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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 22년 국회보좌관 이진수 "권력욕이 정치품질 높인다"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5. 10. 1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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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북DB

[저자인터뷰] 22년 국회보좌관 이진수 “권력욕이 정치품질 높인다”


인터뷰를 섭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이진수 전 보좌관은 “책의 깊이가 얕아서 서너 시간이면 다 읽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는 데 시간이 족히 두 배는 걸렸다. 나는 책을 읽으며 궁금한 점이 보일 때마다 책귀를 접어놓는데, 이 책은 거의 두세 쪽에 한 번씩 접어야 했다. 책을 덮어놓으면 한쪽 모서리가 불룩하게 올라올 지경이었다.

책 제목은 ‘보좌의 정치학’이지만 단순히 보좌관의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었다. 보좌관도 ‘정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 이 책은 이진수 전 보좌관이 22년간 일하며 확인한, 국회의원, 입법, 선거 등 ‘정치’의 속살이 적나라하게 들어 있는 비급(祕笈)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우리 편만 알고 있어야 할 비급을 출간한 필자가 원망스럽다”라는 김부겸 전 국회의원의 추천사가 이해됐다.

이진수 전 보좌관은 빈민운동가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제정구 선생과의 인연으로 1994년 보좌관 생활을 시작했다. 1999년 제정구 의원이 갑작스레 사망한 뒤로는 ‘제정구 사단’이라 불리는 김부겸 의원과 함께했고, 2012년 총선에서 김부겸 의원이 낙선한 뒤로는 최원식 의원을 보좌했다. 최근 22년간의 보좌관 생활을 최근 정리한 이진수 전 보좌관은 김부겸 전 의원과 함께 대구에서 2016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이 김부겸-이진수의 두 번째 도전. 경기도 군포에서 3선을 한 김부겸 의원은 2012년 총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우며 여당 지지성향이 강한 대구에 야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보좌의 정치학>은 이진수 전 보좌관이 내년 김부겸 전 의원의 선거에 “모든 걸 다 쏟기” 위해 보좌관 생활을 정리하며, 후배 보좌관들을 위해 쓴 정치 교과서다. 그와 한 인터뷰는 카페에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세 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그가 인터뷰 도중 “제정구 선생 영전에 부겸이 형 당선증 갖다놓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힌 것은 왜일까. 그가 “내 몸의 독을 빼내는 기분”으로 썼다는 이 책에 그 까닭이 담겨 있다.




“보좌관을 기능으로서만 보는 풍토, 국회의원을 자영업자로 만들 뿐”

Q 맨 처음 보좌관 일을 시작하던 때로 가보겠습니다.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핵심은 제정구 선생을 만난 것부터죠. 제가 대학 다닐 때 시대가 좀 모질었어요. 졸업하면서 처음엔 공장에 (위장취업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지금은 제가 살이 쪄서 동글동글하지만 그때는 인상이 뾰족해서 ‘먹물’(학생운동권) 티가 팍팍 났어요. 그래서 공장은 안 되겠다 했는데, 그 무렵 목동, 상계동, 사당동 철거민들이 투쟁을 했어요. 거기가 그때는 다 산동네였거든요. 88올림픽 앞두고 아파트 짓는다고 강제철거를 했어요.

거기 가보고 완전 놀랐어요. ‘서울에도 이런 산동네가 있구나.’ 그렇게 빈민운동을 하러 가서 ‘빈민운동의 대부’라고 불리는 제정구 선생을 만난 거예요. 마포구 도화동에 방을 하나 얻어서 저를 가둬(?) 두셨어요. 아무 미션도 안 주고 그냥 동네를 계속 다니면서 거미줄 같은 골목골목을 다 외우게 하셨어요. 어깨에 힘을 빼게 한 거죠.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또 제가 가난하게 살 수 있는지 그걸 확인하게 하신 거예요.

그걸 하고 있으니 시흥 복음자리(철거민 집단이주지) 마을로 부르시더만. 제정구 선생과 1987년 6월항쟁도 같이 맞이하고 1988년 강제철거도 같이 겪고. 제 선생은 1992년에 국회의원이 되셨고 저는 빈민운동을 한다고 남아 있었는데, 1994년에 제정구 선생이 ‘야, 안 되겠다. 니네 다 (국회로) 들어와’ 그려서 가지고 보좌관으로 잡혀(?)간 거죠. 그날이 2월 7일이에요. 그래서 난데없이 국회 비서관 생활을 한 거예요.

