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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긴 글/생활글

by 최규화21 2013. 2. 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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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자’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엊그제 오후에는 웬일로 사무실에 손님이 다 찾아왔다. 며칠 전에 자기가 쓴 글을 좀 봐달라고 부탁하신 분인데, 내가 의견을 말씀드리겠다고 하니 찾아온 거였다. 전자우편으로 간단히 답변하고 말고 싶었는데, 좀 억울한 사연이 있는 분이라 전화나 전자우편은 도청이 될지도 모른다고 직접 찾아오신다고 했다.


1990년대 중반 그분이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됐는데, 재건축조합과 건설사, 구청의 비리를 폭로한 죄(?)로 지금까지 돈과 정신적 피해를 겪으며 그들과 싸우고 있는 60대 남자분이었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올리려고 쓴 글은 아니고, 앞으로 1인시위를 하려고 블로그에 자기 사연을 좀 구체적으로 올리려 하는데 남이 보기에 어떤지 봐달라고 했다. A4용지 9쪽쯤 되는 그 글을 읽고 나도 나름 의견을 자세하게 정리해드렸다.


지하 카페에서 30분 정도 차를 마시며 글을 이렇게 저렇게 손보시라 말씀을 나누고 일어서는데, 그분이 ‘뚜러주련?’ 빵집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방을 하나 내미셨다. 얼핏 들여다보니 롤빵 같은 것이 한 줄 들어 있었는데, 뭐 이런 걸 다 주시냐고 웃으며 실랑이를 좀 하다 받아들었다. 고맙다는 말도 몇 번이나 했는데 이런 선물까지 챙겨주신 게 진심으로 고마웠고, 내가 정말 도움이 됐나 싶어서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건물 입구에서 배웅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기분이 좋아서 종이가방을 다시 슬쩍 열어봤다. 아뿔싸, 종이가방 안에는 롤빵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얀 봉투. 꺼내서 주둥이를 벌려보니 푸른색 지폐들이 몇 장 보였다. 황급히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연세가 있으셔서 다행히(?) 멀리 가지 못했다. 얼른 쫓아가서 그분의 겉옷 주머니에 봉투를 쑤셔넣었다. 그리고 정색을 하고 이러시면 안 된다 잘라 말했다.


그분은 다시 봉투를 꺼내 내 손에 쥐여주면서 “좋은 마음에 선물 하나 사주고 싶었다”면서 ‘큰돈도 아니고 뭘 부탁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마누라 화장품이라도 사주라’고 했다. 나는 거듭 안 된다 하고, 그분은 그냥 넣어두라 하고, 몇 분 동안 길거리에서 옥신각신 다퉜다. 결국은 내가 봉투를 길에 그냥 버리겠다 하니 그분이 단념을 했다. 혹시나 다시 내 주머니에라도 넣을까봐 재빨리 인사를 하고는 뛰어 들어와버렸다.


그러면서 지난가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한 재벌 계열 금융회사에 다니다 해고된 시민기자가 쓴 기사가 있었다. ‘회사 어렵다고 정리해고 하더니 회사 돈 횡령해 감옥 간 회장이 백억 원대 배당금까지 받았다’는 게 기사였다. 내가 그 기사를 편집했고 그 기사는 <오마이뉴스> 메인면 ‘꽤 잘 보이는 곳’에 배치됐다. ‘돈 없다 직원 자르고, 회장님은 얼마를 꿀꺽’이라는 식의 제목을 달고 있었던 것 같다.


아침에 기사가 나갔는데, 점심도 되기 전에 전화가 왔다. 그 재벌 그룹이었다. 홍보팀 상무였나 전무였나, 그런 직책이 있는 회사는 다녀본 적이 없어서 잘 기억이 안 난다. 어쨌거나 능글능글한 말투가 인상적이던 그 사람은 <오마이뉴스>를 잘 보고 있다는 둥 참 좋은 신문이라는 둥 칭찬을 한참 늘어놓더니, 내가 본론을 말해달라는 주문을 한 뒤에야 용건을 말했다. 그의 용건은 “꿀꺽”을 좀 어떻게 해달라는 거였다.


기사에 사실이 아닌 게 있는 건 아닌데 제목에 있는 “꿀꺽”이 너무 세서 “위에서 보기에” 좀 그렇다는 거였다. 횡령을 한 건 잘못한 거지만 배당을 받은 건 그와는 별개로 합법적인 건데, “꿀꺽”이라고 하면 그것까지 불법처럼 보이지 않느냐고 나름 자기 주장의 이유도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설득은 성공이었다. 전화를 끊고 데스크와 상의해서, 그 기사의 제목을 ‘얼마를 꿀꺽’에서 ‘얼마를 배당’으로 바꿨으니까.


