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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 강원국 “대통령에게 비밀이 없으면 문고리 권력도 없죠”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6. 11. 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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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북DB

[저자인터뷰] 강원국 “대통령에게 비밀이 없으면 문고리 권력도 없죠”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강원국의 말, 말, 말


- “이번 사건으로 국민들의 자존심이 엄청 손상됐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도 한때는 이런 대통령을 가졌던 때가 있구나’ 하고 자존심의 상처를 치유하는 게 있지 않나 싶어요.”


- “대통령의 말과 글은 대통령 그 자신이에요. 국정운영 그 자체예요. 대통령의 생각, 이념, 철학이 바로 대통령 자신이잖아요. (4년 동안) 대통령 자체가 없었다는 거예요. 없는 사람이었던 거죠.”

- “지금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사실’이거든요. 어떤 사과보다 앞서서 그걸 밝히는 게 필요한 거죠. 이런 사과문은 국민들이 절대 못 받아들이죠. 더 악화시키고 있는 거예요.”

[프리즘②] ‘논란’이 불러온 베스트셀러 역주행

▷ 강원국은 누구? : 기업에서 17년, 청와대에서 8년 일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연설비서관실 행정관으로 3년 동안, 노무현 대통령 때는 연설비서관으로 5년 동안 일했다.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는 것이 그의 일. 두 대통령에게서 ‘어떻게 하면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쉬운 말로, 가장 많은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직접 배웠다. 그 경험으로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 2014년)를 썼다. 지금은 ‘라이팅 컨설턴트’로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 어떤 책을 냈나 : <대통령의 글쓰기>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역주행’ 하고 있다. 10월 말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유출 논란이 벌어진 이후 생겨난 현상이다. 11월 첫째 주 3위. 둘째 주와 셋째 주에는 5위를 유지했다.(11월 14일 기준, 인터파크도서 판매량) 강원국 작가의 말에 따르면 ‘논란’ 이후로 5만 부를 더 찍을 정도로 찾는 독자들이 많다고. 책은 이미 100쇄를 넘겼다.


이 책의 시작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임기 중 여러 차례 ‘공무원을 위한 글쓰기 책’을 쓰라고 했단다. “자네는 운이 좋아서 이런 경험을 했지 않나. 그걸 공유해라. 안 그러면 자네만 특혜 받은 거야.” 하지만 A4용지 열 장짜리 보고서만 올리고 책은 못 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한참 지나서야, 그때 쓴 ‘A4용지 열 장’이 생각났다. 그것을 뼈대 삼아 이 책이 나왔다.

▷ 인터뷰 뒷이야기 : 11월 14일 서울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북파크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를 준비할 때 고민이 많았다. 지금 ‘시국’ 때문에 관심을 받고 있는 책이라 시국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었다. 책의 성격상 전 대통령들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책과 저자를 소개하는 본연의 임무(?)를 소홀해서는 안 된다. 한 시간 남짓 주어진 시간 안에 세 종류의 이야기를 고르게 담아내는 것이 숙제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시작하고 나서는 숙제를 잠시 잊었다. 강원국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서 고개를 끄덕이고, 웃고, 메모하느라 시간이 다 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강원국 작가에게 ‘운 좋아서 알게 된 이야기들을 혼자만 아는 것은 특혜’라고 했다던가. 나 역시 ‘운 좋아서 알게 된’ 강원국 작가의 이야기들을 빨리 기사로 쓰고 싶었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 유출이 논란이 된 10월 말부터 <대통령의 글쓰기>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역주행’ 하고 있습니다. 일단 소감은 어떠신지요?

저자로서 좋죠. 그런데 좋은 티를 내기가 참 그래요.(웃음) 한편으로는 죄송하기도 하고 책임감도 느끼고요. 이런 국면에 특수만 누려서야 되겠습니까.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좀 해야 하지 않나 싶은데, 그러면 또 ‘쟤만 아주 물 만났구나’라고 하실까봐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Q 지금 이 책을 찾는 독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찾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2014년에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두 대통령에 대한 향수 때문에 이 책을 많이 찾으셨다는데, 이번 경우는 다른 것 같아요. 일차적으로는 ‘대통령 연설문은 어떻게 쓰이나’ 하는 데 관심이 생긴 것 같고요, 이차적으로는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면 리더 역할을 못 하는 거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공감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글쓰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국민들의 자존심이 엄청 손상됐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도 한때는 이런 대통령을 가졌던 때가 있구나’ 하고 자존심의 상처를 치유하는 게 있지 않나 싶어요.

Q 집필 당시로 시간을 좀 되돌려보죠. <대통령의 글쓰기>는 ‘글쓰기’ 이야기와 ‘대통령’ 이야기가 함께 들어 있는 책입니다. 두 이야기 사이에서 줄타기(?)를 참 잘 하신 것 같은데요, 집필에서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썼는지 궁금합니다.