Q 제정구 선생이 “들어와!” 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처음엔 거부했어요. 빈민운동의 대의를 저버릴 수가 없다는 거였죠. 어떻게 나 혼자 빠져나가느냐 하고 ‘뭉갰죠’. 몇 번 뭉갰더니 나중에는 (제정구 전 의원이)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래서 간 거예요. 그때 정신없었어요. 아침 7시 반쯤 출근해서 아침밥을 거기서 지어 먹었어요. 밤 10시, 11시에 퇴근하고. 1993년에 제가 경제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터라 밤에는 또 공부하러 가고. 아침마다 코피 터지고 그랬어요. 2, 3년 그냥 미친 듯이 일했죠.

Q 그때 혹시 이 일을 20여 년이나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아휴 꿈에도 생각 못했죠. 저는 제정구 선생을 존경했어요. 그래서 ‘뭐가 됐든 제정구 선생하고 같이하겠다’ 그렇게만 생각했지, 국회에서 이렇게 오래 있을지는 생각 못했죠.

Q 1999년 제정구 의원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국회 보좌관으로 남으셨어요. 어느 순간 ‘이 일이 내 일이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계속할 수 없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든 건 언제였나요?

보좌관 4, 5년차 때였던 것 같아요. 1997년, 1998년쯤. 재밌더라고요. 세입자 권리를 찾기 위해서 조직하고 시위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지만, 국회의원의 권력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방법도 있더라고요. 건설교통부 공무원들 불러놓고 물어보는 거죠. “철거용역 회사 요건 갖췄는지 확인해봤어요?” “어? 사업면허증이 없네요?” “그럼 이게 깡패조직이지 용역회사예요?” 그러면 공무원들이 발칵 뒤집히는 거죠. 일제조사 해서 (용역회사 사장들) 구속시키고. 그런 걸 구체적으로 딱 보니까 ‘제도화된 입법권력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재미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제정구 선생이 됐든 누가 됐든 뒤에서 보좌하는 게 체질에 맞더라고요. 

Q 그런데 자기 체질에만 맞다고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보좌관으로 22년이나 장수한 비결은 뭘까요?

제가 거친 국회의원이 딱 세 사람이잖아요. 제정구 의원은 돌아가셔서 더 못 모셨고, 김부겸 의원은 제 발로 대구에 걸어 들어가서 낙선했고. 그 뒤로 최원식 의원까지 그냥 오다가다 만난 국회의원이 아니라 뿌리가 제정구 선생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거죠. 그런 뿌리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22년이나 국회에 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특히 김부겸 의원과는 1999년부터 2012년까지, 그리고 지금 다시 같이하고 있잖아요.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데, 김부겸 의원과는 그런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두 가지 이유죠. 뿌리가 같다는 것, 김부겸 의원이 덕이 있는 사람이라서 보좌하기 좋았다는 것.


“오픈프라이머리, 국회의원이 ‘지역구 동네 아저씨’ 되는 길 가속화할 것”

Q 김부겸 전 의원이 추천사에 “나와서는 안 될 책이 나와버렸다”라고 썼길래 엄살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까 정말 ‘이렇게 영업비밀을 다 가르쳐주면 뭐 가지고 장사하시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책을 내겠다고 결심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김부겸 의원이 내년 (총선) 대구 선거를 잘 치를 수 있으면, 저는 인천 계양 가서 최원식 의원 선거를 치르는 게 맞죠. 그런데 (김부겸 의원이 출마하는 대구 수성갑 새누리당 후보로) 김문수가 내려온 거예요. 강적이에요. ‘질 수도 있는 선거에 내가 가서 싸워주는 게 맞지 않나’ 하고 결심한 거죠. 제가 대구에서 선거를 치르면 인천 식구들을 위해서 뭔가를 써놔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제가 없어도 의원실이 돌아가고,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그래서 보좌진 상대로 한 강의들, 대학원생들 상대로 한 강의들 초고를 끄집어내서 살을 붙이고 체계를 잡아서 글을 쓴 거죠.

