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중학교 시절은 참 별 볼일 없었다. 학교 가서 수업 듣고 자습하고 축구 하고 집에 와서 숙제 하고 책 좀 읽다가 자는 게 하루 일과였다. 그 흔한 야동도 오락실도 모르고 착하게 살았지만, 초딩 시절 엄마의 어깨에 힘을 팍팍 실어주던 내 성적은 급전직하로 떨어지기만 했다. 그나마 글이라는 걸 좀 쓰기 시작한 것이 의미 있는 일이었을 뿐, 내게 중학교 3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진’ 시간이었다.
1998년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이대로 3년을 또 흘려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선택한 것이 써클(그때는 동아리라는 말을 몰랐다)이었다. 아무 써클이나 제일 신나 보이는 데 들어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결국 흘러든 곳은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문예부. ‘설목’이라는 이름의 그곳을 선택한 것은 오직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써클실이 있다는 까닭 하나 때문이었다. 써클실도 없는 써클은 왠지 시시할 것 같았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어깨 위에 ‘시’라는 분을 모시고 살게 된 것은 바로 그때의 선택 때문이었다. 문예부 첫 모임에서 선배들의 쌍욕을 들어가며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게 큰 목소리로 인사하는 법을 배운 뒤, 대뜸 다음 모임부터 시를 써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바짝 쫄아 있는 와중에도, 시는 생전 써본 적이 없는데 수필이나 소설을 쓰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그냥 쓰라면 쓰라’는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안 쓰면 맞을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문학 교과서 여기저기서 뭔 말인지 모르지만 그냥 멋있어 보이는 말들을 죄다 뭉뚱그려서 한 편 만들어 갔다. “잘 갈아논 먹색같이 반짝이던 그 머리 위로/ 하이얀 눈서리의 겨울이 찾아왔군요” 뭐 이런 식이었다. 쌍욕이 날아오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는데, 어라? 반응이 좋았다. 그 뒤로도 쓰는 족족 칭찬 비슷한 소리를 들으니 신이 났다. 물론 백일장에서는 그 흔한 ‘차하’조차 못 받는 ‘2군 유망주’였지만, 여기저기서 부추기니 신이 나서 혼자서도 막 쓰게 됐다.
그렇게 반년쯤 지났을 때, 내 ‘시작노트’에는 100편이 넘는 시가 쌓여 있었다. 필 받으면 하루에 서너 편도 쓰고 시 생각 하다가 지겨우면 공부도 좀 하고 그랬다. 그러다 ‘그날’이 왔다. 1998년 8월 15일. 여름방학에도 자율학습은 계속됐지만 그날은 그래도 ‘빨간 날’이라 집에서 놀았다. 아침을 먹는데 지역뉴스 시간에 경주교도소에서 웬 시인이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시인은 벌레 한 마리 못 죽일 것 같은 착한 인종인데 뭔 죄를 지어서 콩밥까지 먹었나 싶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밥이나 먹었다.
그런데 저녁을 먹는데 또 그 뉴스가 나왔다. 그리고 9시 뉴스 때도 또 그 뉴스가! 지금이야 리포팅을 한 번 해서 하루 종일 써먹는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그런 걸 알 턱이 있나. 뭔가 엄청난 사람인가 보다 싶어서 뉴스를 자세히 들으니, 사노맹인가 뭔가 하는 빨갱이 죄를 지어서 오래 징역을 살다가 전라도 대통령이 당선되고 세상이 바뀌어서 다시 세상 빛을 보게 됐다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사랑이니 꽃이니 하는 약해빠진 시인이 ‘빨갱이 죄’라니. 뭔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어서 그 시인의 이름을 기억했다. 박, 노, 해.
돌아오는 주말, 학원을 가는 척하고 들른 서점에서 <참된 시작>이라는 그의 시집을 펼쳐든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동안 공책에 빼곡히 적어놓은 내 시들을 다 불태워버리고 싶었다. 그냥 예쁜 말만 지어내면 좋은 시라고 여겼던 내 생각이 무참히 찢겨나가는 순간이었다. 선 자리에서 시집 한 권을 다 읽고 그 시집을 사왔다. 책장이 노래지도록 그 거칠고 생생한 시어들을 읽고 또 읽었다.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나는 작아지고 또 작아졌지만, 그럴수록 뜨겁고 단단한 불덩이 같은 것이 살아올랐다.
그 뒤로 주말마다 서점에 들르는 것이 내 새로운 일과가 됐다. <노동의 새벽>을 읽고 또 다른 ‘박노해’들을 찾아 읽었다. 김남주와 백무산을 알게 되고, 문학 교과서에서 수능 대비를 하며 만났던 김지하와 신동엽과 김수영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열심히 베꼈다. 말 그대로 모방시도 쓰고 그들의 정서나 표현도 흉내냈다. 노동자가 아니니 노동시는 쓸 수 없었지만,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노동자의 모습을 시로 다시 그렸다.
