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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 ‘전라도 문학’ ‘경상도 국어’ 따로따로? 교사시인 박일환의 상상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6. 12. 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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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 ‘전라도 문학’ ‘경상도 국어’ 따로따로? 교사시인 박일환의 상상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박일환의 말, 말, 말

- “언어에는 우열이라는 게 있을 수 없어요. 표준어 규정이 생기면서 하나의 규범으로 작용하니까 사투리는 규범 밖에 있는 언어로 홀대받게 되는 거죠.”

- “생물다양성이라는 얘기를 하잖아요. 언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가능하면 사투리가 오래 살아남으면 좋겠다 생각하죠. 하지만 중심언어 몇 개로 통합돼가는 걸 막을 수 없을 것 같아요.”

- “청소년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각한 인간으로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걸 억눌러왔기 때문에 문제인 거죠. 객체로만 여기지 말고 주체로 길러야 하는 거죠.”

 

[프리즘②] 국어사전에서 살려낸 우리말의 보물창고

 

▷ 박일환은 누구? : 교사이며 시인. 2017년이면 교직생활 30년, 등단 20년을 맞는다. 시집 <푸른 삼각뿔> <끊어진 현> <지는 싸움>을 비롯해 20여 권의 책을 썼다. 현재 서울 영남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스스로 “문제 있는 선생”이라 말한다. 학생들이 부르는 별명은 ‘물안경’, ‘혀 짧은 천사’, ‘일환오빠’ 등이라고 한다. “중요한 내용 가르쳐주셔서 고마워요”라는 말보다 “선생님은 항상 웃어서 좋아요”라는 말을 들을 때 더 기분이 좋다는 사람. ‘교사는 아이들에게 휴게소와 같아야 한다’는 말을 소중히 간직하며, 위대한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 어떤 책을 냈나 : 우리말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줄 100개의 사투리 이야기, <국어선생님, 잠든 사투리를 깨우다> (작은숲). 2014년 출간한 <국어선생님, 잠든 우리말을 깨우다>(작은숲)의 후속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의 언어생활은 물론 국어사전 안에서도 홀대받고 있는 사투리들을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한다. 기자는 대구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았다. 고백하자면, 우리 엄마가 좋아하시는 ‘시금장’과 ‘시나나빠’ 김치가 무엇인지 이 책을 보고 나서야 제대로 알았다. 숨겨진 우리말의 보물을 탐사하는 고고학자가 된 기분으로 읽은 책이다.

 

▷ 인터뷰 뒷이야기 : 창피하지만, 기자는 나름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다. 공부 빼고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다. 유일하게 관심이 간 공부는 ‘뜻밖에도’ 방언학이었다. ‘여우’가 고개 하나 넘으면 ‘여수’가 되고, 도랑 하나 건너면 ‘여시’가 되는 게 정말 신기했다. 사투리의 세계란, 표준어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형형색색 말의 빛깔을 지니고 있는 우리말의 보물상자 같았다. <국어선생님, 잠든 사투리를 깨우다>를 보는 순간 그때 생각이 났다. 다시 한번 보물상자를 열어보고 싶었다.

11월 10일 서울 영등포구 영남중학교에서 박일환 시인을 만났다. 교무실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교사시인에겐 너무도 당연한 공간인데, 왠지 내 마음이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뭔가 곧 꿀밤을 맞거나 일장 훈시를 들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 하지만 인터뷰 마칠 때쯤 되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학생들이 자기를 부르는 별명 중 하나가 ‘일환오빠’였다는 박일환 시인의 말은 조금 의심스웠지만, 이런 선생님이 계시는 교무실이라면 종종 놀러 와도 좋겠다는 생각은 잠깐 들었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제목을 보면 일단 <국어 선생님, 잠든 우리말을 깨우다>의 속편(?) 격으로 느껴집니다. 먼저 집필의 계기부터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어교사라는 직업, 그리고 시를 쓴다는 것. 밑바탕에는 그게 크게 작용한 거죠. 당연히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많고 국어사전을 다른 사람보다는 많이 들춰보게 되죠. 국어사전엔 제가 몰랐던 낱말들이 무지 많은 거예요. 재미있는 말들을 볼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메모를 해두다가, 그걸 가지고 처음 묶어낸 게 <국어 선생님, 잠든 우리말을 깨우다>예요. 그 메모 중에 사투리들도 있었어요. <국어 선생님, 잠든 우리말을 깨우다>를 출간한 다음에, 같은 형식으로 사투리만 모아 풀어내도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죠. 처음부터 시리즈로 생각했던 건 아니고요.

