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저자인터뷰] 역사학자 이덕일 "'독도는 한국 땅' 말 못하는 학자들, 끔찍한 상황"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5. 9. 25. 08:35

본문

인터파크도서 북DB

[저자인터뷰] 역사학자 이덕일 "'독도는 한국 땅' 말 못하는 학자들, 끔찍한 상황"


인터뷰 도중에 나도 모르게 “고맙습니다” 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으레 인터뷰를 시작할 때나 끝낼 때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는 인사는 하지만, 인터뷰 도중에 인사를 한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출간을 기념해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이덕일 소장이 20여 년간 식민사관 해체를 위해서 걸어온 길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다.

연구소로 ‘밤길 조심하라’는 전화가 걸려오는 것은 예사다. “이덕일만 죽이면 게임 끝난다”는 얘기가 오간다는 소문도 들린다. ‘나랏돈’ 써가며 역사를 왜곡하는 식민사학자들에게 ‘자기 돈’ 써가면서 맞서는 일은 생활인으로서의 고민도 늘 함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거기다 소송까지 발목을 잡는다. 이덕일 소장은 현재 형사상 명예훼손 소송과 민사상 출판금지 가처분 소송을 치르고 있다. 모두 이덕일 소장의 전작 <우리 안의 식민사관>(2014년)에서,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의 책이 식민사관을 따른 것이라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덕일 소장이 “식민사관 해체의 완결판 중 하나”라고 자평한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지난 8년간 47억 원의 국민 세금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한 종합적인 비판서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한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 원래 올해 초 지도가 발행될 예정이었으나 편찬위원회는 활동을 3년 더 연장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지도가 공개됐고, 중국의 동북공정 지도를 그대로 베껴오고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용인하는 등 여러 문제점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현재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은 전면 중단된 상황. 이덕일 소장은 “중단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예산 47억 원을 환수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동북아역사지도에 독도를 누락시킨 것을 지적하면서 “일본이 ‘니네가 국민 세금으로 만든 지도에 독도 안 그려놨잖아’ 그러면 뭐라고 대답할 거냐”라는 질문을 여러 번 던지기도 했다. 식민사학의 현주소가 “독립국가로서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고 단언한 그는 인터뷰가 진행된 두 시간 내내 비판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만주 일대는 중국 지도 100% 베껴… 동북아역사지도는 다 사기”

Q 이 책은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한 종합적인 문제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의 문제의식을 독자들이 공유할 수 있게 가장 문제 되는 지점이 어디인지 먼저 화두를 좀 던져주시죠.

첫째는 한강 이북을 중국 고대사의 영토로 만든 문제. 한반도 유사시에 북한이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가 되면 이 문제는 자칫 중국이 북한 강역을 차지하는 데 명분이 돼요. 그런 소문도 있잖아요. 중국이 북한을 접수하고 동북 3성을 동북 4성으로 확대하려 한다는. 그럴 때 중국이 “봐라. 너네(한국) 국민 세금으로 만든 지도가 여기(북한) 우리 땅이라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하면 우리가 반박할 논리가 없어지는 거죠.

둘째는 서기 4세기에도 한반도에 신라도 백제도 없는 문제. 사실상 임나일본부설을 용인한 거예요.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차지하고 식민통치를 위한 임나일본부를 두었다는 설을. 임나일본부설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가짜다’라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과 한몸이에요. 조선총독부에서 ‘한반도 남부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라고 주장하려다 보니 삼국사기 내용과 맞지 않아서 삼국사기를 가짜로 몰아버린 거예요.

