공정에서 일하다 한 분은 돌아가시고 한 분은 중상을 입었답니다.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는 폭발로 사지가 떨어져나간 동료를 업고 100여 미터를 달렸다고도 합니다. 상상하기조차 무서운 지옥이었습니다.


마음이 미어집니다. 그저 그 자리에서 일한 죄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루하루 거짓말 하지 않는 노동으로 인생을 채워나가던 사람들입니다. 노동이란 신성한 권리라고들 합니다. 임금을 통해 생활의 윤택함을 가져오고 자아실현을 통해 인생을 기름지게 하는 아름다운 것이라 교과서는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은 죄가 되었습니다. 시키는 대로 일한 것만이 이들의 죄. 살아남은 자들도 노동이 두려워질 겁니다.


“일하는 않는 사람, 먹지도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당당하게 먹으려면 부지런히 일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일한 사람에게는 당당하게 먹고 누릴 권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런 권리란 없었습니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마저 간절했습니다. 일하지 않고 먹고살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내일도 오늘처럼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권리, 그것을 바랐습니다.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경제대국 대한민국. 그렇게 잘 먹고 잘산다는 나라에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마저 빼앗긴 사람들이 1년에 2114명입니다(2011년). 일터는 삶터여야 하는데, 꼬박꼬박 하루에 여섯 명씩은 일터에서 죽고 있습니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서 이 숫자를 기억했으면 합니다. 이 숫자가 ‘0’이 되지 않는 이상, 누구도 이 나라를 함부로 ‘선진국’이라 불러서는 안 됩니다.


여수에서 돌아가신 여섯 분의 원혼이 부디 좋은 곳에서 잠드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에 앞서 그들이 왜 죽었는지 밝힐 것들을 밝혀야겠습니다. 사고의 원인부터 사고의 후속조치까지, 그리고 지난해 노동부의 시정지시를 받고도 벌금 90만 원만 내고 넘어간 사실이 이번 사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밝혀져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회사의 마지막 양심을 믿어보겠습니다. 진실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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