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요? 그런 건 없습니다
어리바리 지내다보니 한글날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나는 어디 가서 ‘시인과 기자는 언어에 복무하는 사람, 말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직업은 기자요 꿈은 시인이었던 내게 ‘말을 섬기는 일’이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우리말이 없고 우리 글자가 없었다면 나는 뭘로 밥을 벌어먹고 또 뭘로 꿈을 키웠겠는가. 그런 내가 한글날을 어물쩍 넘어가다니, 이건 새신랑이 장모 생신 까먹는 것만큼이나 죄송한 노릇이다.
하긴 한글날과 세종대왕님을 비롯 집현전과 한글학회 및 국립국어원 역대 선생님들한테 죄송한 것이 어디 이날 하루뿐이랴, 인터넷 신문사에 입사해서 기자증을 발급받은 지난해 봄부터는 내내 죄송한 마음이 가슴속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원천(?)은 바로,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요기조기 뜯어보고 살펴보고 만들어보는 <오마이뉴스> 지면의 맨 꼭대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제호, ‘OhmyNews’다.
시민기자 시절, <오마이뉴스>가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는 토박이말을 신문 구석구석에서 살려 쓴다는 점이었다. 아직 정식기사가 아니면 ‘불을 때기 위한 재료’라고 ‘생나무’, 기사로 채택이 되면 ‘불이 붙어 잘 타고 있다’고 ‘잉걸’, 그리고 메인면에 걸리면 ‘버금’, ‘으뜸’, ‘오름’ 하는 식으로 기사등급을 매기는 것이 참 좋았다. 인터넷 신문이라는 ‘뉴미디어’가 우리의 오래된 것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 신선하고 고마웠다.
그런 <오마이뉴스>에 공식적으로 한글제호가 없다는 건, 입사를 한 뒤에야 알게 됐다. 회사 이름이 영어니까 영문제호를 쓰는 것은 백번 이해한다. 하지만 한글제호도 만들어서 같이 쓰거나, 영문 밑에 조그맣게 한글로 쓴 혼합제호(?)라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톱’이니 ‘서브톱’이니 하는 것들을 ‘오름’, ‘으뜸’ 같은 토박이말로 바꾼 <오마이뉴스>에, 알고 보니 한글제호조차 없다는 것은 <식스센스>급의 대반전이었다.
지난겨울, 2년 동안 살던 ‘지옥의 지하방’을 떠나 3층 원룸으로 이사 갈 때 있었던 일이다. 동네 목욕탕을 하다 은행돈을 빌려 원룸 빌라로 리모델링을 하고 처음으로 세입자를 받는 인상 좋은 집주인 아저씨. 하하 허허 웃으며 계약서를 쓰고 잘 부탁드린다고 내가 명함도 한 장 드렸다. “아, 기자분이시구만!” 하고 놀라더니 “근데 어느 신문산가…” 하고 말끝을 흐리며 명함을 앞뒤로 연신 뒤집어 보는 아저씨.
“편집부 기자”라는 글씨보다 두 배는 더 큰 “OhmyNews”라는 제호를 못 봤을 리는 없다, 글씨체가 또박또박하지 못해서 못 알아봤거나, 아저씨라고는 했지만 환갑이 넘은 나이라 영어를 잘 몰라 못 읽었거나 둘 중 하나 아닐까. 순간 너무 미안해져서 “오, 마, 이, 뉴, 스, 라고, 인터넷 신문사 다녀요” 하고 화끈하게 말씀드렸다.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사람들이 쓰는 말로 이름을 써주는 게 잘못된 걸가.
솔직히 요즘 세상에 ‘OhmyNews’ 정도도 못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되냐고 할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주인집 아저씨 같은 분들은 어차피 인터넷도 안 할 것 같고 신문도 <조선일보> 종이신문만 볼 것 같으니까. 그렇다 치고, 그럼 그런 사람들은 <오마이뉴스>를 영영 몰라도 될까. 미국 가서 장사하려면 ‘홍길동’이도 ‘제임스 홍’으로 이름을 바꾸는 게 유리하다. 한국말로 기사 써서 한국 사람들한테 읽히는 게 우리 ‘장사’라면, 손님들이 기억하기 쉽고 다시 찾을 수 있는 ‘간판’을 달아야 하는 건 기본 아닌가 싶은 거다.
올해 한글날에도 여기저기 포털사이트들은 “다음”이니 “네이버”니 ‘일회용’ 한글 로고를 보여줬다. 그리고 올해 한글날에도 <오마이뉴스>의 한글날 기획기사 밑에는 “회사 이름이나 한글로 바꿔라” 하는 댓글이 달렸다. 참 아프다. 한글날 하루 반짝 써먹는 일회용 한글 로고야 낯간지럽고, 이참에 한글제호를 만들면 어떨까. 내년 한글날에는 한글 무시하는 정부나 언론들 팍팍 ‘까는’ 기사 쓸 수 있도록 우리 코부터 닦아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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