셋째는 독도를 우리 강역에서 빼놓은 문제. 국회에 나와서 해명하기로는 실수라고 했어요. 2008년부터 8년 동안 한국 학자 60명이 모여 만든 지도에서 독도를 실수로 빼놓았다는 게 말이 안 되지만, 지도를 한 장 잘못 그렸으면 실수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신라시대 때 우산국이 차지한 지역에서 독도를 빼놓았고, 이후로도 고려시대부터 대한제국 때까지 독도를 일관되게 지워놨잖아요. 그건 실수가 아니에요. 일본이 만약 독도를 점령하고 “니네가 국민 세금으로 만든 지도에 독도 안 그려놨잖아” 그러면 뭐라고 대답할 거냐 이거예요. 그 세 가지 부분이 국민 세금 47억 원을 들여서 만든 동북아역사지도의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Q 비상식적인 ‘세로 국경선’ 등 중국이 동북공정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지도를 베껴온 문제도 심각해 보였습니다. 특히 동북아역사지도를 만든 이유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는데 말입니다.

요동반도 북쪽 지역은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북한 지역에 중국 한나라의 식민지인 한사군이 있었다고 하기 위해서, 고구려와 한나라 사이에 억지로 세로 국경선을 그어서 중국과 북한 지역을 연결해놓은 거예요. 고대의 국경선은 강과 산으로 자연스럽게 나뉘어 있는데, 이 세로 국경선은 동서로 흐르는 압록강과 청천강 등 여러 강들을 세로로 가르고 장백산맥 등을 세로로 자르고 있어요. 인류 역사상 있을 수 없는 국경선이에요. 그 국경선이 중국에서 주장하는 만리장성선이란 말이에요. 다 사기예요, 사기.

Q 중국 쪽의 지도를 베껴온 비중은 어느 정도나 될까요? 수치로 표현하자면.

만주 일대는 100% 다 베낀 거예요. 그런데 출처를 따지면 재미있어져요. 조선총독부와 식민사학자들이 쓴 글을 가지고 중국에서 ‘웬 떡이냐’ 하고 지도로 그려놓은 것을 여기서 다시 표절한 거죠. 저작권자는 조선총독부고, 그걸 중국 동북공정에서 표절한 걸 동북아역사지도가 또 표절했어요. 이거 웃어야 하는 건지…….

이 사람들이 나랏돈 가지고 비싼 호텔에서 먹고 자고 회의하면서 “동아시아문화지도를 제시해서 고조선의 특별성을 약화시키자”라는 발언을 했다는 거 아니에요.(2011년 7월 한국고대역사지리 7차 토론회 회의록 발언 중 - 기자 주) 일본 침략주의자들의 관점, 중국 동북공정의 관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대화들을 한국 학자들이 모여서 한 거예요. 그나마 국회에서 회의록을 제출하라고 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죠. 이거야말로 당장 국가보안법으로 처리해야 할 상황인데, 이건 정상국가가 아니에요. 광복 70주년 얘기할 자격 없어요. 우리가 제동 안 걸었으면 저 지도가 그대로 발행되고, 일본과 중국이 ‘이게 웬 떡이냐’ 했을 거 아니겠어요?

Q 그렇다면 지금 동북아역사지도 편찬 작업은 어떤 상태인가요? 

현재는 잠정적인 중단 상태인데, 재개한다는 말도 있어요. 편찬위원회가 2008년부터 8년 동안 활동했는데, 올해 활동을 3년 연장해서 예산 30억 원을 더 받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국회에서 ‘그럼 지금까지 작업한 것을 내놓아라’ 하니까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도가 공개된 거죠. 얘기했다시피 지도가 그 모양이니까 물의가 일기 시작했고, 일단 지도 편찬 활동은 잠정 중단됐어요. 중단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 그동안 편찬 사업에 들어간 예산 47억 원에 대한 환수조치에 들어가야 되고, 책임자 처벌해야 돼요.

Q 책에서 동북아역사지도 편찬 사업을 ‘매국사업’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러한 ‘매국사업에 대한 단죄가 진정한 동북아 평화의 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것이 동북아의 평화를 낳을 수 있나요?

역사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해야 돼요. 역사 가지고 장난만 안 쳐도 동북아에 상당한 평화가 와요. ‘우리가 무력이 세니까 논리고 뭐고 그냥 점령할래’ 이렇게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역사를 무기로 점령을 합리화하려는 생각은 못하게 될 테니까요. 그러니까 역사를 왜곡하는 식민사학의 매국사업을 단호히 단죄하는 것이 동북아 평화를 앞당기는 지름길인 거죠.


