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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 곽노현 “혁신교육, ‘돌이킬 수 없는 지점’ 향해 가고 있다”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5. 9. 2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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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북DB

[저자인터뷰] 곽노현 “혁신교육, ‘돌이킬 수 없는 지점’ 향해 가고 있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조희연 현 서울시교육감의 2심 판결을 한 달 남짓 앞둔 때였다. 조희연 교육감은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 상대 후보인 고승덕 변호사에 대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는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상황. 2심 판결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선거 결과에 따라, 곽노현에서 조희연으로 이어진 ‘서울의 혁신교육’이 다시 한번 위기에 빠질 수도 있었다. 때마침 ‘혁신교육’을 제목으로 내걸고 나온 곽노현 전 교육감의 책에 눈길이 간 것도 당연하다.

2010년 10월 서울의 첫 ‘진보’ 교육감으로 당선된 곽노현. 그는 혁신학교로 대표되는 공교육 혁신 실험을 시작했다. 그러나 2012년 9월 ‘사후매수죄’ 논란 속에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그로 인해 중단 위기에 처한 서울의 혁신교육은 2014년 조희연 교육감의 당선으로 다시 이어지게 됐다. 하지만 조희연 교육감 역시 당선 직후부터 법정 공방에 시달려야 했다. 9월 4일 2심에서는 선고유예 판결을 받아 교육감직을 유지하게 됐지만 다시 대법원의 판결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진보 교육감의 시련은 혁신교육의 시련이다. 여전히 ‘혁신교육 내비게이터’를 자임하고 있는 곽노현 전 교육감. 그가 인식하고 있는 혁신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혁신교육 내비게이터 곽노현입니다>는 2014년 봄부터 약 1년간 그가 진행한 교육 전문 팟캐스트 ‘나비 프로젝트’의 방송 내용과 뒷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자녀교육, 학교교육, 학생인권, 교육문제, 교육정책, 혁신학교 등을 주제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지금 알아야 할 최소한의 교육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고민을 더해 책에 담았다.

그와 한 인터뷰는 근황부터 책에서 찾은 의문과 최근 교육현실의 문제, 그리고 혁신교육의 미래까지 이어졌다. 직접 음료수를 골라 권하며 친절하게 웃던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 단호한 표정으로 교육현실에 대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는 교사를 교육관료로 만드는 관료주의 교육시스템의 병폐가 여전하지만, 혁신교육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낙관했다. 잠자는 교실을 깨우고 ‘공교육2.0’ 모델을 완성할 힌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역시 그의 대답은 ‘교육혁신 사관학교’, 혁신학교였다.



Q 근황부터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제가 공직에 나갈 순 없는데 공익을 추구할 순 있어요.(공직선거법상 벌금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된 선출직 공직자는 5년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 기자 주) 공익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찾아서 하고 있고요, 지방 강연을 많이 다니고, 글도 가끔 쓰고, 팟캐스트 교육전문방송도 하며 살고 있죠.

Q 이번 책의 뿌리가 된 방송 프로그램 이름이 ‘나비 프로젝트’입니다. 2012년 출간된 옥중 편지 모음책 제목도 ‘나비’였고요. 나비라는 단어에 어떤 뜻이 들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책 표지에도 나비가 있죠.(웃음) 나비는 긴 애벌레와 고치 시절을 보내야 하잖아요. 그러다가 변신을 거듭해서 화려한 색깔을 띠고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게 되는데, 그 부분을 강조한 거죠. 우리 공교육을 거친 사람은 누구든지 나비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걸 보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자유혼의 이미지와 나비의 이미지가 잘 맞는 거 같아요.

Q 강연이나 저술활동 등에다 방송 진행까지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물론 “오디오 비디오가 다 된다(?)는 주변의 평가와 권유” 때문이라고 책에 재미있게 써주시기도 했지만 말입니다.(웃음)

그거(‘오디오 비디오’ 얘기) 쓰고서 좀 후회했어요.(웃음) 방송을 시작하게 된 건, 일단 방송은 영향력이 있잖아요. 두 번째로는, 저도 계속 배워야 되잖아요. 방송은 현안을 중심으로 최고의 전문가를 모시고 진행되기 때문에, 제가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거죠. 또 방송을 시작한 시점이 2014년 6월 지방선거(교육감선거)를 100일쯤 앞둔 시점이었어요. 방송의 효과를 최대한 선거 전에 발휘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죠.