 

Q 사투리가 국민들의 언어생활은 물론이고 국어사전에서도 홀대받고 있다고 진단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표준어와 사투리를 대립적인 관계에 놓잖아요. 표준어는 우수하고 문명적인 언어, 사투리는 열등하고 변두리에 있는 언어. 언어에는 우열이라는 게 있을 수 없어요. 표준어 규정이 생기면서 하나의 규범으로 작용하니까 사투리는 규범 밖에 있는 언어로 홀대받게 되는 거죠. 어차피 표준어도 서울 사투리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구분이 너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구분부터 허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의사소통을 원활히 한다는 표준어의 기능이 있긴 하지만 언어의 기능이 그 하나로만 수렴되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국어사전이 사투리를 ‘홀대’한다고 표현한 이유는, 사투리를 풀이할 때도 표준어와 똑같이 풀이해야 된다는 거예요. 뜻풀이가 성의 없이 되거나 아예 잘못된 경우도 많아요. 국어사전에 경상도 방언이라고 해놓은 낱말이 전라도에서도 쓰이고 충청도에서도 쓰이는 경우가 많단 말이에요. 끼워넣기 식으로 구색만 갖춘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죠. 국어사전 편찬자들의 의식 자체가 아무래도 표준어 중심으로 가다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국어사전은 국어학에서 쌓아올린 성과가 집약된 것이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많이 있어요.

 

Q 책에는 ‘잠든 사투리’ 100개가 소개돼 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단순히 뜻풀이만 한다면 의미가 없잖아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만한 사투리를 찾았어요. 예를 들어 경상도에선 ‘싸락눈’을 ‘사랑눈’이라고 부르거든요. 굉장히 어감이 좋죠? 그런데 왜 그렇게 부르게 됐을까 따져보니, 경상도 사람들이 ‘ㅆ’ 발음을 못해서 ‘사락눈’이라 부르던 것이 ‘사랑눈’으로 변한 거였어요. 이런 식으로 이야깃거리가 되는 낱말들, 어원을 같이 이야기해줄 수 있는 낱말들 위주로 찾아서 묶었죠. 정보로써 가치도 있고 이야기로써 재미도 있는 것들이죠.

때로는 ‘이 말은 좀 살려 썼으면 좋겠다’ 하고 애착이 가는 말들도 찾아 담았어요. 예를 들면 ‘먼옷’이라는 게 있죠. ‘수의(壽衣)’를 뜻하는 말이에요. 인생의 마지막 먼 길을 갈 때 입는 옷. 지금 살려 써도 참 좋을 말이죠.

 

Q 책에 더 실으려고 고민하다 결국 싣지 못한, 101번째 사투리는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굉장히 많죠. 사실은 북쪽 사투리만 따로 모아봐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거기까진 못했어요. 특히 제가 이용악, 백석, 이런 시인들을 좋아하거든요. 두 사람 시에 북쪽 사투리가 굉장히 많아요. 예를 들어 백석의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보면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라는 구절이 나와요. ‘출출이’는 뱁새, ‘마가리’는 오막살이라는 뜻이에요.

이용악 시에도 눈보라 대신 ‘눈포래’라는 말이 나와요.(시 ‘전라도 가시내’ 중,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기자 주) 어감이 확 다르죠. 북쪽의 눈보라는 남쪽의 눈보라보다는 훨씬 강할 거 아니에요. 눈포래라는 말을 알아야 머릿속에 좀 더 선명하게 그 광경이 떠오르죠. 북쪽 사투리를 조금 더 소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죠.

 

Q 이렇게 재미있는 사투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주 사투리는 유네스코에 의해 ‘소멸위기 언어’로 지정되기도 했고요. 제주도에서는 제주 사투리를 지키기 위한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사투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 가운데 의미 있게 생각하시는 것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사투리에 관심을 갖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죠. 그런데 저는 사실 소멸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전 세계가 하나로 교류되는 상황에서 과연 지역언어, 사투리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생물다양성이라는 얘기를 하잖아요. 언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서로 다른 것들이 부딪혔을 때 새로운 게 생기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면 사투리, 지역언어가 오래 살아남으면 좋겠다 생각하죠. 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이고, 중심언어 몇 개로 통합돼가는 걸 막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기관의 노력은 크게 두 가지죠. 사투리 경연대회, 아니면 연구보존 지원. 자기 고장 언어에 대해 자부심을 심어주고, 최대한 많은 데이터베이스를 모아두는 데 의미 있는 일들이죠. 그런데 향토사학자는 많은데 향토언어학자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뜻있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작업에 나서는 게 더 소중하지 않나 싶어요. 한 가지 더 바라보자면, 지금 사회 교과서는 지역별로 있어요. 그것처럼 국어나 문학 교과서를 지역별로 만드는 건 어떨까 생각해봐요. 그 지역 출신 문인들의 작품을 많이 소개하면, 자연스럽게 지역언어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도 높아지겠죠.