그렇게 하고 점심을 먹고 들어왔는데, 오후에 누가 나를 찾아왔다. 친구 없기로 유명한 나를 누가 찾아왔나 보니 바로 그 상문지 전문지 하는 사람이었다. 고맙다고 인사하러 왔다고 하면서 명함을 주고는 잠깐 얘기나 하자고 했다. 뭔 소리를 또 하나 들어봤더니, ‘제목 바꿔준 건 참 고마운데 사실 그 정리해고는 회장님이 하신 게 아니니 기사에서 회장님 배당 부분을 빼주면 안 되냐’는 거였다. 뭐 이런 양반이 다 있나.


처음에는 한심하다가, 나중에는 속이 끓었다. 회사 돈 해먹고 감옥 간 회장도 회장이라고, 그 밑에서 월급 받으려고 별 간지러운 소리 다 하는 게 좀 불쌍하기도 하다가, 이런 거 하면서 나보다 월급은 몇 배로 더 받을 거라 생각하니 화딱지가 났다. 그런 건 데스크한테 말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기사의 주제가 그거라고, 절대 못 뺀다고 말하고는, 그만 가주시라고 했다. 그랬더니 내 명함을 하나 받아서 돌아갔다.


사실 그 사람처럼 이런저런 ‘바람’을 가지고 전화를 하거나 찾아오는 기업 관계자들이 꽤 많다. 며칠이 흘러 그냥 그렇게 또 한 건(?) 지나갔구나 생각하고 잊어버릴 때쯤, 사무실로 뭔가가 배달됐다. 떡이었다. 한 말 정도 돼 보이는 양, 아직 따뜻했다. 처음에는 보낸 사람 이름만 보고 누군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상자에 붙은 ‘땡땡그룹’ 명함을 보니 기억이 났다. 헛웃음만 났다. 이 사람 생각보다 더 재밌는 사람이다.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이게 뭐냐고 했더니 ‘오후에 출출할 때 나눠드시라고 보냈다’며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이 떡이 어떤 ‘의미’이고 얼마나 ‘부담’스러운 건지 새삼 확인됐다. 돌려보내겠다고 하니 그 정도는 그냥 받아도 된다고까지 하길래, 다른 곳에 기부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앞으로는 이러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 떡은? 푸드뱅크에 전화했더니 바로 와서 가지고 갔다.


기자는 배부른 직업이 못 된다. 살다 보면 돈 몇 푼이 아쉬울 날이 참 많다. 게다가 ‘진보’ 성향 ‘인터넷’ 신문의 ‘말단’ 기자라면. 그리고 지금처럼 인정이 메말라가는 시대에, 그까짓 만 원짜리 몇 장, 떡 한 상자, 말 그대로 “좋은 마음”으로 훈훈하게 받아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봉투는 엘리베이터에서 남몰래 안주머니로 집어넣으면 되고, 떡은 다같이 나눠먹으면 다 경미한 공범(?)이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 봉투 안에 든 지폐 색깔이 푸른색이 아니라 하얀색(동그라미가 더 많은!)이었다면. 떡 상자 안에 든 것도 떡이 아니라 더 값나가는 다른 무엇이었다면. 사람이 사람임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나는 꼭 나쁜 놈이 돼야지’ 마음먹고 나쁜 놈이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 “좋은 마음”에서 한 걸음씩 양심을 양보하다 보면, 어느새 주위에서는 나를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 나는 다 “좋은 마음”에서 그랬던 거라고, 너도 나처럼 기회가 생기면 그럴 거 아니냐고 항변하게 될 거다. 인사청문회에 불려나온 수많은 공직자 후보들이 그랬던 것처럼. 위장전입은 자식 잘 되라는 “좋은 마음”에서 한 거고, 탈세는 살림살이 걱정 때문에 한 인지상정이라고. 염치가 물러날수록 욕심은 뻔뻔해진다. 봉투 하나, 떡 한 상자로 시작해서, “좋은 마음”과 인정으로 시작해서.


얼마나 더 기자 일을 할지 모르겠다만, 이런 일은 이 정도로 족하다. 빵이든 떡이든 과자든 엿(!)이든, 아무것도 먹이지 말아주시라. 솔직히 먹인다고 뭐가 나오는 ‘영향력 있는’ 사람도 아니고, 위에서 실컷 말했다시피 눈치껏 가려 먹을 줄 아는 사람도 아니다. 지금도 그 봉투를 열어봤다 놀란 게 생각나 심장이 동당거리는 ‘새가슴’. 그동안은 흰 봉투를 보면 결혼식 생각이 났는데, 앞으로 한동안은 떡 생각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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