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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박하 제공)
김현진 작가를 처음 만난 건 6년 전이었다. 같은 또래에 고향도 같았고, 그때 내가 만들던 잡지에 그가 글을 연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가깝게 지내면서도 솔직히 나는 샘도 났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나는 그냥 ‘글 쓰는’ 이름 없는 기자였고, 그는 ‘글 잘 쓰는’ 유명한 작가였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는 대체 뭘 먹길래 이런 글을 쓸 수 있나’ 정말 궁금했는데, 이번 책을 통해서야 그 까닭을 알게 됐다. 그가 청춘의 시절 동안 ‘육체’의 마디마디에 새겨온 치열한 이야기들을.
우리 사회의 ‘핫’한 이슈들을 건드리면서도 특유의 위트와 온정을 담아내는 에세이스트 김현진. 그는 육체에 기록된 이야기의 조각들을 ‘탐구’하는 마음으로 읽어내고 그것을 고백과 공감의 글로 엮어냈다. <육체탐구생활>이라는, 조금은 야릇한(?) 기대를 하게 만드는 제목은 그런 이유로 이 책의 제목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뼛가루가 되어 프림통에 담긴 아버지의 몸, 밤거리에서 누군지 모를 남자의 주먹에 멍든 옆구리, 아버지의 선물 같았던 용역깡패의 식스팩 등 갖가지 육체에 담긴 이야기가 흥미롭게 이어진다.
김현진 작가는 이 책에 대해 “이제 어른으로 살아가 보겠다는 출사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누구보다 솔직하게 자신의 아픔을 먼저 드러내고, 그것을 통해 독자들과 위로를 공유하는 김현진 작가의 장점은 이번 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마치 이 책은 독자들에게 “당신의 몸 구석구석을 한번 만져보라. 그리고 그곳에 기억돼 있는 남루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의 얼굴도 한번 떠올려보라.”라고 권하는 것 같다.
김현진 작가와 한 인터뷰는 질문지도 없이 ‘무턱대고’ 시작됐다. 그냥 술이나 한잔 하자고 그를 불러냈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리 준비한 ‘길’대로 인터뷰를 하는 건 아무래도 그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인터뷰란 원래 기자가 독자를 대신해서 독자가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건네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독자로서 <육체탐구생활>을 읽고 김현진 작가에게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이 책에 있었다. “이뻐. 살려고 하는 것들은 다 이뻐.”(234쪽) 그와 한 인터뷰 같지 않은 인터뷰는 시시한 삶을 나누며 등을 토닥거리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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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는 통제가 아니라 탐구의 대상이라는 것, 최근에야 깨달아”
Q 질문지 하나 없이 인터뷰 나온 건 처음입니다. 이번이 얼마 만에 낸 책이죠?
저도 그냥 술이나 마실 줄 알았는데 맨 정신에 인터뷰라니……. 책 나온 건 거의 만 4년 만이죠.<뜨겁게 안녕> 나온 게 2011년 12월이니까. 그 사이 공저로 쓴 <별별 차별> <가장 사소한 구원>은 빼고.
Q 책을 받아보고 불편한 게 있었어요. <뜨겁게 안녕> 표지에도 작가 얼굴이 들어갔고,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에서는 전신 뒤태가 나왔고. 본인 얼굴을 표지에 넣는 것. 너무 한결같은 콘셉트 아닌가요?(웃음)
절대 아니거든요! 저도 불편했어요. 제발 제 얼굴을 표지에 넣지 말자고 끝까지 싸웠는데 출판사한테 졌어요.(웃음)
Q 어쨌거나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을 때 뭇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제목까지 ‘육체탐구생활’이라서. 제목이 이렇게 된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건가요?
‘미디어스’에서 하던 연재 제목이에요. 인터넷 신문에는 “그 남자 몇 센티미터 된 까닭은?!” 같은 야릇한 의료광고가 많잖아요. 그 옆에 ‘육체탐구생활’이라고 나오면 재밌겠다 싶어서 ‘보호색’처럼 정한 제목이었어요.
Q 여러 매체에 쓴 글들을 하나로 모아서 이번 책이 나온 건데, 그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육체’로 삼은 건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까지 육체를 ‘내가 극복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온 것 같아요. 특히 여성이다 보니 육체를 예쁘게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몸을 틀어쥐고 컨트롤하는 순간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착각이더라고요. ‘육체는 통제가 아니라 탐구의 대상이구나’라고 최근에야 깨달은 것 같아요. 옛날에 스테로이드성 약물 때문에 원치 않게 뚱뚱해진 적이 했거든요. 그 뒤로 이를 갈면서 몸을 컨트롤하고 살아왔는데, 2년 전쯤 큰 좌절을 겪으면서 살이 또 쪘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도 몸이 컨트롤이 안 되더라고요. ‘내 몸이 내가 자기를 미워하는 걸 잘 아는구나. 육체는 그냥 같이 살아가는 대상이구나.’라고 생각했죠.
