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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영화배우 겸 감독 홍금보. 영화 <칠복성>(1985) 중에서. 저작권 스크린조이)
내 이름은 홍금보, 내 얘기 좀 들어볼래?
안녕? 내 이름은 홍금보야. 물론 본명은 아니고 별명이지. 30대 중반이 되도록 이렇다 할 별명도 없이 살았는데, 요즈음 들어서 드디어 별명이 생긴 거야. 어린 시절에는 모서리처럼 뾰족한 성격 때문에 친구도 별로 없고 딱히 별명도 없이 지냈거든. 그러다가 요 몇 년 사이에 살이 무럭무럭(?) 찌고, 얼굴도 성격도 동글동글해지면서 별명이 생겼지. 없던 별명이 생긴 건 기분이 좋은데, 사실 고민도 좀 생겼어.
1년 중에 나 같은 사람들이 제일 견디기 힘든 때가 요맘때야. 1년 중 헬스클럽의 최고 ‘대목’이라는 6~7월! 다들 여름휴가 때 비키니를 입겠다느니, ‘왕’자 복근을 만들겠다느니 하면서 다이어트에 열 올리잖아. “너 왜 이렇게 얼굴이 커졌냐”, “너도 관리 좀 해야겠다. 더 찌면 안 돼”, “어머 저 배 좀 봐. 옷이 불쌍하다 야” 이런 말을 늘 듣고 살지. 난 별로 생각이 없는데, 사람들은 자꾸 살 빼야 된다고 성화더라고.
사실 난 남자라서 좀 덜한 편이지, 뚱뚱한 여자에게 우리 사회는 정말 가혹하기까지 하지. 혹시 너도 “뚱뚱한 사람=자기관리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뚱뚱해서 죄송합니까?>(2013)를 보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게 될 거야. 이 책은 “예뻐지느라 아픈” 여성 24인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야.
“점점 날씬해지고 싶더라고요. 관심도 받고 싶고 사랑도 받고 싶은데 말로 하기는 싫고. 식이 장애는 다이어트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라 마음의 병인 것 같아요. 저는 예뻐지기 위해 날씬해지고 싶었던 것보다는, 야위어서 사람들에게 관심 받고 동정 받고 싶은 마음……. 내가 아프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으니까, 아파야만 했어요.” - 오뷰(23세, 대학생)
10대 때부터 7년간 식이장애를 앓은 사람의 말이래.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예쁘고 날씬하고 볼 일이야. 뚱뚱한 여성들은 일을 하려고 해도 “용모 단정한 여직원”이라는 말이 앞을 가로막고, 용케 일터에 들어가도 ‘노동자’와 ‘여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지. 상징적으로 말하면 S, M, L로 나뉘는 옷 사이즈에 사람의 인격까지 서열화 된다고 할까?
더 끔찍한 건 이런 비뚤어진 인식 때문에 지나친 다이어트를 하다가, 정말 환자가 돼가고 있다는 거야. 건강해지기 위해 하는 거라는 다이어트가 사람들을 폭식증, 거식증, 자기혐오, 불안, 우울증 등으로 몰아넣고 있어. 식이장애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발병률이 10배 이상 높아. ‘오뷰’라는 여성은 그걸 “뚱뚱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처벌 때문”이라고 해석했대. 이런 말을 스스로 하기까지 그분이 겪어야 했던 차별과 왜곡된 시선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가지.
그래서 난 묻고 싶어. 살찐 게 정말 그렇게 나쁜 거야? 정말 내가 게으르고 의지가 약해서 살이 찌는 거야? 비만이라는 건 정말 치료해야 할 ‘질병’인 거야? 작년 5월에 ’SBS 스페셜 - 비만의 역설‘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 있어. <다이어트의 배신>(2013)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만든 다큐멘터리인데, 작년 말에 나온 그 책의 개정판이 <비만의 역설>(2014)이야. 아힘 페터스라는 독일의 뇌과학자가 썼는데, 난 제목보다 부제에 더 관심이 가더라고. “왜 뚱뚱한 사람이 더 오래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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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사람이 더 오래 산다는 말, 들어봤어?
<비만의 역설>에 따르면, 과도한 지방은 심장질환의 발병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증상 악화를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그리고 인공신장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은 뚱뚱한 환자들이 날씬한 환자에 비해 생존율이 높았대. 뿐만 아니라 뇌졸중, 뇌출혈, 심근경색, 심부전, 폐부전, 간부전, 패혈증, 제2형 당뇨병 같은 병에도 마찬가지였다는 거야. 우리는 비만을 ‘만병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잖아. 이 책에서는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는 거지. 물론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의사들도 많을 거야.
또 이 책은 체중 증가가 질병의 신호가 아니라 ‘스트레스 조절을 위한 인체의 가장 성공적인 전략’이라고 그래. 스트레스 호르몬 때문에 몸이 장기적으로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체중이 늘어난다는 거야. 살을 빼는 건 개인의 자기억제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심리적 스트레스를 통제해야 하는 문제라는 거지.
“의료 산업과 제약 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입장에서의 이상적인 질병은, 그 질병에 시달리게 하면서도 죽지 않게 하고, 효과적으로 치료도 안 되며, 그러면서도 여하튼 의사나 환자가 이 병을 치료하고자 달려드는 그러한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의 건강관리 산업은 바로 이런 질병을 발견(오히려 창조)했다. 이 병은 ’비만’이라 불린다.”
이건 이대택 국민대 교수가 <비만 히스테릭>(2010)이라는 책에서 한 얘기야. 과체중과 비만은 정말 건강에 나쁜지, 비만 때문에 조기사망률이 높아진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우리가 믿고 있는 비만에 관한 “조작된 진실”을 이야기한 책이지. 이 책은 아예 ‘비만은 창조된 질병’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논란이 될 만한 얘기지? 반대로 그런 의미에서 한번 읽어볼 만하기도 하고.
‘마르지 않은’ 사람들에게 여름은 다이어트에 지치고,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도 지치는 정말 힘든 계절이야. 그런 사람들에게 이 사람의 메시지가 좀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해. 개그우먼 이국주 말야. 사실 요즈음 개그우먼들은 크게 두 부류야. 뚱뚱하거나, 못생기거나. 여성의 외모를 가지고 놀리는 게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아주 흔해졌어. 그걸 보면 기분이 별로지만, 그래도 이국주가 나오면 반가운 이유가 있어.
“수술해서 살을 빼고 싶다면 당신의 몸이 아닌 마음을 수술대 위에 올려놔야 한다.”
<나는 괜찮은 연이야>(2015)에 이국주가 쓴 글이야. 뚱뚱한 캐릭터로 사람들을 웃기지만, 그녀가 자기 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지. “덩치가 남들보다 크다고 해서 우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전지현, 송혜교 외모가 될 수 없다면 내가 가진 이 현실적인 비주얼을 당당히 인정하는 건 어떨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외모가 전부는 아니니까”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야말로 ‘개념연예인’ 아닐까?
그래. 내 별명은 홍금보야. 아직 좀 어정쩡한(?) 신흥 뚱보지. 더 찌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꼭 빼야겠다는 생각도 없는 사람. 사실 난 아직 잘 모르겠거든. 뚱뚱한 사람이 비정상인 건지, 사람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생각이 비정상인 건지. 그래서 올해도 내 다이어트는 ‘아몰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