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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여자가 필요하다... 하나 말고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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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화21 2012. 8. 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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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는 여자가 필요하다... 하나 말고 ‘넷’



  내 방의 이름은 ‘과민성 독거청년’이다. ‘과민성’이라는 말은 내가 달고 사는 ‘과민성대장증후군’에서 가져온 별 뜻 없는 말로, 억지로 갖다 붙이면 내가 보기보다 은근히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뜻도 담을 수 있겠다. 사실 중요한 건 그 뒤에 있는 ‘독거청년’이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혼자 사는 젊은 놈’이라는 뜻인데, ‘혼자 산다’는 것이 왜 내게 이리도 중요한 말이 되었을까.


  서울로 대학을 오느라 고향을 떠난 것이 어언 11년 전. 중간에 2년 반 정도 공익근무를 하느라 다시 고향에 가서 살았으니, 9년 가까이 서울에서 혼자 산 셈이 된다. 물론 중간에 잠깐씩, 기숙사 3인실에서도 살고, 선배 자취방에 얹혀서도 살고, 심지어 총학생회실에서 ‘2만 학우’(?)들과 같이 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을 제외하든 제외하지 않든, 내 기준으로 그 세월은 모두 ‘독거’한 거였다. 왜? 여자가 없었으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내 꿈은 ‘유부남’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당시만 해도 텔레비전 청춘 드라마에 아주 가끔 나오던 대학생 부부를 부러워했고, 대학교 때는 대학을 안 가고 결혼해서 20대 초반에 엄마가 된 초등학교 동기를 부러워했다. 예비역이 돼서 복학하고 나서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취업과 결혼에 성공한 선배를 부러워했고, 사회로 나오고 나서는 그 모든 종류의 유부남들을 부러워하고 존경했다.


  조금 포장하면 가족을 이루려는 열망이 강한 거고, 평범하게 보면 그냥 외로움을 많이 타는 거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여자를 더럽게 밝힌다고 할 수도 있겠다(굳이 부정하지 않겠다. 아무리 외로워도 남자랑 살 생각은 안 해봤으니). 뭐라 말하든 내게는 여자가, 아내가 필요하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방문을 열면 내 방 공기 속에서 나 아닌 누군가가 뱉어놓은 좀 예쁘고 부드러운 이산화탄소가 느껴지길 원한다.


  왜 이렇게 외로움을 많이 타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독거를 탈출해보려고 아등바등 몸서리를 치고도 여전히 독거 상태로 30대를 맞이하면서, 내 외로움은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을 느낀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다 거미줄에 머리가 걸렸을 때, ‘그래도 이 방에 나 말고 숨 쉬는 것이 하나 더 사는구나’ 하고 반가워한 적도 있다. 그리고 매일 같은 사람이 나를 칼로 찌르는데 저기 있는 친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 꿈을 며칠 내내 꾸기도 했다(그게 외로움 때문인지 잠 안 온다고 본 조폭 영화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만).


  어떤 사람은 어릴 적 잠재의식에 남을 만한 ‘무슨 일’을 당한 것이 아니냐고, 심리학 책을 몇 권 읽어보라고도 권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한 두 권쯤 봐도 내 얘기는 하나도 없어서 금세 때려치웠다. 사실 그런 책 보지 않아도 답은 뻔하다. 아내랑 같이 살면 된다. 물론 결혼을 한다고 해서 외로움이 한 큐에 일망타진 될 리는 없다. 오히려 나중에 더 큰 외로움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유부남녀’ 선배님들의 말씀은 거듭 들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도 외로울 확률이 넉넉잡아 50퍼센트쯤 된다면, 결혼을 안 하고 외로울 확률은 100퍼센트다. 아무리 그런 ‘경고’를 해도 내가 결혼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명명백백한 논리 아닌가.


  내게는 확실히 여자가 필요하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마땅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정세는 녹록치 않다. 한 여자 얻기도 힘든데, 어찌된 노릇인지 여자가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네 여자 정도는 필요한 것 같다. 먼저, 누차 강조했듯이 아내가 ‘시급히’ 필요하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엄마’가 필요하다(이 순서는 ‘중요도’ 순서가 아니에요 엄마). 엄마는 누가 뭐래도, 죽어라 안타를 치고 나가도 1루 2루 3루 베이스를 돌고 나면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내 인생의 홈플레이트니까.


  그리고 그 다음은 ‘장모님’이다. 내 성대에서 [ㅈㅏㅇㅁㅗㄴㅣㅁ]이라는 발음이 실제로 나올 날이 언제쯤 올지 모르겠지만, 그분도 똑같은 ‘내 엄마’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 여자는 ‘첫 딸’이다. 이건 욕심이라는 거,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원한다! 어차피 삼신할머니가 정해주는 대로 낳아야 하는 거라면 원한다는 말이라도 해보자. 요즘 같은 여름날 선풍기 틀어놓고 대나무 자리에 누워서 배 위에 딸내미를 엎드려 재우는 거, 그런 사진 한 장 꼭 남기고 싶다. 첫 딸 낳아서 그렇게 키우다보면 아들 나올까봐 둘째는 안 만들 것 같다.


  내가 그 여자들과 하고 싶은 것은 별것 아니다. 같이 얼굴 보고 밥 먹고, 날 더우면 에어컨 아끼지 말고 틀라고 전화 한 통 하고, 가끔은 말 한마디 섭섭하게 했다고 잠깐 투닥거리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돼지갈비 한번 먹으러 가서 금세 다시 웃고 반가워하고 고마워하는 그런 것. 무슨 목적이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더라도 시시때때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하고 걱정하면서, 늘 ‘내 편’으로 살 맞대고 착하게 사는 것. 그뿐이다.


  장가도 못 가고 혼자 살면서 화장실 거미 한 마리에 위안받는 ‘찌질이’ 주제에 네 여자나 필요하다니, 분수 모르고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모두 ‘합법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관계니까 네 여자를 사랑하며 사는 게 죄가 되지는 않겠지. 내 나이 서른하나. 다섯 달 뒤면 벌써 서른둘, ‘독거 10주년’이다. 독거 10주년 기념(이 아니라 위문?)행사를 하기 전에 이 방의 이름을 ‘과민성 동거청년’으로 바꿀 수 있을까? 아, “비싼 밥 먹고 심봉사 서클렌즈 끼는 소리 하지 말고 엄마한테나 잘하라”는 엄마의 짱짱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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