“보이지 않는 친일 카르텔 해체 못하면 ‘신(新)일진회’ 나올 것”

Q 책에서 이병도라는 역사학자의 이름이 참 많이 거론됩니다. 일제가 만든 식민사학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데 있어 가장 중심이 된 인물이라고 받아들여도 될까요?

이병도씨는 조선총독부 시절에는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고 일제의 하수인 노릇을 하다가, 해방이 되고 일제가 물러나면서 어려움을 좀 겪었죠. 워낙 친일행적이 두드러졌기 때문에 당시 진단학회에서 이병도 제명운동도 벌어졌어요. 그런데 당시 소위 사회경제사학을 하던 마르크스주의 사학자들은 월북하고, 정인보 선생 같은 민족사학자들은 한국전쟁 때 납북되고 그러다 보니까, 식민사학자들에 맞서서 또 다른 축을 형성할 세력을 만들지 못한 거예요. 그 사이에 식민사학자들이 우리 학계를 장악한 거죠.

이병도씨의 문제는 자신의 주장을 일설(一說)이 아니라 정설(定說)로만 늘어놨다는 거예요. 일제 식민사학만 하나뿐인 정설로 만들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전부 학계 밖으로 내몰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거죠. 이번에 국회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쪽에다가 ‘한사군이 북한 지역에 있었다는 근거 사료를 대라’고 하니까, (1차 사료가 아니라) 이병도가 만든 사료 34개를 냈잖아요. 이병도 사료에 ‘1차 사료’ 근거가 없다는 걸 확인한 국회 동북아특위 위원들이 경악하는 일이 있었죠.

Q 식민사학의 허점이 역사를 잘 모르는 저 같은 사람의 눈에도 보이는데, 왜 해방 이후 70년이 지날 때까지 인적 청산이 안 되고 오히려 그들이 역사학계의 주류를 이룰 수 있는 걸까요? 스승의 학설을 뒤집거나 스승의 학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도제식 학풍’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요?

일본의 우파들이 관리를 하는 것 같아요. 학계를 벗어난 사회 전반에 거대한 카르텔도 있고요.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다 가난해요. 교육을 잘 받은 사람도 없고요. 하지만 친일파 후손들은 경제력과 학문적 지위를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어요. 이 카르텔을 해체하지 못하면, 구한말 한국을 일본에 병합시켜야 한다고 깃발 들고 나왔던 일진회처럼 ‘신(新)일진회’가 여기저기서 나올 거라고 봐요.

Q 그렇다면 식민사학자들의 미래는 어떻게 보시나요? 어떻게 해야 그 카르텔을 해체할 수 있을까요?

결국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식민사학의 정체에 대해 잘 알아야 해요. 우리 같은 학자들이 앞에 설 테니, 적어도 ‘대한민국이 커진 외형에 걸맞은 정신세계를 가져야 한다’는 정도만 인식해줘도 좋은 거죠. 우리가 정치하고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데, 앞으로 이 문제를 대선 공약으로 제안해서 공약을 받아들이는 후보를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도 있어요. 국가권력 자체가 식민사학을 해체하는 쪽으로 기능을 해야 현실이 좀 바뀌지, 지금같이 우리 학자들의 힘만 가지고는 어렵지 않겠느냐 하는 거죠.

우리 사회에는 중심이 없어요. 국가의 백년대계가 없이 바람 한번 불면 다 휩쓸려가는 게, 역사관이 없기 때문이거든요. 우리나라 모든 문제의 뿌리는 친일청산이 제대로 안 된 것에 다 닿아 있어요. 저는 친일청산 간단하다고 봐요. 얼마 전에 홍영표 국회의원이 조부의 친일행각에 대해 사과했잖아요. 자식이 부모 선택해서 태어나는 건 아니니까 부모 잘못이 내 잘못은 아니거든요. 다만 자기가 지금 누리고 있는 부나 권력이 부모의 잘못된 정치행위의 결과라면 그건 사과하고 고치도록 노력해야죠. 그런 후손을 누가 욕하겠어요?