전 콤플렉스가 되게 많아요. ‘작가가 아니라 필자다.’ ‘등단 코스를 거치지 않았다.’ 이런 콤플렉스도 있고요.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결국에 나는 내 몸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아무나 다 시나 소설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없는 재주를 달라고 찡찡거리지 말고, 내 몸이 알고 기억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죠. 내 몸이 갖고 있는 언어들을 파피루스 판에 쓰여 있는 것처럼 한번 탐구해볼까 하고 생각한 게 이번 책인 것 같아요.
2010년대 초반에 글을 쓸 때 ‘내가 몸으로 하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때도 제가 몸으로 한 녹즙배달 이야기 글들이 제일 좋았던 것 같고, 지금도 사람들이 이 책 중에서 그 글들을 제일 좋아해요. 그런 반응이 좀 재미있긴 하죠. ‘사람들은 자기 몸에 대해서 솔직하기를 바라는구나’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요. 어쨌든 제목은 사람들을 낚으려고 지은 건 아닌데 유감입니다.(웃음)
Q 녹즙배달 이야기는 막 ‘찌질한’ 이야기인데도 읽으면서 유쾌해지잖아요. 억지로 지어내진 않지만 웃음을 주면서 끝나니까요. 그게 어쩌면 김현진 글의 특징인데, 이 책 중에 나머지 글들에서는 그런 부분이 좀 덜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은 녹즙배달을 안 해서 그런 건가?(웃음) 개인적으로 워낙 안 좋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 웃길 수가 없었던 것도 같기도 해요. 얼마 전에 ‘한겨레’ 칼럼에 좀 슬픈 얘기를 썼더니, 어떤 사람이 댓글로 “김현진씨, 젊은 사람이 참 곡절 많은 삶을 사는 듯하다. 앞으로 좋은 글 많이 썼음 좋겠다.” 이렇게 달아놨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제가 정말 너무 슬픈 얘기만 쓴 것 같기도 해요. 그 댓글 보고 ‘아니 나 이렇게까지 불행하지는 않은데……’ 그런 생각도 했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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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끼며 노동하는 삶... 온몸으로 뛰어들었더니 온몸으로 받아주더라”
Q 녹즙배달 이야기는 옛날 월간지에 연재할 때 제가 한번씩 읽은 글들인데도, 다시 읽으니 또 새로운 의미가 보이더군요. 대표적으로 ‘건당’ 이야기. 같은 비정규직이라도 월급 받는 사람과 ‘건당’으로 돈 받는 사람의 차이, 건물 출입증이 있는 청소 아주머니와 출입증이 없는 택배기사의 차이 같은 것. 현실에서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이야깃거리들이었어요.
제가 녹즙배달 하고 커피숍 일 할 때 하루에 16시간씩 비정규노동을 했잖아요. 그걸 통해서 마치 제가 막 대단한 걸 공부하고 어떤 잊힌 데를 조명하고 그런 척했지만, 그게 아니에요. 그것들이 저한테 많은 것을 주고, 웃음을 주고, 안 보이던 곳을 보여줬어요. 내가 온몸으로 뛰어들었더니 온몸으로 나를 받아주고, 나한테 요만큼을 내어준 거죠. “야 니가 작가야? 이게 현실이야!” 그랬던 거예요. 그거 빼고 나 혼자 꿍짝꿍짝 하는 글은 재미없어요. 여럿이서 일하면서 부대끼는 삶이 저한테 이야깃거리를 많이 만들어준 거죠.
Q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의 몸에 대한 글이 맨 앞에 딱 나오던데, 그걸 보니 ‘아 김현진이 탐구하려는 육체는 이런 거구나’라고 느껴지더라고요. 육체를 탐구한다는 것은 사실 육체가 갖고 있는 이야기의 마디들을 찾아가는 거라는 의미가 첫 번째 글에서 강렬하게 딱 왔어요.