Q 방송에서 교육문제에 대해 논평하고 ‘가르치는’ 입장이 아닌, 질문하고 ‘배우는’ 입장에서 진행자 역할을 맡으셨어요. 높은 직책에 있던 분들이 방송을 할 때는 답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만 하지, 답을 구하는 사람이 되려고는 하지 않는 게 보통인데 말입니다.

그런 분들은 ‘오디오 비디오’가 안 되는 거지.(웃음) 방송 진행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방송통신대 교수 출신이라 인터뷰 형식의 대담식 텔레비전 강의를 많이 해보기도 했고요. 잘 할 거 같은 착각이 있었어요.(웃음) 진행자는 시청자가 궁금해 할 만한 사안을 시청자를 대신해서 끊임없이 물어보는 사람이죠. 선출되진 않았지만 굉장히 공적인 자리예요, 일반 시민의 궁금증을 대표하는 사람이니까. 일반 시민의 교육이성과 교육정서를 대표하고 싶었던 거겠죠. 여전히 대표자를 자임한 거예요.



“복종주의 교사상 만들어내는 교육 관료주의의 ‘삼박자’”

Q 책에서 “잠자는 교실은 잠자는 지성과 감성을 낳고 그 귀결은 잠자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라는 문장을 읽고 저의 학창시절을 좀 반성(?)했습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잠자는 문제가 민주주의까지 연결된다는 것이 약간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설명을 조금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 아니에요? 모든 것에 열려 있고 모든 것을 흡수하는 시기죠. 그때 지성, 감성, 도덕성, 감수성 등을 다 길러야 되는데, 특히 민주시민성을 기르느냐 못 기르느냐 하는 것에 따라 민주주의의 미래가 결정돼요. 왜냐면 학교 바깥으로 나가면 생업의 세계가 기다리거든요. 생업의 세계는 엄청난 위계질서와 관료주의, 불꽃 튀는 경쟁이 작동하는 곳이에요. ‘어떻게 살아남을까’, 오직 생존과 성공이 최고의 가치가 될 뿐이죠. 민주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공적인 관심과 참여, 동료 시민에 대한 연대, 불의에 대한 분노나 정의에 대한 추구 등 민주시민의 자질이 함양될 곳이 학교 바깥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해야 할 시점에 엎드려 자고 있다? 잠자는 교실은 20년 뒤 잠자는 민주주의를 불러옵니다. 지금 교실에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민주주의가 자라고 있다는 뜻입니다. 민주주의는 공교육을 먹고 자라는 거예요. 기자님이 반성할 필요는 없고,(웃음) 잠자는 교실을 깨우지 못한 교육 당국이 반성해야죠.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어요? 얼마나 무의미하면 자겠냐고요. 가장 활력이 넘치는 시기에 고작 엎드려 자게 만든 건 어른들의 책임, 특히 학교와 사회 전체의 책임이죠. 다만 ‘내가 학교에서 민주시민성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민주시민으로서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은 의식하고 있을 필요가 있어요.

Q “수업규율은 확 잡고 생활규율은 확 풀어야 한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치며 읽었습니다. 100% 동의하는 문장입니다만, 현실적으로 수업규율과 생활규율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일방적인 강의 형식의 수업만 한다면, 누구라도 졸지 않고 배겨낼 수가 없어요. 그런 경우에 수업규율을 확 잡는다는 건 사실 “가만히 있으라” 교육을 하는 거예요. 교권 중심, 권위주의 교육을 한다는 뜻이거든요. 원칙적으로 살아 있는 수업, 움직이는 수업을 해야죠. 토론식 수업, 모둠 수업을 하면 아이들이 눈을 반짝반짝 뜨고 팀을 짜서 막 움직이거든요. 그러면 수업규율을 강조하고 자시고 할 일도 없는 거죠. 학생 중심, 배움 중심으로 맞춤형 개별화 수업, 활동형 수업을 하는 게 필요하죠. 수업방식을 바꾸는 것이 몹시 중요해요.