첫 번째는 두 대통령을 찬양하는 책이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글쓰기 책으로서 기본은 갖춰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제가 본 것만 가지고 이야기하고 과도하게 포장하지 말자는 거죠.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걸 되게 싫어하셨어요. (연설문도) 항상 ‘담담하게 고쳐주세요’ 그러셨거든요. 대통령 이야기를 쓸 때는 두 대통령 사이의 안배도 문제였어요. 어느 한 대통령 이야기로만 치우치면 안 되잖아요. 글쓰기와 대통령 이야기 사이의 균형, 두 대통령 이야기 사이의 균형, 그런 것들을 주로 신경 썼어요. 그 사이를 넘나드는 것은 철저하게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했고요.

Q 보통 사람들은 잘 알 수 없는 ‘대통령 연설비서관’의 일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정신적인 부담감이나 육체적인 피로가 대단했던 것 같은데요.

힘든 점은 두 가지죠. 첫 번째는 제 생각이 아닌 대통령의 생각을 제 문체가 아닌 대통령의 문체로 써야 한다는 점. 문체는 보고 배우면 되는 거지만 생각은 계속 쫓아가야 되는 거라 힘들죠. 두 번째는 쓰고 나서 항상 대통령과 함께 글을 고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점이죠. 엄청난 부담이에요. 쓸 때도 어렵고 쓰고 나서도 어려운데, 쓰고 나서가 훨씬 더 어렵죠. 제 수준이 다 드러나요.

두 분은 글에 대해서 엄격하세요.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어요. 비서관들 중에 유일하게 혼나는 비서관은 연설비서관이에요. 글을 고치는 과정은 계속 혼나는 과정이에요. 몸 고생 많고, 마음 고생 많고, 제일 많이 혼나고, 3D라니까요.(웃음) 일주일에 4일 정도는 글 쓰는 꿈을 꿨어요. 너무 걱정돼서. (연설비서관 일을 그만둔 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도 10월 1일 국군의 날이 가까워지면 갑자기 걱정이 되는 거예요. 쌀쌀한 바람이 불면 느낌이 싸 하게 와요. 그게 1~2년 계속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아 난 이제 안 써도 되지’ 하는 생각이 들면 너무 행복하고.(웃음)

Q 잠도 잘 못 자고, 칭찬도 잘 못 듣고, 책을 보면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한 일이었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8년간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두 대통령을 정말 좋아하고 존경했기 때문이죠. 참여정부 3년째에 제가 사표를 한 번 냈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노무현 대통령께 구두로 말씀드렸고, 대통령도 알았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다음 날 비서실장이 부르더라고요. 대통령께서 ‘쟤(강원국 작가)가 힘들어서 그러는 것 같은데 병가를 줘서 좀 쉬게 해줘라’ 그러셨대요. 그 소리 듣고는 도망 못 가겠더라고요. 그냥 병가도 안 쓰고 계속 일했어요.(웃음) 책에도 에피소드가 많지만, 배려가 깊으신 분이었어요.

Q 두 대통령이 강조한 글쓰기의 원칙들이 책에 잘 정리돼 있습니다. 두 대통령이 공통적으로 가장 강조한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먼저, 간절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돼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데 글을 쓰면, 좋은 글이 나올 수가 없어요. 그게 메시지잖아요. ‘어떻게 쓰느냐’보다 ‘무엇을 쓰느냐’가 중요하죠. 두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서 정말 절절하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어요. 두 번째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에 매달려야 한다는 거죠. 이 지점에서는 두 분이 좀 달라요. 노무현 대통령은 앞에서 지르는 식이고, 김대중 대통령은 찬찬히 설명하는 식이고. 방식은 다르지만, 두 분은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거죠. 누구나 그렇게 쓰면 잘 쓸 수 있어요.

Q 이 대목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대통령에게 ‘말과 글’이란, 한마디로 어떤 의미인가요?

대통령의 말과 글은 대통령 그 자신이에요. 국정운영 그 자체예요. 대통령을 우리가 무엇으로 압니까? 그분의 생각, 이념, 철학이 바로 그분이잖아요. 그건 결국 말과 글로써 표현될 수밖에 없잖아요. 대통령 자신이 말과 글로써 자신을 보이는 것에 신경을 써야 되는데, 그걸 (청와대 바깥의) 남한테서 빌려오고 남한테 고치라고 했다는 것은 대통령 자신이 없었다는 거죠. 자신감이 없었다는 게 아니고 대통령 자체가 없었다는 거예요. 없는 사람이었던 거죠. 대통령은 (청와대) 밖에 있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그런 밑에서 지난 4년 동안 국민들이 살아온 거예요.

Q 10월 25일과 11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은 열흘 사이에 두 차례 이례적인 대국민 담화 연설을 했습니다. 그 연설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법적인 검토를 많이 거친 연설인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사실’이거든요. 실체적 진실을 알고 싶은 거거든요. 어떤 사과보다 앞서서 그걸 밝히는 게 필요한 거죠. 소상하게 다 밝히고, 그래도 더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아야죠. 이런 사과문은 국민들이 절대 못 받아들이죠. 더 악화시키고 있는 거예요.

