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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떡복기'의 유혹

긴 글/생활글

by 최규화21 2012. 8. 1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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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떡복기’의 유혹





  백과사전 교정교열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 2008년이니까 ‘글 뜯어고치는 일’로 먹고산 지 5년째다. 그 뒤로 잡지 편집 일을 거쳐서 지금 하고 있는 신문 편집 일까지, ‘편집’과 ‘교정’은 엄연히 다른 일이지만 여전히 글을 뜯어고치는 일은 내 일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둥바둥’을 ‘아등바등’으로 고치고 ‘말레이지아’를 ‘말레이시아’로 고치고 ‘에이, 남자가 잘 못했네’를 ‘에이, 남자가 잘못했네’로 고치는 교정교열. 점 하나, 받침 하나에 눈 부라리고 집중해야 하는 일이라 성격이 여간 좀스럽지(?) 않고서는 잘해낼 수가 없는 일이다(내가 아직도 교정교열에 약한 것을 나는 내 성격이 ‘대범하기’ 때문이라고 내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


  이 좀스러운 일을 5년째 밥벌이로 해오다 보니, 직업병이라는 것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거창하게 직업병이라고는 했지만, ‘자라목’이나 손목 디스크처럼 심각한 ‘산재’가 온 것은 아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맞춤법 강박’이라고나 할까. 그 수가 바퀴벌레만큼이나 많다고 ‘바퀴베네’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커피 전문점보다 훨씬 더 많은, 생활 속 구석구석 숨어 있는 오기 또는 오타들을 견디지 못하는 정신적인 질환이다.


  “자신감을 같도록 지도”하겠다는 동네 태권도 학원의 전단지, “화단에 담배꽁추 버리지 말라”라는 옆집 할머니의 대자보, “재화론 쓰레기는 화요일에 버리라”는 빌라 관리인의 안내문 등. 사실 그냥 웃어넘기면 그만인 일들이다. 물론 나도 ‘아니 이런 국어파괴의 현장! 당장 따져야겠군’ 하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도 남들처럼 그냥 보고 재밌다고 웃지만 그 다음, 웃고 나서 그냥 ‘넘어가는 게’ 힘들다는 말이다.


  그럴 때 나는 손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린다. 재미난 설명을 곁들여서, 그냥 웃자는 취지인 것처럼 위장하여! 하지만 내 목적은 단순히 웃자는 게 아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국어파괴의 현장을 대중에 고발하는 것으로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목적도 분명히 있다. “이것 좀 보래~요.ㅋ 여러분은 이러지 마세요^^” 하는 식으로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뭔가 최소한의 의무를 다했다는 위안을 얻는다.


  남이 쓴 글을 볼 때도 이 정도인데, 내 글을 쓸 때는 오죽할까. 이제는 국어사전 없이 글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혹시나 여기서 맞춤법을 틀릴까, 저기서 띄어쓰기를 틀릴까,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는 남에게 보일 수 없는 것이다. “편집기자라는 인간이 자기 글에서 맞춤법을 틀리다니, 찌질이 입만 살았네” 하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 당신은 아는가. 하다못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시답잖은 ‘개드립’을 칠 때도, 나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펼쳐놓고 국어어문규정에 맞게 개드립을 친다!


  나는 몸에 나쁜 것만 좋아하는 못돼먹은 성향 탓에 분식집을 즐겨간다. 내가 분식집에 갈 때도 ‘맞춤법 강박’은 작용한다. 내 머릿속에서 분식집은 두 가지로 나뉘는 것이다. ‘떡볶이’를 ‘떡볶이’로 쓴 집과 ‘떡볶이’를 ‘떡복기’로 쓴 집(‘떡보끼’, ‘떡뽀끼’, ‘떡뽁이’ 등 창의적인 표현들이 무궁무진하다). 물론 나는 ‘떡볶이’를 ‘떡볶이’로 쓴 집으로 간다. 그렇지 않은 집은 절대로 안 가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데 가면 그놈을 고치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해 미친다. ‘레알’ 좀스러워 보이는 짓이라 티는 잘 못 내지만, 나는 그렇다.


  분식집 사장님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떡볶이’를 ‘떡꼬치’라고 쓰지 않는 한, 어떻게 쓰더라도 떡볶이가 떡볶이라는 걸 모를 사람은 없으니. 순전히 내 ‘꼬장’이라는 거 잘 안다. 하지만 나도 변명할 거리는 있다. 나도 원래 이렇게 좀스러운 데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게 내 밥벌이인데 어쩌란 말인가. ‘떡볶이’가 아닌 떡볶이를 허투루 흘려보내서는, 팀장 부장한테 줄줄이 까이고 가뜩이나 이명박 머릿속의 ‘서민생각’만큼도 안 되는 월급과 쓰나미 지나간 지반처럼 위태로운 내 책상마저 위협받는데!


  엄살은 좀 부렸지만, 사실 그 정도의 위기감(?) 때문에 ‘맞춤법 강박’이 생긴 것은 아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가나다라’ 하는 녀석들과 씨름하며 살다보니 그저 나도 모르게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긴 거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매일의 노동 속에, 습관처럼 내게 가장 자연스럽고 익숙한 ‘내 모습’이 하나 만들어진 거다. 


  두어 해 전, 어느 공동체 마을로 손모내기 울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틀 정도 맨손으로 논에 모를 심고 나니 손톱에 발간 흙물이 들어서, 손톱이 다 자라 깎아낼 때까지 빠지지 않았다. 이틀 동안 한 손모내기가 내 손톱을 흙물로 물들이듯이, 내가 지난 5년 동안 해온 노동도 내 몸에 ‘맞춤법 강박’이라는 새로운 습관 하나 물들였다. 내가 보낸 하루, 오늘 내가 한 노동이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 나를 이룬다는 것. 노동은 ‘돈을 버는 일’일 뿐만 아니라 ‘나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내일도 나는 누군가 틀리게 써놓은 ‘가여운 가나다’들을 바로잡으며 일할 것이다. 내 노동이 만든 직업병 아닌 직업병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만, 분식집 메뉴판에까지 빨간 펜을 대려는 증상만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김떡순(김밥+떡볶이+순대)’을 제발 어느 분식집에서나 차별 없이(!) 사랑할 수 있게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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