맨 처음에는 그걸 PDF 파일로만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걸 저희 의원실에 있는 손낙구 보좌관과 몇몇 후배들을 보여줬더니, 손낙구 보좌관이 “이거 책으로 내세요. 출간 가치가 충분히 있어요.” 하고 유혹을 하는 거예요.(웃음) 그때부터 마음이 기울어지기 시작해서 출간을 결심하게 된 거죠.

Q 책이 나오고 나서 주변의 다른 보좌관들이 놀라지 않았나요?

그렇죠. 보통은 그냥 재밌는 책이라고 얘기들 해주시는데, 정말 후배 보좌진 중 딱 세 명이 “형 이런 거 내면 어떡해요! 새누리당 애들도 볼 거 아니에요!” 그랬어요.(웃음) 그런데 혹시 기자님도 제가 이 책에 모든 것을 다 썼다고 생각하세요? 항상 비전(祕傳) 또는 외전(外傳)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리고 레시피 안다고 다 일류 요리사 되는 건 아니니까요.(웃음)

Q 책에 보면, 보좌관에게 중요한 덕목으로 업무보다 관계, 전문성보다 팀워크를 강조했습니다. 근데 요즘은 전문성을 점점 강조하는 시대인데, 이거 좀 예스러운 얘기로 들리지 않겠습니까?

그게 제가 던지는 논쟁적 화두예요. 그런 반문을 상정해놓고 쓴 거예요. 전문성을 달리 말하면 ‘기능’이에요. 장기판 말하고 똑같은 거죠. 장기 두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장기판 말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어요. 국회의원들이 소속 상임위가 바뀌는 2년마다 보좌관을 갈아치우는 이유죠. 선거 1년 전쯤 되면 정책보좌관 내보내고 지역구 보좌관들 들여오고. 보좌관은 2년은 A 의원실, 1년은 B 의원실, 또 1년은 백수 생활, 직업의 불안정성에 시달리게 되는 거죠. 직장인들 회사 바꿀 때마다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지 않아요? 똑같아요.

그런데 국회의원이 왜 보좌관을 자주 갈아치울까요? 그 국회의원은 자기 재선만 목표로 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정치의 품질이 점점 떨어져요. 정치가 실종된다고요. 정치는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비전이에요. 그런 걸 하려면 자기 ‘팀’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국회의원은 자신과 보좌관을 사장과 직원의 관계가 아니라 한 배를 탄 선장과 선원의 관계로 생각해야 돼요. 그런데 자기가 다시 국회의원이 되는 데 필요한 기능으로서만 보좌진을 본단 말이에요. 자꾸 이런 식으로 가면 국회의원들이 자영업자가 되는 거예요.

보좌진들도 마음을 고쳐먹어야죠. 전문성은 기본이에요. 그런데 “여기까지가 제 전문성이니까 이 밖의 일은 시키지 마세요.” “저더러 선거를 치르라고요? 왜요? 의원님이 떨어지든 말든 저는 또 다른 의원실로 바꾸면 되는데요.” 이런 자세로 일하는 보좌관들이 있어요. 전문성을 강조하는 속에 그런 마인드가 깔려 있다면, 국회의원이 그걸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갈아치우는 거예요. 악순환이라고요.

Q 대부분의 경우 보좌관들은 그림자 속에서 일을 하잖아요. 자기가 직접 빛을 받지 않고 국회의원이 빛을 받게 하는. 그런 ‘그림자 노동’에서 오는 비애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건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애당초 내가 의원인지, 의원이 나인지 구분이 안 가는 의원을 만나는 게 답이에요. 내가 써준 질의서로 의원이 장관을 들었다 놨다 하고, 그게 신문에 나고 그러면 기분 엄청 좋아요. 내 이름이 아니라 의원 이름이 나갔지만. “아이씨 내 이름으로 나왔어야 되는데……” 하는 분들은 직접 출마하시면 돼요. 그래서 아무 의원실이나 가지 말라는 거예요. 지혜로운 새는 나뭇가지를 골라 앉는다고 하잖아요.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의원을 찾아가야 하죠.