그 글이 맨 앞에 들어간 건 아마 출판사 사장님과 팀장님이 그 글을 보고 저한테 전화를 해서 “이걸 우리한테 줘요. 책을 냅시다.”라고 했기 때문 아닐까요?(웃음) 그리고 제목만 보고 엉뚱한 상상을 한 독자들한테 ‘너희는 낚였다’라는 걸 말해주려고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닙니다용 메롱!” 그래도 중간에 넣을 수도 있었는데 양심적으로 맨 앞에 넣었잖아요.(웃음)
Q 아까 ‘등단 코스를 거치지 않았다’는 콤플렉스가 있다는 말을 했는데,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말 그대로 육체에서 꺼낸 글들, 몸으로 써낸 글들이잖아요. 혹시 ‘나도 이런 글들 좀 그만 쓰고 싶다. 좀 고상하고 우아한 글들 좀 쓰고 싶다’ 그런 생각은 안 하시나요?
왜 안 해요? 저도 그런 것 좀 그만 팔아먹고 막 머리에서 지어낸 글 쓰면서 고상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죠. 근데 제가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석사까지 마쳤잖아요. 학위증에 ‘마스터 오브 아트(Master Of Art)’라고 써서 줘요, 마스터. 석사라고 하면 우리 사회에서 인텔리라는 건데, 그런 상황에서 내가 ‘그래 나도 이제 근사한 글을 쓰겠어!’라고 하는 거야말로 너무 평범한 짓 아닌가 싶어요. ‘나도 배울 만큼 배웠고 고상한 거 아니까, 나도 이제 우아를 떨어보자’ 하는 거야말로 너무 지루한 짓 아닌가 하는 거죠.
녹즙배달 ‘여사님’들도 저한테 “야 너 뭐 글 쓰고 그런 거 하니? 그럼 우리 얘기도 좀 써줘.” 그러셨어요. 그분들은 그냥 지나가는 말로 그런 얘기를 하지만, 저한테는 “우리 얘기 좀 써줘, 써줘, 써줘!” 이렇게 에코로 들린다고요. 어디 인식의 섬 같은 거 고민하고 어디 떠내려갔다가 뭘 발견하고 그런 건 그거 잘하는 작가들이 하라고 해요. 저는 ‘어 이건 진짜 내 얘긴데!’ 하고 위안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직 여기 남아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들이 “김현진씨 글을 보니까 이런 얘기도 글이 되는구나 싶어서 저도 이제 글을 써보려고요. 용기가 생겼어요.” 같은 식으로, 욕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웃음)
사실 제 얘기를 쓰는 건 어렵죠. “언제까지 니 사생활 끌어내가지고 쓸 거냐!” 하는 시선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걸 관둘 수가 없는 건 “저도 자살 생각했는데 김현진씨 글 보고 살아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메일을 받기 때문이에요. 제가 조금 쪽팔리는 걸로 누구 인생에 이런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제가 쪽팔리는 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내 얘기를 소설로 쓰면 열 권이 넘을 거야” 하는 사람 주변에 많잖아요. 그런데도 다 그걸 안 쓰는데, 전 그냥 그걸 실제로 쓴 사람일 뿐이에요.
Q ‘김현진처럼 나도 글써보겠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어때요?
‘내가 미래의 톨스토이를 키웠다!’라고 생각하죠.(웃음)
Q 노동문제나 인권문제의 현장에도 연대를 많이 하시잖아요. 그러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육체는 누구의 육체인가요?
책에도 글이 있지만, 장기수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아요. 원래 우리나라 남자들은 여자 손을 잡을 때 덥석 잡은 다음에 “아유 미스김 노래방 가야지.” “놓으세요! 씨X!” “뭐? 너 지금 씨X이라 그랬어!” 이렇게 일을 키우잖아요. 역치를 모른다고 할까? “제발 놓으라고!” 하고 꼭 화를 낼 때까지 놓을 줄을 모르죠. 그런데 그 장기수 할아버지는 정말 내 손목을 몰두해서 쳐다본 다음에 1초도 안 되게 살짝 건드렸어요. 그 다음에 나랑 눈이 마주쳤는데, 스스로 너무 깜짝 놀라면서 미안하다는 눈빛과 자기혐오의 기색 같은 걸 내비치신 거죠. 보통 우리나라 남자들한테는 자기혐오와 반성의 기색 같은 건 전혀 없는데.
남자들을 욕하려는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들이 그런 섬세함을 갖고 있으면 도태돼버리니까 도저히 그걸 간직하고 있을 수가 없잖아요. 우리나라 남자들은 그런 표정을 보이는 순간 “호모새끼!”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답지 못하고 모자란 남자’로 찍혀버려요. 우리나라 남자들도 굳이 장기수 생활 안 하더라도 표정을 잘 드러내고 그러면 좋은데……. 그러려면 꼭 장기수가 돼야 하는 건가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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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탐구생활>은 김현진이 이제 어른으로 살아가려 한다는 출사표”
Q 남자를 솔직하게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고백한 글도 참 가슴 아프게 읽었어요. 자기한테 잘해주는 남자가 있어도 “빨리 본색을 보이란 말야” 하고 그 남자를 괴롭히고, 결국 남자가 견디지 못하고 차갑게 변하면 “역시 남자는 그런 거야” 하고 여기게 된다는 심리. 결국 그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는 말이 와닿았어요.