물론 그렇게 해도 수업 중에 딴청 피우는 애들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소수가 되기 때문에 바로잡기가 쉬워요. 교사한테 바로잡을 권위가 생긴다고요.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엎드려 자고 장난치고 그러면 엄청난 정도의 강제가 조직되지 않으면 대처가 안 되는 거거든요. 제가 교육감이 될 때 당시의 교실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죠. 이른바 ‘교실붕괴’라는 것.

Q 가끔은 ‘수업에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은 수업을 방해하지 말고 차라리 조용히 잠을 자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교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자고 있는 절반의 아이들을 포기하고 앞자리의 몇몇 아이들만 데리고 수업한다는 건 교육 책임의 절반을 포기한 거잖아요. 교권의 절반이 무너진 걸 방치하는 거예요. 그런 교실에서 교사가 무슨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을 갖겠어요? 아픈 사람한테 의사가 필요하듯이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아이들한테 교사가 더 필요한 건데, 상위권 몇몇만 데리고 수업을 한다? 이건 교사의 존재 의미를 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물론 교사 개개인을 비난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전혀 아니고요, 교육구조와 학교문화, 그 배후에 있는 비민주적 권력관계의 문제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되는 거죠. 다행히 길이 있어요. 혁신학교 보면.

Q 책에 보면, 교육 관료제에 대한 비판이 강력합니다. 특히 “세계 최고로 우수하고 책임감 있는 교사들을 무기력한 집단으로 빚어낸 것은 교육 관료제의 병폐”라고 콕 집으셨는데요, 교육 관료주의를 만든 원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학교는 교장 하기 나름이고 학급은 교사 하기 나름인데, 교사들이 열이면 열 똑같이 하는 얘기가 있어요. ‘공문 처리가 너무 벅차다.’ 공문은 교육부와 교육청이 지시하고 보고받고 지침 내리느라 필요한 거 아닙니까? 상부의 지시와 지침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면 자율적 결정의 여지가 없어서 하급기관인 학교의 교사들은 머리를 쓸 필요가 없잖아요. 게다가 교장선생님은 교육부, 교육청을 늘 의식할 수밖에 없죠. 그러면 어떤 교사를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하겠어요? 공문 처리능력이 좋은 교사죠. 이것이 교장승진제도와 연결이 되는 거예요.

교장이 되려면 수업을 잘하고 생활교육을 인격적으로 하는 분이 유리한 게 아니에요. 첫째로는 고과권을 갖고 있는 교장선생님한테 무지무지 잘 보여야 돼요. 교사 고과권은 실질적으로는 교장선생님 한 분만 갖고 계시거든요. 100점을 한 10년쯤 받아야 교감 자격이 주어져요. ‘예스맨’, 순응주의자만이 교장선생님이 될 수 있어요. 철저한 점수제이기 때문에 점수가 되는 일만 쫓아다니는 거예요. 교장선생님이 되려면 스펙 관리를 20년 이상 해야 되는데 스펙이 실력은 아닐 수도 있어요. 교육활동에서 빼어난 분들이 교장이 될 수 있는 구조가 전혀 아니죠. 여기서부터 불일치가 생겨요.

요컨대, 첫째, 교사가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없는 교육부-교육청 중심의 학교라는 점, 둘째, 복종주의적이고 교육행정에 치중하는 교사상을 요구하는 교장승진제도. 이 두 가지면 사실 교육 관료제는 다 설명돼요. 여기다 하나 더 보태자면 교육재정의 문제가 있어요. 교육재정이 늘 충분치 않아서, 선별된 학교만 대상으로 하는 정책사업 예산의 비중이 너무 높은 거예요. 정책사업을 하면 학교에는 돈이 생기고 교사들한테는 승진 가산점이 생겨요. 교장이 되려는 사람에게는 필수예요. 그런데 이걸 하는 순간 정규교육 과정이 뒷전으로 밀리는 거예요. 이 세 가지가 교육 관료주의의 삼박자예요. 이걸 깨는 게 교육시스템 개혁입니다.

Q 교육계 이슈에 대한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는 이명박 정권 교육정책의 대표상품입니다. 그런데 재정문제 등으로 자사고 지정을 자진해서 포기한 학교도 서울에서만 네 군데나 됩니다(27개 학교 중). 이런 현상을 보고 ‘자사고 정책은 실패했다’라고 선언하는 건 너무 섣부른 걸까요?