그리고 보좌진이 할 수 있는 자율적 영역이 있어요. 한 10년 일하면서 정책적으로 정통해지면 고질적인 문제, 구조적인 모순들이 딱 보여요. 그럼 그걸 파고 들어가는 거예요. 올해 못하면 내년에 하고, 내년에도 못하면 그 다음해까지 집요하게. 어떻게 보면 그건 국회의원이 못하고 보좌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국회의원은 자기 국회의원 되느라 바빠요.(웃음) 이 두 가지를 가지면 보좌관이 그렇게 서글픈 직업은 아니에요.

Q 보좌관이 국회의원의 정치적 야심, 권력욕을 키워줘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권력욕이라는 것, 나쁜 거 아닌가요?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하게 된 이유가 있어요. 국회의원들이 세금을 받아먹고 정치를 하니까 국민들은 정치로부터 혜택을, 아웃풋(output)을 좀 보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안 되죠. 그러면 정치인이 아웃풋을 내놓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을 계발하게 하는 자극이 무엇일까요? 그건 선거에 출마하는 것밖에 없어요. 지역구 선거도 선거지만, 특히 당직, 원내직. 그러면 당원들이 먼저 그 의원을 검증하죠. 그러면서 약점이 딱 나와요. 그럼으로써 의원들이 자극을 받고 더 노력을 하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가는 거죠.

그런 점에서 큰 선거에 출마 안 하고 사부작이 3선 하고 4선 하는 의원들. 존재감 없이 자기 지역구 관리만 열심히 해가지고 당선되는 국회의원들. 여야에 다 있죠. 전 그런 국회의원들이 제일 한심하다고 봐요. 그런 의원들은 국민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해요. 좋은 법, 좋은 정책,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정치적 메시지, 그런 거 안 해요. 왜냐면 그런 걸 하는 순간 위험해지거든요. 반대자들이 생기고, 싸워야 되거든요. 정치인이 정치를 위험한 게임으로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정치가 국민들한테 욕을 얻어먹는 거예요.


“사소하고 지루한 보좌라는 일... 누군가의 옆을 지키는 것에 천사가 있다”

Q 선거 말씀이 나와서 말인데, 요즘 오픈프라이머리(국민경선제) 도입 문제가 계속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거 어떻게 봐야 할까요?

오픈프라이머리는 현역 의원한테 절대적으로 유리해요. 국민경선에 참여하는 사람은 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사람이냐? 다 조직적으로 동원하죠. 그러니까 ‘종이당원’, ‘당비대납’ 이런 말이 나오는 거죠. 결국 조직싸움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현역 의원이 바보가 아닌 한 그냥 이기는 거예요.

현행 소선거구제는 ‘지역구 관리에 혈안이 된 동네 아저씨’를 만드는 제도예요.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면 모든 국회의원은 더더욱 그 길로 갈 수밖에 없어요. 아침마다 동네 약수터 가서 인사하고, 낮에는 노인정 가서 인사하고, 아파트 부녀회 바자회 하면 빈대떡 사먹어 주고, 저녁 되면 이런저런 모임 찾아서 술집 돌면서 따라주는 술 몇 잔 마시고. 국회의원이 만날 그거 하고 있는 거예요. 의원들을 자꾸 지역구에만 결박시키는 제도를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고 봅니다.

Q 이제 22년 보좌관 직을 내려놓고 또 한 번의 도전을 위해 대구로 가십니다. 김부겸 전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도 40% 이상 의미 있는 득표를 했지만 낙선했고, 이번 선거의 상대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바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인데요, 이번 도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지역주의를 한번 넘어서 보겠다고 지역주의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를 선택했습니다. 일당에만 표를 몰아주다 보니 경쟁이 사라졌고, 경쟁하지 않으니까 나태해지고, 그 결과 대구가 저발전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경쟁을 시켜주시라는 거죠. 경쟁이 일어나면 정치하는 자들이 국민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 아니에요. 이게 우리 테마예요. 반면 김문수 전 지사 출마의 테마는 ‘대구는 보수의 아성이다. 그리고 나는 대통령 잠룡(潛龍) 중 한 사람이다. 김부겸이 조금 컸다는데 내가 밟아줄게. 여러분은 나를 대통령 후보로 밀어줘.’ 이거예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대구를 이용하러 온 거죠. 자기정치 하러 온 거예요.