남자들이 잘해주면 무섭죠. 결혼생활이나 연애를 잘하는 여자들을 보면 아빠한테 예쁨 많이 받고 큰 여자들이 많아요. ‘가부장은 당연히 나를 사랑한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아버지한테 하도 맞다보니까 ‘육친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생판 남이 나를 사랑한다는 거냐’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또 남자들은 여자를 굉장히 원하다가도 여자로서 가치가 없어지면 윈도우에서 휴지통에 파일을 버리듯이 ‘걸레’라고 쓰인 폴더에 여자를 갖다 넣는다는 걸 경험하기도 했죠.
그렇다보니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도 무서운 거예요. 그 남자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야 빨리 쌍놈 짓을 해봐. 너 쌍놈이지? 본색을 드러내라.’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런 게 사실은 ‘난 사랑받고 싶어. 난 너를 사랑해.’ 그런 얘기인데. 비극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누가 좀 잘해주면 그냥 “고맙습니다” 하는 걸 배우려고 해요.
Q 녹즙배달 하면서 그런 태도를 좀 배우지 않았어요? 고마운 ‘여사님’들도 있었다면서요.
녹즙배달 하면서는 애교를 배웠죠.(웃음) 영업적인 애교가 아니라 인간적인 애교. 그 전에는 사람도 잘 못 알아보고 눈도 마주치고 “안녕하세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녹즙배달 하면서 애교를 배웠죠. 남한테 절대 신세 안 지고 살려고 했는데, 이제는 남한테 신세를 약간 지고 내가 좀 더 갚아주면서 살자고 생각하기도 하고, 얌체 같은 인간관계를 조금 벗은 거 같아요.
Q 책 마지막에 리영희 선생, 이소선 여사, 이재영 전 진보신당 정책국장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연달아 나오더라고요. ‘육체’ 이야기와 약간 결이 달라 보이기도 하던데, 그 글들은 왜 넣은 건가요?
저한테 인생의 스승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다면 그 세 분이기 때문이에요. 맨 앞을 아버지의 죽음 이야기로 시작했기 때문에 마지막을 제 스승들의 죽음 이야기로 끝내는 게 대구(對句)가 되기도 하고요. 맨 앞에는 아버지의 죽음, 맨 뒤에는 사상적 부모님들의 죽음.
Q 아버지를 주제로 다룬 글이 아니더라도 이야기의 바닥에 아버지가 알게 모르게 깔려 있는 글들이 많더라고요. 혹시 글을 쓰면서 그 점을 스스로 인식했나요?
저 스스로 ‘아 내가 아버지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라고 알게 됐어요. 책에 나오잖아요. 미워했지만 돈 줄 건 다 줬어요.(웃음) 아버지가 돈 달라고 할 때 한 번도 거절한 적 없어요. 편집본 다시 보면서도 아빠 얘기가 되게 많이 나온다는 걸 새삼 알게 됐죠. 어렸을 때는 아빠랑 되게 사이가 좋았거든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아버지는 그냥 착하고 무능하고 잘생긴 사람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되게 귀여운 사람이었는데……. 아버지는 옛날에 다 용서했어요. 오히려 제가 용서받을 게 남았는데 그러기도 전에…….
Q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려야겠습니다. 그동안 많은 책을 써오셨는데, 이번 책은 작가 김현진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어요.
아버지를 잃고 나서 저도 조금씩 어른이 돼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낸 책들을 쭉 보자면, 여기서 한 번 끊고 가는 것 같아요. “이제는 제가 어른으로서 살아가려고 합니다”라는 출사표 같은 것. 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상실을 첫 번째 맛보면서, 깐족거리던 거에서 좀 벗어나서 어른이 되려고 한다는 출사표라고 할 수 있죠.
나는 수없이 사랑에 빠졌고 끝도 없이 상심해왔다. 내 영혼을 되찾기 위해, 뭔가 진짜인 걸 만져보고 싶어서 그렇게 헤맸으나 내 손에 만져지는 것은 오직 육체가 전부였다. 슬픔과 기쁨, 모든 기억들은 죄다 몸에 새겨져 있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 <육체탐구생활> 10쪽 ‘작가의 말’ 가운데
사진 : 신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