선배들의 칭찬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이게 시냐’는 물음은 차라리 흔했고, ‘이런 시는 안 된다’는 소리도 나왔다. 안 그래도 인연이 없던 백일장과는 완전히 멀어져버린 것이 당연. “까만 봉다리 속에/ 힘 좋은 가물치/ (줄임) 우리 어머니/ 녹슨 손목으로 가물치와 싸워서/ 솥에 넣고 푹 고아서 팔면/ 천 원 이천 원/ 내게 책값이 생긴다 등록금이 생긴다/ (줄임) 잠잠해진 냉동실 문을 열었을 때/ 툭 떨어져/ 내 팔뚝 같은 것이 얼어 뒹군다/ 그리고 어머니와 나/ 우리는 또 하루를 생존했다” 뭐 이런 시를 막 써댔다.
누구는 어디서 큰 상을 받아서 대학도 가고 장학금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솔직히 부럽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을 받으려고 시를 쓰는 것도 웃기는 짓이었다. 대학을 가서도 시 근처에서 얼쩡대고 싶은 마음에 국문과를 갔고, 리얼리즘이니 뭐니 공부는 골치 아파서 ‘리얼한’ 아스팔트 현장을 공부하기 시작했더니 어느새 내 인생은 ‘삶과 같은 시, 시와 같은 삶’이라는 말 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때 같은 치열함은 이미 사라져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시를 쓴다. 아니, 시를 써야 한다 생각한다. “최규화는 시 쓸 때가 제일 멋있다”는 친구가 아직 딱 한 사람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를 쓸 때만이 열여덟 살 박노해 시집을 들고 부끄러움에 몸을 덜덜 떨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학교에 문예부밖에 써클실이 없던 것도(나중에 들으니 거기서 술판을 벌였다가 써클실을 빼앗겼단다), 광복절 날 별 뉴스가 없어서 박노해 뉴스를 하루 종일 틀어줬던 것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 나이 되도록 시란 걸 붙들고 살지만, 등단에는 관심이 없다(사실 자기네 잡지를 50권쯤 사면 신인문학상을 주겠다는 사람은 두어 명 있었다). 그냥 오늘의 내 삶을 시 한 편으로 남기고, 가끔 그 별 볼일 없는 넋두리에 손을 얹고 ‘나도 그래’ 하며 눈길 한번 맞춰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족하다. ‘니 시는 조금만 맞추면(!) 등단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며 달콤한 유혹을 건네는 선배들의 말은 그저 감사할 뿐.
서른한 살, 15년째 ‘2군 유망주’로 살지만, 되지도 않는 변화구를 배워서 꼭 1군 무대에 선발 등판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 돈으로 입장권을 50장쯤 사서 뻔히 아는 사람들 모아놓고 쇼 하는 짓은 더 못하겠고. 시도 잘 못 쓰고, ‘써야 한다’는 압박에만 시달리는 불쌍한 인생이지만, 2군에서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시인 명함을 갖고 겉멋에 취해서는 쓰지 못할 시들이 있다. 못난 인생이라도 내 인생이니까. 못난 인생들끼리 같이 마음 달래며 읽을 수 있는 울퉁불퉁 거칠고 만만한 시 한 편씩 남기며 나는 그냥 못나게 살란다.
욕먹고 시 쓰기
시를 쓰는 것만큼
사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나
토익이다 토플이다 일본어에 중국어에
남의 말 남의 글이 돈 되는 세상에서
낮으로 이름 없는 시인의 시를 읽고
밤으로 제 시를 쓰겠다고 앓아대는 것만큼
팔자 좋고 속편한 일이 어디 있나
신동엽이라고 하면 김남주라고 하면
개그맨이나 탤런트밖에 모르는 세상에서
고만고만한 시인이라고 되어봤자
평생 시집 까짓 거 몇 권이나 팔고
원고 한 장에 고료라고 몇 푼이나 받는다고
하물며 그런 시인 근처에도 못 가보고
내내 지망생 꼬리표만 달고 살면서도
시인이야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일단은 시나 좀 써보겠다는 놈만큼
답답하고 배부르고 얼빠진 놈이 어디 있나
시를 쓰는 것만큼
사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나
남들 뒤꽁무니라도 숨차게 쫓아 다녀야
그럭저럭 밥술이나 뜨고 사는 세상에서
사람을 품고 시를 쓰는 것만큼
사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나
사랑을 믿고 시를 쓰는 것만큼
과분하고 값진 일이 또 어디 있나
내일은 오늘보다 더 '느리게' (0) | 2012.06.20 |
---|---|
13년 전의 젊은 날, 나는 '주사파'였다 (0) | 2012.06.06 |
인순이도 조용필도 못 만들 소리, 들어보실래요? (0) | 2012.03.15 |
어머니, 아직은 호강하실 때가 아니야 (0) | 2011.07.20 |
궁상과 악몽의 계절이 다가온다 (0) | 2011.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