그런데 식민지근대화론 같은 얘기는 일제시대가 좋았다는 거 아니에요. 일제시대가 좋으면 독립하면 안 되지, 왜 독립해요? 그 뿌리들이 가로로 세로로 연결돼 가지고 우리 사회의 정신세계를 갉아먹는 암적인 존재가 된 거예요. 여야를 막론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돼요.

Q 식민지근대화론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인데, 최근에 제가 ‘유럽 제국주의 국가가 아닌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받은 것은 다행’이라고 말하는 정치인을 만난 적도 있습니다.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단기적인 수탈에 집중한 데 반해, 일본은 한국을 영원히 지배할 거라고 생각해서 장기적인 인프라에 투자했다는 말입니다.

거 누구예요? 낙선운동 해야겠네. 전 세계 식민지배 중 가장 악독했던 게 일제 식민지배예요. 나중에는 말도 못 쓰게 한 거 아니에요. 1940년대에는 사상범 예방구금령까지 내려요. 아무 죄가 없어도 “어, 이놈 눈빛이 살아 있네?” 그러면 감방에 집어넣을 수 있는 법이에요. “천황폐하 만세!” 하면 풀어주고, 안 하면 다시 감방에 넣어요. 구체적 범죄행위도 없는데 예방구금을 한 거예요.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 김동삼 선생은 무장투쟁을 하다 잡혀서 옥사하셨는데, 이분이 감옥에 있을 때 딸이 결혼을 해요. 선생은 딸에게 몇 마디 당부의 말이라도 전하고 싶어 했는데 방법이 없어서 절망을 해요. 결국 그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일제시대 때 친일파들은 아주 호화로운 삶을 누렸어요. 더운 여름이면 송도 가서 해수욕 하고, 맥주 양주 마시고, 비행기 타고 다니고, 일왕 생일에 거대한 파티도 해가면서 흥청망청. 친일 카르텔 내에 있는 사람들은 소수지만 개개인이 힘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힘없는 ‘을’들이 결집해가지고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미래가 없어요. 동북아역사지도 문제를 봐도, 만약에 동북공정 하는 중국 학자가 “어? 알고 보니 하북성까지 한국 땅이었네” 그랬어봐요, 당장 국가안전부 끌려가서 거꾸로 매달리지. 그런데 우리나라는 역사와 영토를 팔아넘기는 문제인데도 조용하잖아요.

Q 책을 보면 비판의 대상에 대한 저자의 감정이 강하게 느껴지는 표현도 몇몇 보입니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진실을 구하는 독자들에게는 불편하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되더라고요.

처음에는 더 세게 썼다가 많이 누그러뜨린 건데…….(웃음) 그런데 그런 감정이 없으면 이런 문제에 손을 댈 수가 없어요. 중국 당나라 때 문장가인 한유가 문학의 최고봉을 불평지명(不評之鳴)이라고 했어요. 불평의 울음소리.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건데, 제 책도 그런 거라 감정이 좀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조금 더 상황이 좋아지면 마음도 가라앉고 조금 더 부드럽게 쓸 수 있겠죠.(웃음)


독도 누구 땅인지 말할 수 없다는 한국 학자들… “끔찍한 상황”