Q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보다 말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대통령입니다. 연설비서관으로서 그런 모습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언론이 잡은 프레임이죠. ‘상고 출신의 못 배우고 교양 없는 위험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많이 했던 이유는, 정보를 국민들에게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에요. 보안이니 어쩌니 하는 얘기가 나오면 항상 얘기하셨어요. “왜 자네는 알아도 되고 국민은 몰라야 돼?” 그래서 그분은 비밀이 없었어요. 비밀이 없으면 측근도 없고 문고리 권력도 없죠. 정보에 있어서 평등했어요. 그리고 꼭 ‘대통령의 언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가급적 눈높이를 서민에 맞췄죠.

그래서 이 책에서 ‘그런 대통령이 아니다, 막말 하는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생각에 품격이 있어요. 지향하는 가치가, 도덕적 수준이 어느 대통령보다 우월하거든요. 노무현 대통령은 5년 내내 저를 한 번도 칭찬해주신 적이 없지만, 아마 이 책을 보셨으면 잘했다 그러시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한편으로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계셨으면 못 나왔을 책이에요.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연설문 고치듯이 계속 고치라고 하셨을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남세스럽다고, “난 이런 사람 아니다. 나를 이렇게 미화하면 안 된다.” 그러셨을 거예요.

Q 책에는 ‘스피치라이터’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연설하는 사람에 빠져 살아야 한다. 그 사람에게 빙의되어야 한다.” 그 대목에서 말하기에 대한 부담을 고백하기도 하셨는데요, 지금은 어떤가요? 강사로서 남들 앞에서 말을 많이 해야 할 텐데.

노무현 대통령이 고쳐주셨어요. 하루는 제가 점심 때 설렁탕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대통령 지시라고,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표를 하라고. 제가 밥 먹다가 숟가락을 놨다니까요. ‘난 여기까지구나.’(웃음) 그런데 마음을 다 내려놓다 보니까,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개망신을 당해도 앞으로 길에서 그 사람들 만날 것도 아니고, 발표는 한번 하고 나갈까?’ 원고를 다 외워가지고 천장을 보고 발표했어요. 원래는 질문을 받고 토론을 해야 되는데, 다들 저를 도와줘야겠다 생각했나봐요. 아무도 질문을 안 하더라고요.(웃음) 그 뒤로 제가 바뀌었어요.

Q <대통령의 글쓰기>가 출간된 지 2년 9개월이 지났습니다. 혹시나 이 책의 개정판을 낸다면 어떤 부분을 빼거나 더하고 싶으신가요?

출간 이후에 생각난 것들이 있긴 있어요. 강의를 계속 하고 다니다 보니까. 그런데 사실 저는 책은 낸 뒤로 한 번도 이 책을 정독해본 적이 없거든요. 무서워서 못 읽겠어요. 제 스스로 부끄럽고, 지금 이런 반응들이 너무 과분하거든요. 개정판을 내려고 하면 아예 다시 써야 될 거예요.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한 보름 동안은 아무 것도 안 써지더라고요. 근데 어느 순간 갑자기 봇물이 터지니까, 손이 못 따라갈 정도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막 나오는 거예요. 새벽 2시까지 쓰고 눈을 붙이려고 하다가, 또 생각이 나서 막 다시 일어나서 쓰고. 제 아내 말로는 “당신 그때 잠깐 신들렸던 것 같아” 그러더라고요. 그야말로 다시 두 대통령에 빙의됐을 수도 있고,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두 분을 다시 만난 것 같은 생각에 행복했어요. 그렇게 쓴 책이라, 지금 다시 정독하면서 고쳐 쓰려면 정말 부끄러울 것 같아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짧은 계획, 긴 계획 여쭤보겠습니다. 지금 준비 중인 책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고요,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말씀해주십시오.

한 2년 동안 준비한 책, 가칭 ‘강원국의 글쓰기’를 다 써놨어요. 원래 11월에 내는 거였는데 지금 연기된 상태예요. 그 책은 순전히 제 글쓰기 방식에 대한 책입니다. 긴 계획을 말씀드리자면, 엥겔스가 이런 말을 했죠. ‘2층에 한번 살아본 사람은 1층 가서 못 산다.’ 저는 2층을 한번 구경했어요. 그 2층은 예속되지 않는 삶, 내가 주인인 삶이에요.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쓴 걸 말하고, 쓰기 위해서 읽고 듣는 삶. 읽고 쓰고 듣고 말하고, 이 흐름 안에서 사는 거죠. 그렇게 살다보면 내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그 생각이 곧 ‘나’잖아요. 내 안을 채우는 그런 삶을 더 살고 싶어요.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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