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가 시끄럽다. 9월 10일 인천시가 월미공원에 세울 예정이었던 ‘위령비’ 때문이다.
면적 0.66㎢의 작은 섬 월미도. 수도권 시민들에게는 당일치기 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작은 섬 곳곳에는 큰 전쟁의 상처들이 남아 있다. <그 섬이 들려준 평화 이야기>(강변구, 서해문집, 2017년)는 “작은 섬 월미도가 겪은 큰 전쟁들”에 관한 이야기를 친절하고 꼼꼼하게 들려주는 책이다.
서해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이라는 점 때문에 월미도는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운요호 사건의 배경이 됐다. 이후 일본, 러시아, 미국의 병참기지가 됐고, 1904년에는 러일전쟁의 전쟁터가 됐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이 된 뒤에는 미군이 들어왔다. 1950년 한국전쟁 중에는 섬이 초토화됐고, 1971년까지 미군이 주둔했다. 미군이 떠난 뒤 또 다시 한국 해군이 들어와 2001년까지 주둔했다.
월미도 사람들은 세 번이나 쫓겨나야 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월미도를 군사기지로 만들며 마을을 강제로 옮겼다. 1942년에는 일제가 선착장을 만든다는 이유로 또 한 번. 그리고 1950년에는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마을을 송두리째 잃고 지금까지 ‘실향민 아닌 실향민’으로 살고 있다.
“(월미도 미군폭격 사건은) 해병대항공단 제15항모전단 항공기들에 의해 월미도를 무력화시키는 작전의 일환으로 발생하였다. 항공모함에서 이륙한 해병항공기들(VMF-214, 323)은 95개(tank)의 네이팜탄을 월미도 동쪽지역에 투하하고 기총소사하였다. 이 집중폭격으로 동쪽지역의 건물, 숲 등과 함께 민간인 거주지도 완전히 파괴되었다.”(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월미도 미군폭격 사건’ 조사보고서 중)
1950년 9월 10일 그날의 진실은 58년이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규명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월미도 미군폭격 사건’의 희생자를 100여 명으로 추산하고, 그중 10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그리고 “미국과의 협상을 통하여 본 사건의 피해에 대해 실질적으로 보상할 수 있는 방안”과 “월미도 원주민들의 귀향 및 위령사업 지원”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권고 이후 13년이 지나서야 월미도에 세워지는 위령비. 하지만 그 비문에는 가해 주체인 ‘미군’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었다. 시민사회는 반발했다. 그러자 “북한의 남침에 의한 전쟁을 조기 종식하기 위해 실시된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중”이라는 문구로 수정됐다. 이번에도 ‘미군’은 없다. 오히려 “인천상륙작전의 전승을 기리는 문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샀을 뿐이다. 계속되는 논란 때문에 위령비 제막식은 연기됐다.
총탄이 오고 가는 전쟁은 멎었지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역사전쟁’의 한 장면을 보고 있다. 여전히 ‘미군’의 잘못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금기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가해자를 분명히 하지 않고는 화해를 말할 수 없다. 흘러버린 세월을 핑계로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지 마라.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를 무슨 수로 용서할 수 있나. 반성 없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화해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정의’가 아니다.
150년 전쟁의 역사가 남긴 상처를 간직한 월미도. 오늘도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전쟁을 보면서 <그 섬이 들려준 평화 이야기>를 다시 펼쳐 든다. 진실을 기억하는 것에서 진정한 평화가 시작된다.
“월미도 주민들의 피해를 회복시켜 주는 것은 우리 사회의 억압되고 배제된 전쟁의 기억을 온전하게 회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전쟁을 온전하게, 그 승리와 죽음을 다 같이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사는 길입니다.”(<그 섬이 들려준 평화 이야기> 283쪽)
- 책방아이 북큐레이터 2021. 9. 6. https://blog.naver.com/ibook2017/222496947690
<로지나 노, 지나> (0) | 2021.12.26 |
---|---|
<악마의 일기> (0) | 2021.12.26 |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0) | 2021.12.26 |
<인권을 먹다> (0) | 2021.12.26 |
<가장 작은 자를 위한 약속> (0) | 2021.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