신입생 모집 첫해인 2011년부터 자사고는 미달 사태가 나기 시작했어요. 그때 MB정권 교육부에서 특별교부금을 줘서 (부족한 재정을) 다 메꿔줬어요. 안 그랬으면 벌써 다 망했어요. 자사고는 ‘수월성교육의 새 모델을 창출하겠다’고 만든 거거든요. 그런데 ‘입시학원화’에는 성공했는데 ‘교육적으로 내실 있고 의미 있는 학교’, ‘누구나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 하는 학교’라는 평판이 없잖아요. 그냥 ‘선행학습 문제풀이 열심히 시켜서 대학 잘 보낸다더라’ 정도 아니에요? 본인들이 내건 목표에서 철저하게 실패한 학교죠.

두 번째로 교육소비자들이 외면한 학교잖아요. 열 개 정도를 빼놓고는 간신히 정원만 채우는 학교들 아니에요? 일고여덟 개는 정원도 못 채우고 있고. 공급 측면에서 봐도 수월성교육의 모델을 공급하지 못했고, 수요 측면에서 봐도 교육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았잖아요. 오히려 일반고의 공부 잘하는 선두그룹을 엷어지게 한 역기능만 하고 있는 거죠. 일반고에 대한 부정적 효과는 너무나 확실하고, 반면에 ‘한국교육이 발전했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사립학교를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저는 철저한 실패라고 봐요.



“전국 천 개 혁신학교, 학교문화 전체 바꿀 인적-문화적 자원 만들어”

Q 초등학교 한자병기 추진 논란에 대한 의견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7월부터 시행된 인성교육진행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데 토 달 사람 없죠. 그런데 인성교육법의 대전제는 ‘관료제를 동원해서 전국적으로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실시하면 국민 인성이 좋아진다’라는 건데, 이게 문제예요. 일종의 입법만능주의죠. 그리고 인성교육을 ‘한 학기에 몇 시간’ 하는 특별교육 프로그램 정도로 보는 것 아닙니까? 이 두 가지 다, 교육 자체를 잘못 본 거예요.
‘인성교육 실시 횟수와 시간을 적어 내라’는 공문이 왔을 때, 어떤 선생님이 “모든 교과시간”이라고 적어 냈대요. 모든 선생님이 모든 교과시간에 본인이 본(本)이 돼서 인성교육을 하는 거예요. 정규교육 과정 속에서 시나브로 인성의 골격이 자라는 거 아니겠어요? 인성교육을 법에 따라 전국적으로 특별 프로그램으로 시행한다는 것은 대단히 반교육적일 수 있는 발상이에요.

인성교육법에서 정한 여덟 가지 가치가 있어요.(예절, 효행,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 기자 주) 인성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어요. 친밀한 관계에서 요구되는 인성이 있고 친밀하지 않지만 공동체 안에서 요구되는 인성이 있는데, 전자를 사랑의 인성, 후자를 공동체적 인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공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인성은 공동체적 인성, 시민성이고 그 핵심은 정의의 인성이에요. 공적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참여하고 연대할 줄 아는 것. 사랑의 인성은 기본적으로 가정교육의 몫이고, 학교에선 공동체적 인성, 시민성을 체득해야 하는 거죠.

좋은 의도와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법으로 뒷받침돼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법은 국가의 강제와 관료제의 개입을 전제로 해요. 국가에도, 강제에도, 관료제에도 친하지 않은 게 교육이에요. 교육은 그 세 가지와 친하면 친할수록 괴로워요. 거기다 시장경쟁과도 친하잖아요? 그게 딱 지금 우리 교육의 모습이죠. 관료주의, 시장주의, 국가주의, 그리고 이 세 가지에서 성공한 사람을 숭앙하는 엘리트주의. 어떻게 보면 이 네 가지가 민주주의의 주적이거든요. 학교란 아이들을 ‘누구네 집 아이’라는 사적인 위상에서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제2의 탄생을 하게 해야 해요. 거기서 실패하면 공교육은 민주주의의 기관이기를 멈추는 거예요. 

