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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몇 년 만인가. 베스트셀러 랭킹 1위에 한 권의 ‘시집’이 등장했다.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2012년에 출간된 이 시집은 9월 22일 방영된 케이블방송 OtvN의 독서 프로그램 ‘비밀독서단’에 소개된 뒤로 단숨에 베스트셀러 랭킹을 ‘역주행’했다. 방송 이틀 후인 9월 24일 인터파크도서 당일 종합 랭킹 1위에 올랐고, 주간 종합 랭킹에서도 9월 넷째 주 9위에 오른 이후로 10월 첫째 주까지 주간 종합 랭킹 15위를 유지하고 있다.
방송의 위력 덕분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반가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각박한 세상, 위로가 필요한 시대. 바쁘게 오며 가며 읽은 짧은 시 한 편에서 위안과 감동과 공감을 얻고, 인생을 버티게 하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다시 시를 기억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시를 읽고 쓰는 짧은 시간은 팍팍한 일상의 작은 쉼표 하나가 돼줄 테니. 이 가을 당신의 감성을 어루만져줄 시집 한 권 골라보는 것 어떨까.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희지의 세계>
박준 시인의 첫 시집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 박준 시인은 2008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하며 “젊은 시의 언어적 감수성과 현실적 확산 능력을 함께 갖췄다”는 평을 받았다. 당시 한 인터뷰에서 박준 시인은 “촌스럽더라도 작고 소외된 것을 이야기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준 시인은 1983년생으로, 올해 서른셋인 젊은 시인이다. ‘작고 소외된’ 것들에 끝없이 관심을 두고 탐구해가는 시인의 내일이 더 기대된다.
박준 시인과 더불어 주목받고 있는 젊은 시인 황인찬의 시집 <희지의 세계>(민음사, 2015) 역시 주목할 만하다. 9월 18일 출간된 <희지의 세계>는 출간 3일 만에 1쇄 1500부가 매진됐고, 9월 말 현재 이미 3쇄까지 인쇄를 마쳤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 박준 시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가운데(<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수록)
▲ <시 읽는 밤 - 시 밤> <걱정하지 마라> <이 시 봐라>
대표적인 ‘SNS 시인’인 하상욱. 2013년 펴낸 <서울 시>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그가 사랑에 관한 시 144편을 모아 <시 읽는 밤 - 시 밤>(예담, 2015)을 펴냈다. <서울 시>에서는 기발하고 재치 있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었다면, <시 읽는 밤 - 시 밤>에서는 여전히 재치 넘치면서도 조금은 진지한 하상욱 시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최근 글배우의 <걱정하지 마라>(도서출판답, 2015), 최대호의 <이 시 봐라>(넥서스BOOKS, 2015) 등 다른 SNS 시인들의 시집들도 온라인 독자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출간됐다.
▲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꼭 한번은 필사하고 싶은 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예담, 2015)는 라이팅북 형식의 시모음집이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독자들도 꼭 한번은 따라 써보길 바라는 국내외 시인의 시 101편을 골랐고, 본인의 시 10편을 함께 덧붙였다. 책의 왼쪽 페이지에는 시의 원문을, 오른쪽 페이지에는 감성적인 디자인의 여백을 마련해 독자가 따라 쓰기 편하게 만들었다. 시를 눈으로 읽고 손으로 쓰고 마음으로 새기는 과정을 통해 공감의 문이 열릴 것이다.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는 시모음집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걷는나무, 2014)도 읽어볼 만하다. 만화가 박광수가 우여곡절 많은 삶을 사는 동안 스스로에게 힘이 돼준 시 100편을 골라 엮은 책이다. 최근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2>(걷는나무, 2015)가 출간되기도 했다.
누구나 눈물 한 말 한숨 한 짐씩 짊어지고/ 밤하늘의 별들 사이를 헤매며 산다./ 시인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시가 헤매는 우리 마음을 잡아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밤하늘의 저 별들이 내 슬픔을 가져갈지도 모른다.
-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작가의 말 가운데
▲ <시를 잊은 그대에게>
아무래도 시가 좀 낯설고 어렵다 싶은 사람들은 시 읽기의 즐거움을 쉽게 이야기하는 ‘시 강의’ 책부터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휴머니스트, 2015)는 한양대 국어교육과 정재찬 교수가 쓴 현대시 에세이집이다. 정재찬 교수가 이공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강좌 ‘문화혼융의 시 읽기’의 내용을 엮었다. 영화와 소설, 유행가와 가곡, 그림과 사진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을 동원해 ‘오감만족’ 시 읽기 수업을 진행한 정재찬 교수. 그는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라는 부제 아래, 중·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한 번쯤 봤을 46편의 시를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