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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맛보는 지옥... "뚱보여 제발!"

긴 글/생활글

by 최규화21 2012. 10. 2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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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마다 맛보는 지옥... “뚱보여 제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나는 지옥의 존재 역시 믿지 않았다. 하지만 10월 초,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를 한 뒤로 매일같이 지옥의 존재를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결혼을 하면 살림을 차릴 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 당연히 내가 가진 돈으로 서울에서 두 사람이 살 전셋집을 얻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 화곡동과 경계를 두고 있는 동네라 이 정도면 서울이나 다름없겠지 마음을 놓았다. 이사 후 첫 출근을 앞두고 ‘다음 지도’로 길을 알아봤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면 현관을 나서서 사무실에 들어가기까지 정확히 57분이 걸린다고 했다.


  오전 7시 50분, 첫 출근에 나섰다. 환승정류장인 강서구청까지 가는 버스. 사람이 많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예상시간대로 도착. 10분이 조금 못 되게 기다려 가양대교를 건너는 버스로 갈아탔다. 아까보다 사람이 조금 더 많다. 상체와 하체가 일직선으로 서지 못하고 몸이 약간 구겨졌다. 하지만 다섯 정거장 남짓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버스가 정상적으로 달릴 때의 이야기였다.


  버스가 가지 않는다. 분명히 다음 지도는 여기서 10분 정도만 가면 나는 버스에서 내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사무실로 유유히 걸어가고 있을 거라고 알려줬건만. 10분이 지났는지 20분이 지났는지 시계도 볼 수 없는 기묘한 자세로 아무리 구겨져 있어봐도, 버스는 아직 가양대교로 들어가지도 못한 상태였다. 도로에는 같은 입장의 차들이 빽빽하게 서로를 원망하고 있었다. 이것이었구나, 서울의 교통지옥이란.


  버스가 야금야금 앞으로 움직였다 멈춰섰다 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짧은 신음, 또는 한숨이 터져나왔다.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 엄청 불쌍하고 또 애교를 마구 섞은 목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장님 저 은선인데요~, 차가 너~무 막혀서 조금 늦을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이어서 한두 사람이 비슷한 통화를 더 하는 소리를 듣고 9시가 다 됐구나 짐작했다. 꽈배기처럼 뒤틀린 몸이 한계를 알려오고 손잡이를 쥔 손에 쥐가 나려고 하는 순간, 버스는 가양대교를 건너 사람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9시 20분. 다리 건너는 데만 40분쯤 걸린 모양이다. 그렇게 내 첫 출근은 다음 지도의 예상보다 정확히 30분이 더 지나 끝났다.


  그렇게 2주 정도를 보내는 동안 그날그날의 운에 따라 시간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그것이 지옥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버스 문에 매달려 어떻게든 몸을 구겨넣으려는 사람, 버스 문이 안 닫힌다고 그냥 다음 차를 타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못 내렸다고 울상으로 기사님을 부르는 사람, 시간 없으니 빨리 내리라고 채근하는 사람……. 순대 속을 꽉 채운 당면처럼 빽빽하게 뒤엉킨 사람들이 서로에게 날카롭게 뱉어내는 소리들을 듣고 있자면, 정말 여기가 지옥이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속이 좋아서 구겨지고 끼어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아무리 이 순간이 지옥이라도 결국 서로를 서글프게 할 뿐인 싸움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우면 왜 여기가 지옥이겠는가. 내게도 이성을 잃고 야성을 폭발시킬 일대 위기가 찾아왔다.


  그날도 지옥은 강서구청 앞에서 시작했다. 6715번 버스는 배차간격이 12분이다. 출근시간에는 더 자주 오지만 그래도 초만원 버스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 역시나 어렵사리 몸을 접고 뒤틀어서 간신히 손잡이를 잡고 섰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압박감이 심했다. 곤륜산 바위에 깔린 손오공의 마음이 그랬을까. 정신을 차려 고개를 양쪽으로 돌려보니 거의 100킬로그램은 될 듯한 덩치 두 사람이 내 양쪽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키도 크다. 한 사람이 힐끔 내려다봤는데 내 눈빛을 들킬까 얼른 고개를 돌렸다.