Q 책의 첫머리에 보면 소송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송이 두 가지죠? 형사상 명예훼손과 민사상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명예훼손 소송은 서울서부지검(지방검찰청)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어요. 학문과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영역이라는 거죠. 그런데 소송을 제기한 김현구 교수가 서울고검(고등검찰청)에 항고했고, 고검에서 무혐의 처분을 뒤집어서 기소 결정을 했어요. 기소 결정 직후에 출판금지 가처분에 대해서도 서울서부지원(지방법원)이 일정 부분을 고치라고 결정했고요. 우리 쪽에서는 불복하고 정식 재판으로 가자고 청구해놓은 상태죠.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에요. 제가 검찰에서 ‘이것은 학술적 공론의 장에서 해결할 문제이지, 국가권력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얘기했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대한민국 법이 저를 처벌한다고 하면 감수해야지. 이 재판은 한국의 사법시스템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Q 책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글 첫 문장이 “조선 후기 노론사관과 그 변종인 일제 식민사관 해체를 평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역사학자.”입니다. 어떤 계기로 노론사관과 식민사관 해체를 평생의 과업으로 삼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때 함석헌 선생이 쓴 자서전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를 읽었어요. 함석헌 선생이 도쿄고등사범학교 역사학과를 나오셨는데, 그 책을 읽고 함석헌 선생 같은 역사학자의 길은 한번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한 게 대학 사학과에 진학한 계기가 됐죠. 그런데 사학과를 가보니까 밖에서 본 분위기랑 좀 다르더라고요. 그 이상한 분위기가, 독립운동가 계열 역사관은 해방 후에 다 사라지고 조선총독부 계열 역사관이 지금까지 기능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한 발 한 발 들어오다 보니까 지금까지 온 거죠.

지금은 ‘우리가 무너지면 식민사관이 영원히 간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죽어도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누가 하겠어요, 이 일을?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자기 돈 써 가면서 욕 얻어먹어 가면서 이 길을 누가 가겠냐고요? 죽으나 사나 우리 대에서 끝장내서 후배들에게는 이 일을 물려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죠.

Q 그동안 많은 저서들을 출간하셨는데, 큰 흐름에서 볼 때 이번 책이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요?

완결판 중의 하나, 한 획을 그은 책이라고 볼 수 있겠죠. 약간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를 한 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 누군가 한 번은 해야 되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알아야 되는 이야기예요. 실제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 얘기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한국 학자들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는 얘기예요. 한 교수는 임나일본부설을 옹호하는 강연을 하다가 ‘독도가 누구 땅이냐’는 청중의 항의성 질문을 받고 ‘독도가 전공이 아니라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대답을 한 적도 있어요. 아니 한일 고대사 공부한 사람이, 꼭 독도가 전공이어야 “독도는 한국 땅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나? 지금 끔찍한 상황까지 다 왔어요.

Q 그나마 소장님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로 모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구소의 활동을 간략히 소개해주시죠.

1997년경에 시작해서 재작년까지는 후원도 안 받았어요. 자비로 운영하다가, 작년에 기부금단체 지정이 되면서 세제혜택이 있으니까 알음알음 후원을 받고 있어요. 요즘은 연구 프로젝트를 받아서 진행하는 것도 있어요.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연구소가 됐다는 의미도 있고요. 지금은 박사급 연구원들도 10여 명 되니까, 식민사관에 맞서는 확실한 하나의 거점이 된 상태예요.

우리 연구소 사람들은 다 이 길에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처음에 이렇게까지 확대되리라고 생각을 안 했어요. 우리 시대에도 식민사관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학자가 한두 명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길인데, 많이 커진 셈이죠. 잘 되면 제 살아생전에 우리 사회가 바뀌는 걸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관측도 갖고 있어요.

Q 글 잘 쓰기로 유명한 역사학자이십니다. 어려운 역사 이야기를 대중들이 읽기 쉬운 글로 잘 전달해주시는데요, 글쓰기 비법 같은 것이 있다면 한 토막만 공개해주시죠.

예전에 석사과정 다니면서 학교는 일주일에 한 번만 갔고 다른 날은 독서실 가서 글을 썼어요. 역사적 글쓰기는 콘텐츠 자체는 논문하고 똑같아요. 논문하고 똑같은 어려운 콘텐츠를 말만 쉽게 한다고 쉬워지는 게 아니에요. 저는 그때부터 콘텐츠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쓸 것인가 고민한 거죠. 재미있기는 영화가 제일 재미있잖아요. 드라마타이즈라는 방법도 공부를 해봤죠. 그리고 책을 내기 전에 최소한 세 번은 직접 교정을 보고 원고를 넘겨요. 지금도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까 고민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글 잘 쓰는 역사학자라는 평가) 봐주시는 것 같아요. 고마운 얘기죠.



사진 : 신동석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