 

Q 우리말을 지키는 데 누구보다 책임감을 가져야 할 곳이 교육당국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교육당국의 우리말 지키기 노력을 점수로 매기신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70점 정도는 주고 싶어요. 우리말 순화정책을 많이 펼치면서 실제로 변화된 것이 많이 있어요. 예를 들어 옛날에는 ‘본교’, ‘본교육정’ 이런 말을 썼는데 지금은 ‘우리 학교’, ‘우리 교육청’ 이렇게 바뀌었거든요. 나름대로 노력한 측면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죠. 때 되면 사례들을 쫙 모아서 고치자고는 하는데, 그런 고민이 계속 지속되지는 못하는 거 같아요. 일회성이에요.

 

Q 2001년 <푸른 삼각뿔> 이후로 지금까지 거의 1년에 한 권 꼴로 책을 내셨습니다. 종류도 시집, 동시집, 산문집, 교육서, 사회과학서까지 다양하고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본업’만으로도 바쁘실 텐데 이렇게 다양한 책들을 이렇게 부지런히 쓰시는 원동력은 과연 뭘까 궁금합니다.

문제가 있는 선생이죠.(웃음) 하나의 책 작업을 하면 또 가지가 뻗어나와서 다음 책으로 이어져요. 이번 책도 <국어 선생님, 잠든 우리말을 깨우다>에서 뻗어나왔듯이. 시를 쓰는 것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넓게 보면 만나는 지점이 있어요. 그 지점에 어쩌면 청소년시가 있는 것 같아요.

2010년에 박성우 시인이 <난 빨강>(창비)이라는 청소년시집을 냈어요. 그때 반성을 했죠. ‘내가 가장 많이 만나고 가장 오래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학생들인데 그들에게 읽힐 만한 시를 못 썼구나.’ 수많은 교사시인이 있는데 교사도 아닌 박성우 시인이 먼저 청소년시집을 냈다고 했을 때, 뭔가 직무유기를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들의 심정이나 생활을 많이 접하다 보니까 나라도 한번 써봐야지 하고 쓰게 된 게 <학교는 입이 크다>(한티재/ 2014년)예요.

 

Q 시국이 시국이라 이런 질문도 한번 드려봐야겠습니다. 이른바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때문에 국민들이 광장에 나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요, 청소년들도 사회의 편견을 뚫고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청소년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이후에 생긴 거죠. 학교라는 제도가 생기면서 학생, 청소년이라는 용어가 생겼는데, 그 속에는 ‘아직은 배우는 사람’, ‘아직은 주체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요. 통제하는 거죠. 청소년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각한 인간으로서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걸 억눌러왔기 때문에 문제인 거죠. 더 나아가서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지금은 교사 대표, 학부모 대표, 지역사회 대표로 구성돼 있는데, 여기 학생 대표가 반드시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자꾸 객체로만 여기지 말고 주체로 길러야 하는 거죠.

Q 내년이면 등단 20년, 교직생활 30년을 맞으시는 것으로 압니다. 소회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교사보다는 시인이 먼저 되고 싶었는데 워낙 재능이 없어서 하느님을 많이 원망했죠.(웃음) 그래도 미련하게 계속 썼어요. 보통 20대에 다들 등단을 했는데, 저는 서른일곱에 등단을 했어요. 열일곱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으니까 딱 20년 걸렸죠. ‘문학사에 남을 만한 시인’ 이런 꿈은 갖고 있지 않아요. ‘자기 삶과 시에 성실했던 시인’ 정도로 남들이 이야기해주면 충분할 것 같아요.

교사로서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막상 교사가 되고 나서야 ‘어떤 교사가 돼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만난 교육운동의 흐름에 동참하고, 전교조 창립 조합원으로 해직까지 되고, 복직해서 지금까지 쭉 활동해왔어요. 지금 다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나름대로 교육의 변화에 동참했다는 자부심이 있죠. 아이들을 친하게 만나고 교사로서 성실하게 살고, 동료교사들에게 ‘저 사람은 괜찮은 선생이야’ 하는 말만 들어도 충분할 것 같아요. 생각이 뛰어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낫다고 봐요. 좋은 선생. 좋은 사람. ‘위대한’이 아니라 ‘좋은’.

 

Q 마지막으로 출간 예정인 책이나 준비 중인 활동에 대한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청소년시집을 내년(2017년)에 한 권 더 낼 생각인데, 청소년시집은 그걸로 마무리할까 해요. 또 하나 있다면, 청소년시와는 조금 다른, 교육에 관련된 시들만 모아서 내년쯤 교육시집을 낼까 하고 있어요. 지금 50~60편 정도 모아둔 시가 있어요.

그리고 이제 교직을 슬슬 정리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해요. 정년이 조금 남긴 했지만,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넘겨줘야 되는 거 아닌가… 이제 힘에 부치기도 하고, 다른 작업을 더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작년(2015년)에 낸 교육산문집 <나는 바보 선생입니다>(우리학교)는 그래서 낸 측면도 있어요. 내가 어떻게 교사로 살아왔는지 스스로 정리하고 후배 교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게 내가 교직을 정리하면서 최소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진 : 신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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