  첫 출근 날의 경험에 따르면 이 상태로 나는 길게는 40분을 버텨야 했다. 마음을 비우자고 앞을 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런데 다시 내 마음을 흩뜨려놓는 냄새! 오른쪽 ‘덩치’의 왼손이 내 앞에 있는 세로로 선 봉을 잡고 있었다. 이 양반, 버스를 기다리면서 담배를 꽤나 피워댔나 보다. 정확히 내 코 앞. 직선거리로 10센터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그곳에서 지옥의 향기가 내 콧구멍으로 직행했다.

 

  싱싱한 담배냄새가 신나게 내 코를 농락하고 내 뇌를 침공하고 있었지만, 아직 버스는 가양대교 앞에서 우물쭈물대고만 있었다. 이대로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양쪽의 덩치 덕분에 늑골이 한껏 수축해 있는데 호흡마저 불가능한 상황. 아침도 못 먹은 위장은 위액이라도 쥐어짜내 쏘아올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정말 뱃속에서부터 머리로 뜨거운 것이 서서히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뚜껑이 열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손을 치워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자는 생각 따위 할 정신이 어디 있나. 벌써 입에서는 “아 이 씨……” 소리가 새어나가고 있었다(마지막 음절은 아마도 묵음 처리돼서 들리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아! 내가 지금 누구한테 욕을 한 건가! 상대는 100킬로그램이다!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온몸의 방어신경을 곤두세웠을 때, 그가 몸을 꿈틀꿈틀하더니 자세를 바꿔 다른 손잡이를 잡는 것이었다.


  들었을까? 정말 들었을까? 순간 너무 미안했다. 그의 몸짓으로 봐서 그의 손에서 나는 담배냄새가 문제라는 것까지는 몰랐던 것 같다. 그의 덩치가 너무 커서 내가 힘들어한다고 생각해, 어떻게든 내게 공간을 더 만들어준 것 같았다. 내가 뱉은(아니 ‘흘린’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 한마디가 그에게는 “아 이 새끼 졸라 뚱뚱하네. 숨 막혀 뒈질 것 같아. 저리 좀 꺼져, 뚱보 자식아!” 하는 소리로 들리지는 않았을까.


  그 뒤로는 미안한 마음에 내내 말 그대로 조용히 찌그러져서 도착지까지 숨죽이고 왔다. 이건 내 잘못도 그 뚱보, 아니 덩치씨 잘못도 아니라 수도권의 과밀화 현상을 초래한 국가의 잘못이라고 애써 위로하면서. 


  어쨌거나 나는 내일 아침에도 그 지옥을 견디고 출근을 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은 서로 투닥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혀를 차기도 할 것이고, 어느 날은 가양대교를 건너는 도시철도를 건설하겠다는 대선 후보를 무조건 밀어주겠다는 생각도 할 것이고, 어느 날은 덩치들 틈에 껴서 또 담배 냄새를 맡다가 휴일에는 절에 가서 마음 비우기 수련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게 될 거다. 너 때문에 여기가 이렇게 복잡해졌다고 원망할 때도 있겠지만, 가슴 밑바닥에는 ‘너도 참 힘들게 사는구나’ 하는 안쓰러움을 간직하면서.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저 서로가 서로를 ‘지옥의 원흉’이라 물어뜯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치이고 부딪히고 마음 상하더라도, 이처럼 애써 견뎌내야 할 서로의 하루를 위해 말 없는 위로 정도 건네면서 말이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면, 어떤 놈이 이런 서울에다가 또 재개발을 한다고 지랄인가 그때는 좀 냉정해지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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