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의 꿈, 문제는 ‘두꺼비’다
나는 신간 담당 기자다. 정확히 말하면 ‘시민기자 서평단’을 관리하는 기자. 어쨌거나 일주일에 수십 권씩 신간을 받아보는 호강을 하는 덕에, 매주 신간 소개 기사도 하나씩 쓴다. 그런데 이 기사는 내가 봐도 참 편파적(?)이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의 책들만 주로 소개되기 때문. 뭐, 욕하고 싶으면 욕해라. 원래 기자란 기자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기자가 전하고 싶은 팩트들만 골라 전하는 편파적인 인간들이다.
내가 소개하는 책들 가운데 ‘귀농’에 관한 책들이 꽤 된다. 그 말은 곧 내 머릿속에 귀농이라는 말이 당당히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는 소리다. 보기와 다르게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귀농이라니. 흙이라고는 대학 시절 농활 가서 만져본 것이 전부인데(그나마도 대부분 술에 취한 상태에서!) 말이다,
솔직히 20대 중반 정도까지만 해도, 나는 ‘귀농’을 ‘도피’쯤으로 여겼다. 특히 진보운동을 하다가 귀농해서 생활한복 입고 수염 기르고 선생님 소리 들으며 사는 어른들을 보면, 피 튀기는 현장을 버리고 저만 속 편하자고 조용한 데로 ‘짱박힌(죄송합니다. 그때 생각이 그랬다고요)’ 비겁자라고 욕하기도 했다. 그때는 아무래도 내 머릿속에, 내가 하는 운동이 지상에서 가장 선한 행위라는 시건방이 좀 있었나 보다.
그때까지 나는 지구상의 인간을 딱 두 종류로 분류했다. ‘운동권’과 ‘예비 운동권’(전 지구인을 다 조직화해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사실은 ‘안 운동권’이다). 하지만 20대 후반 사회로 나와서 그동안 내 머릿속에는 없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교회의 십일조처럼 월급의 10%를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사람,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소리 소문 없이 쌀 한 자루를 놓고 가는 사람, 동네 엄마들을 찾아다니며 노조탄압 학습지 반대 현수막을 나눠주는 사람, 집회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운동단체에 제공하는 사람 등.
운동권도 아니고 ‘안 운동권’도 아닌 무수한 사람들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저마다의 발걸음에 맞춰 세상을 앞으로 굴려가고 있었다. 세상은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착한 사람들’이 바꿔가는 거였다. 집회 무대에 올라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 잡고 핏대 세우는 한두 사람이 아니라, 그저 머릿수 하나 채우겠다고 가족들 손잡고 와서 구호 외치고 모금함 앞에서 지갑을 여는 무수한 사람들이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세상을 진보시키는 것에도 하나의 기준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기준이 존재했다. 계급모순이니 민족모순이니 하는 이른바 ‘근본모순’만 기준이 되는 게 아니었다. 하나의 직선 위에 모든 것을 놓고 ‘좌’와 ‘우’로 나눠 생각해온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진보는 직선이 아니라 입체라는 것, 가로와 세로와 높이를 가진 그 입체의 공간 속에 수많은 가치와 실천들이 서로 연대하며 공존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는 내 눈에 그저 ‘착한’ 사람들로 보이던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 공간 속의 ‘핵’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귀농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진보운동가들의 귀농은 현장의 치열함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이나 중요한 다른 가치를 위해 새로운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명의 가치를 지키는 자급자족의 경제를 몸소 이루고, 속도와 경쟁의 시계를 거부한 채 거짓말하지 않는 노동을 증명하는 그들의 실천이 무엇보다 용기 있고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귀농에 관한 새 책이 들어오면 아무래도 더 오래 펼쳐보게 될 수밖에 없다. 어디 가서 내가 귀농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아직 새파란 놈이 큰일 해야지, 뭘 벌써 귀농 생각이냐” 하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팔자에 늙어서 편하게 연금 받으며 소일 삼아 텃밭이나 일구고 사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하냐”고 되묻는다. 그렇게 하는 귀농이라면 귀농이라 말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귀농을 막연히 동경하기만 할 뿐, 구체적으로 계획하지는 못하고 있다. 부끄럽게도 그 까닭은 엉뚱한 데 있다. 바로, 두꺼비가 너무 싫다는 사실. 두꺼비로 대표되는 모든 ‘흙 생물’들이 아직 내게는 너무 무서운 존재들이다. 흙을 밟고 만지는 것도 너무 어색하고, 미끌미끌한 몸으로 풀 속에서 예고도 없이 무시로 튀어나오는 두꺼비나 개구리, 지렁이 녀석들과 친해지는 것도 엄두가 안 난다.
그래서 ‘귀농’이 아니라 ‘귀촌’ 정도로 타협하려는 마음과 늘 싸우고 있다. 농사는 짓지 않고 그냥 농촌에 사는 거다. 그럼 농사를 안 짓고 뭘 먹고사나. 공무원 시험을 봐서 시골 면사무소 공무원 자리를 노려볼까. 그럼 또 책 사고 요점 외우고 문제 풀고 하는 지겨운 공부를 또 해야 하는데. 직장을 안 그만두고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아, ‘귀농’으로 시작한 생각은 오늘도 역시 이렇게 끝없는 고민으로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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