Q 곽 전 교육감님도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법 적용을 통해 교육감직을 잃으셨고요, 조희연 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해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진보교육감을 막으려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요?

선출직 중에 제일 권한이 큰 게 대통령이고요, 그 다음으로 큰 집행권을 갖고 있는 시도지사가 17명 있죠. 시도지사와 똑같은 지역구에서 17명의 교육감이 나오는데, 예산 규모에서 알 수 있듯이 집행권이 시도지사 다음으로 큽니다. 그중 진보교육감이 13명이나 나왔단 말이에요. 보통 정치적 효과가 있는 게 아니죠. 교육감이 유초중등교육을 맡고 있잖아요. 고등학생들은 3년만 지나면 다 투표권자가 돼요. 학생들이 ‘진보교육감 덕분에 학교 다니기가 나아졌다’라고 느낀다면, 이른바 보수진영에서는 당연히 두렵지 않을까요? 진보진영의 잠재적 우호층이 자라고 있는 거니까.

미래를 형성하는 힘이 교육이에요. 그동안 진보진영이 왜 어려웠느냐? 경쟁주의, 엘리트주의, 시장주의, 국가주의 공교육을 했거든요. 이건 민주주의의 진보와 친할 수 없는 공교육이에요. 공교육 시스템을 통해서 보수의 토양이 계속 공급된 거예요. (진보교육감들이) 이걸 바꾸고 있거든요 지금. 민주주의, 인권, 사회정의, 연대, 이런 가치가 공교육 정책을 통해 학생들에게 가고 있는 거죠. (보수진영이) 안 두렵겠어요?

Q ‘징검다리 교육감’이라는 별칭에 대해 “공교육1.0에서 공교육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교육감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공교육2.0의 모습은 혁신학교에서 간접적으로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교육현실은 공교육2.0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나요? 한 1.5쯤이라도 될까요?(웃음)

관료주의 공교육 시스템은 이미 60년 된 체제라 몇 해 만에 뚝딱 바꿀 수 없어요. 중요한 건 (혁신교육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느냐 마느냐 하는 거예요. 그 지점을 이번 2기 진보교육감들이 남은 3년 안에 통과하면 성공이라 볼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1기 진보교육감들의 성과로 학생인권이 모두 퍼졌단 말이에요. 그건 이제 누가 툴툴거려도 뒤집지 못해요. 굉장히 큰 성과인 겁니다. 한편으로는 학교와 교사들이 체벌 포기의 공백과 인권존중의 부담을 소화할 만한 역량과 문화를 갖추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거든요. 그밖에도 많은 대형 과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진보교육감들이) 과감해야 돼요. 무엇보다 수업혁신과 생활교육혁신, 학생자치 강화를 통해서 민주시민성이 몸에 붙게 해야 해요.

이걸 혁신학교가 다 해내고 있거든요. 혁신학교가 전국에 천 개 정도, 10% 정도 있는데, 굉장히 탄탄한 기반을 쌓은 거예요. 혁신학교는 학교문화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인적․문화적 자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겁니다. 교장이나 교사들이 혁신학교에서 4, 5년씩 근무하다가 전근을 가면, 혁신적인 문화와 관행을 일반학교에 전파하는 혁신의 견인차가 될 겁니다. 일종의 교육혁신 사관학교 노릇을 하는 거죠. 공교육 전체의 현실은 아직 ‘공교육1.5’까지도 안 되죠. 그러나 대다수 혁신학교는 거의 ‘공교육2.0’에 가 있어요. 5년 전에는 단 하나도 없다가. 굉장히 놀라운 겁니다. 저는 혁신교육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낙관해요.

Q 마지막으로 꼭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죠.

현 진보교육감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진보교육감들이 힘을 합쳐야 해요. 17명 교육감들 중 13명이 진보교육감이잖아요. 교육문제에 관한 한 대통령 못지않은 대표성을 갖고 있는 거죠. 교육감 혼자서 중앙정부를 상대할 수는 없지만 뭉치면 상대할 수 있어요. 중앙정부와 국회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대학, 경제계, 노동계 등 대국민 설득에 나서서 ‘돌이킬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데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해요. 힘을 합치면 대통령 못지않은 국민 대표성을 가지니까 자신 있게,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발언해야 해요. 각개약진하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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