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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북한은 없다>와 임진각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21. 12. 3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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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 내리고/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임진강’ 노랫말)

 

겨울 강은 멈춘 듯 흐르고 있다. 바닥에 그어진 노란색 민간인통제선을 지나 100미터쯤 갔을까. 다리는 거기서 끊겨 있다. 발밑으로는 군데군데 얇은 얼음 아래로 임진강이 흐른다. 가볼 수 없는 땅을 향한 그리움이 만나 흐르는 곳. 사람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그곳에서, 애절한 마음만 남과 북을 건너간다.


1월 11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올라 ‘임진강’ 노랫말을 조용히 떠올려본다. 1972년 실향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임진각. 휴전선까지는 불과 7km,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북쪽 한계선에 있다. 분단이란 한국의 비극적인 현실을 상징하는 곳으로, 지금은 실향민뿐 아니라 평화·안보 여행을 위해 찾는 사람들도 많다.

 


나를 임진각으로 이끈 책은 재미 통일운동가이자 작가인 신은미 작가가 쓴 <우리가 아는 북한은 없다>(도서출판 말, 2019년). 그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북한을 여행했다. 그의 방북기를 담은 네 번째 책인 <우리가 아는 북한은 없다>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7~9차 방북의 기록을 담고 있다.


신 작가는 2014년 한국에서 한 ‘통일 토크콘서트’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언론은 ‘대동강맥주가 맛있다, 북한 핸드폰 수가 수백만이다’ 등의 말을 빌미 삼아 이른바 ‘종북’ 논란을 일으켰다. 토크콘서트 현장에서 폭발물 테러를 당하는 아찔한 일도 있었고, 공안 당국에 의해 강제출국과 5년간 입국금지까지 당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맥주 맛이 좋다는 말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니. 하지만 신 작가는 2015년 6월 일곱 번째 방북에 나섰다. 그해 10월에는 ‘남한 유일의 기자’ 자격으로 당 창건기념일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여덟 번째 방북을, 2017년 5월에는 ‘신은미재단’을 통해 모은 58톤의 쌀을 싣고 아홉 번째 방북을 진행했다.

 

마침 일요일이라 많은 사람이 공원에 나와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한반도기를 함께 펼치자고 제안하자 흔쾌히 응한다. 푸르른 한반도기가 펼쳐지자 정자에 모여있던 북녘의 동포들이 환호를 보낸다.

(줄임) 참으로 묘한 일이다. 저 멀리 함경북도 산골에서 만난 촌노도, 밭에서 일하던 아낙들도, 이곳 평양에서 만난 할머니들도…, 민족의 화합과 통일 이야기만 나오면 이내 눈물을 떨군다.(98쪽)


신 작가가 북한 여행을 멈추지 않는 것은 ‘사람’ 때문이다. 분단을 해결하는 첫 번째 열쇠는 복잡한 외교적 셈법에도, 어려운 정치적 논의에도 있지 않다. 그 오랜 시간 쌓여온 거짓과 갈등, 그리고 오해의 장벽. 신 작가는 무엇보다 같은 얼굴에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의 만남을 통해서 통일은 온다고 믿는다.

 


임진각 전망대에 서니 임진강 건너로 민간인 통제구역이 보인다. 여기서는 서울보다 개성공단이 더 가깝다. 1953년 한국전쟁 포로 교환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자유의 다리’(경기도 기념물 제162호). 다리가 끝나는 곳에 선 철조망에는 여기서 멈춰야 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작은 깃발들이 무수히 꽂혀 있다.


자유의 다리 옆 독개다리 스카이워크는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철교의 형태를 재현했다. 다리 입구에는 한국전쟁 중 피폭된 후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돼 있던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등록문화재 제78호)가 서 있다. 발 아래 교각에 표시된 빨간 동그라미 안으로는 당시의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별도의 출입절차 없이 민간인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겨우 105미터에 불과하지만. 양쪽 옆 방향으로는 사진 촬영도 제한된다. 전방을 향해서만 찍을 수 있다. 다리 끝에서 사진을 찍던 어떤 사람이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저기를 못 간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원통하겠어?”


실향민들이 북한에 있는 조상들을 추모하는 공간인 망배단에서는 ‘잃어버린 30년’ 노래가 흘러나온다. 추석이나 설 명절에 이곳에서 실향민들의 합동차례가 열리는 모습은 텔레비전 뉴스의 단골 소재다.

 


2019년 12월 31일 통일부는 '제3차 남북 이산가족 교류촉진 기본계획(2020~2022년)'을 발표했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는 또 언급됐다. 2019년 11월 기준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약 13만 명. 이중 생존자는 약 5만 명뿐이다. 열 명 중 여섯 명은 70년간의 ‘희망고문’ 속에 이미 눈을 감았다.


한국 사회에는 북한을 보는 대립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북한을 ‘주적’으로 여기는 적대의 시각과, 민족 공동체로 여기는 평화·공존의 시각. 임진각에는 양쪽의 시각이 묘하게 교차한다. 한쪽에는 반공전시관·임진각지역전적비·미군참전기념비 등이, 한쪽에는 평화누리 공원과 ‘통일로 가는 평화의 소녀상’ 등이 함께 있다.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역 앞에 오니 구호가 눈에 들어온다. “미제가 덤벼든다면 지구상에서 영영 쓸어버리자”라고 새겨져 있다. 북한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했던 건, “남조선을 쓸어버리자” 같은 구호를 북한에서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235쪽)


나도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2007년 6·15공동선언 기념 민족공동행사를 위해서였다.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리는 행사를 기다리면서, 남측 대표단 버스를 운전하던 북측 운전원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북한의 통일 준비에 대해 말하던 그의 한마디가 내 뒤통수를 쳤다. “통일에는 군사적 준비, 경제적 준비, 사상적 준비가 필요한데, 그중 제일 어려운 것은 사상적 준비”라는 말. 우리는 북한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준비가 얼마나 돼 있는가. 벌써 12년 전 일이지만 내 대답에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는 점이 답답하다.

 


그래도 2018년에는 통일 열기가 한껏 고조됐다. 평창올림픽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했고, 남북의 예술단이 서울과 평양을 번갈아 방문했다. 북측 최고지도자가 최초로 군사분계선 이남을 방문한 판문점 회담과, 남측 대통령이 최초로 북측에서 군중 연설을 한 평양 회담 등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경색된 남북관계. 2018년에 일어난 일들이 꼭 아득한 과거의 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신 작가도 2017년 9월 미국 국무부의 ‘미국인 북한 여행금지 조치’ 이후 더 이상 북한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열 번째 북한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남북 모두가 그의 조국이다. 남북을 둘러싼 정세는 변할 수 있겠지만, 남북의 조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생각하는 그의 가슴은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해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닌, 사랑을 품고 가슴으로 하는 이해입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남과 북의 동포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통해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8쪽)

 


- 월간 작은책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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