그런데 김문수와 김부겸이 그럴 사이냐 하는 거예요. 저는 그 뿌리에 제정구 선생이 있다고 봐요. 빈민운동의 제정구, 노동운동의 김문수. 제정구는 시흥, 김문수는 바로 옆 부천. 김문수 전 지사는 제정구 선생 돌아가셨을 때 와서 펑펑 울고 헌시를 써서 제정구 추모집에 실은 사람이에요. 그래놓고 제정구의 유업이라고 할 수 있는 탈지역주의를 위해서 대구까지 내려온 아우 김부겸을 밟고 김문수가 대통령이 되겠다? ‘제정구의 탈지역주의, 민중지향노선이 옳은 건데 언제부터 지역주의 때문에 갈라져야 했느냐’고 한탄한 김문수는 누구이며, 지금 김부겸을 잡겠다는 김문수는 누구냐 하는 게 제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에요.

Q 그렇다면 ‘김부겸의 도전’이 아니라 ‘이진수의 도전’은 어떤 의미인지, 개인적인 의미를 듣고 싶습니다.

‘제정구의 유업 속에서 김부겸이 직접, 이진수는 뒤에서.’ 제 머릿속 기본 구도는 그거예요. 제 후배들은 다 국회의원이 돼 있어요. 제가 국회의원을 안 하는 이유는 그래야 제가 제정구 사단의 구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어딘가에 출마를 하면 잠재적 경쟁자가 돼버리잖아요. 그러면 구심점 역할을 할 수가 없어요.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제정구의 연장선에서 가는 데까지는 제가 뒤에서 보좌하겠다는 거예요.

이번에 대구에 내려가는 것도 그런 생각이에요. 지난번(2012년 총선)은 어떻게 보면 예비게임이었고, 지금이 본게임인 거예요. 여기 모든 걸 다 쏟아야 되는 거죠. 남들은 져도 의미 있는 선거 아니냐고 하는데, 선거에서 2등은 의미 없어요. 1999년 2월 9일에 제정구 선생 돌아가실 때…… 너무 원통했어요. 그래서 꼭 제정구 선생 영전에…… 부겸이 형 당선증 갖다놓고 싶어요.(눈시울이 붉어지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기자 주) 제가 이래서 제정구 선생 얘기는 잘 안 하는데…….

Q 마지막으로 두 가지 질문만 더 드리겠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정치와 정치인의 속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습니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오해를 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책을 권해주시죠.

박상훈 전 후마니타스 대표가 쓴 <정치의 발견>은 부지불식간에 씌워진 정치에 대한 불신을 씻어내고 정치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하는 좋은 교과서라고 생각해요. <정당의 발견>도 있죠. 더 권한다면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소명으로서의 정치> 같은 책들도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Q 이 책은 일단 보좌관의 삶이나 현실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책 같습니다. 반면 보좌관이라는 직업이나 정치 이야기에는 별 관심 없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제일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저랑 데면데면 아는 한 기자는 자기가 본 책 중에 기자에 대해 가장 적확하게 설명한 책이라면서, 왜 지금 정치부 기자들이 이 책을 돌려 읽는지 알겠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기업의 홍보이사를 한 후배는 “우리랑 똑같아요!” 그러면서 무릎을 치면서 봤대요. 우리가 이연복 셰프를 보면서 요리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도 배우잖아요. 한 분야에서 연륜을 쌓고 내공을 갖추면, 어디를 가든 원리가 비슷비슷하다는 게 보여요. 그런 게 이 책에도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웃음)

이렇게 기록해놓는 게 우리를 스스로 정의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좌의 본질은 돕는 것, 옆을 지키는 것이거든요. 저는 친구도 보좌라고 생각하고, 연인, 부부도 서로 보좌하는 사이라고 봐요. 직업으로서 보좌, 정치 말석에 앉아 있는 보좌진, 이런 개념도 있지만, 사소하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허접한 일 같지만 누군가를 돕고 옆을 지키는 것에 천사가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누군가를 보좌하는 사람이 돼보라는 것, 그게 제가 보좌관 생활을 22년 동안 하면서 터득한 지혜라면 지혜입니다.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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