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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앤스토리] 술이 들어간다 이야기가 나온다

책소식/책 소개

by 최규화21 2015. 9. 1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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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북DB

[이슈앤스토리] 술이 들어간다 이야기가 나온다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 쭉쭉 쭉!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술을 권할 때 부르는 노래란다. 어깨를 아래위로 들썩들썩거리면서, 술을 마셔야 할 사람에게 약간 들이대면서(?) 불러줘야 제맛이다. 주로 술자리 게임에서 벌칙에 걸린 사람에게 불러주는 노래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술 마시는 게 왜 ‘벌칙’이지?

본격적으로 술의 세계에 입성한 스무 살 무렵부터, 그래서 나는 술자리 게임을 싫어했다. 벌칙에 걸리지 않으면 그 좋은 술을 코앞에 두고도 마시지 못한다는 적반하장 식의 규칙 때문에, 일부러 티 나게 벌칙에 걸린 뒤 혼자 술을 마셔버려서 다른 사람들의 ‘게임욕구’를 깨어버리기도 했다. 한 해 두 해 지나 ‘선배’가 된 뒤에는 후배들에게 술자리 게임을 금지시키는 ‘금(禁)게임령’을 내려 폭군의 오명의 뒤집어쓰기도 했다.

술은 한낱 시답잖은 게임의 벌칙 정도로 대우받아서는 안 되는 귀하신 몸이다.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윤활유이자 영원한 친구이며, 심지어 인생의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인생에 크고 작은 ‘이야기’를 남기는 신비의 묘약, 술. 아무리 어려운 사람도 술이 들어가면 동네 형처럼 편해지고, 과묵한 사람도 술이 들어가면 수다쟁이가 된다. 그리고 얼음장처럼 차갑던 그녀도 술이 들어가면 눈에서 ‘하트 뿅뿅’ 쏘아주신다.


술이 벌칙이 되는 세상이라니… 오호통재라!

하지만 술이 남긴 이야기는 자칫 ‘끊겨버린 필름’과 함께 사라질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술자리 이야기, 술 마시며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글에 담는 작가들이 참 존경스럽다. <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2015)의 저자 한유석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그가 아니라 그녀다)는 광고인이다. 광고대행사의 전문임원 자리에 오르기까지 인생의 파도를 온몸으로 맞아온 사람으로서, 술은 그녀에게 인생의 ‘버팀목’이었다.

책에 나오는 술의 종류를 보니 ‘주종불문’ 주당의 포스가 강력하다. 우리 같은 사람이 매일 마시는 소주, 맥주, 막걸리부터, 생전 이름도 못 들어본 텍스트북 미장 플라스, 부르고뉴 알리고떼 같은 고급스러운 술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술 이름에 현혹되지 말 것. 한유석 작가의 초점은 술이 아니라 ‘사람’에 맞춰져 있다.

“술자리의 내다버리고 싶은 기억도 많지만, 땅거미가 지는 밤, 그래도 술그늘을 찾는 것은 음식그늘, 사람그늘이 함께 빚어내는 아름다운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픔과 세월을 공통분모로 사람, 음식, 술이 만나 하나가 되는 순간, 그 자리는 반딧불이숲이다. 무거움의 몸체는 사라지고 모두가 눈빛이 되는 순간, 그 순간은 순수의 순간이고,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감사의 순간이다.”(<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 308쪽)



음반사 대표 김영일이 이 책을 추천하며 “마시고 마시다 보면 우리가 가닿는 곳은 사람의 곁이고, 결국엔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는가”라고 한 것도 한유석 작가의 목적지가 술이 아닌 사람임을 알기 때문일 거다.

<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의 ‘고급진’ 문장과는 좀 다르지만, 생생한 에피소드와 친근한 만화를 통해 대한민국 젊은 술꾼들의 ‘대동단결’을 이끌어낸 책이 있다.<술꾼 도시 처녀들>(2014).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연재 중인 웹툰으로 종이 위에 옮겼다. 서른다섯 동갑내기 술꾼 ‘정뚱’, ‘꾸미’, ‘리우’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네 컷 만화다. 출판사가 내건 “민간인 음주 사찰 만화”라는 카피가 과장이 아니라 느껴질 정도로, 나 같은 민간인들의 술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사찰한 듯’ 그대로 빼다 박았다. 

작가인 ‘미깡’은 그녀의 필명 역시 술 마시고 게임 하다가 지었다는 술꾼이다. 만화의 세 주인공과도 동갑내기인 그녀는 실제 그녀의 ‘인격’을 세 주인공에게 나눠 반영했다고 한다. 아, 책 제목은 “술꾼 도시 ‘처녀’들”이지만 작가 미깡은 아이까지 낳은 유부녀다.

이 책을 읽고 한잔 ‘땡기러’ 가고 싶을 사람들,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추천 안주와 ‘술꾼 주사위 게임’이 수록돼 있다. 주사위에 적힌 ‘술값 내기’, ‘옆 테이블에서 술 얻어 오기’, ‘모범택시 타고 집에 가기’, ‘옛날 애인에게 문자 보내기’, ‘30분 금주’, ‘옆 테이블과 안주 바꿔 오기’라는 벌칙들. 지금 당장 해보고 싶다. ‘30분 금주’만 안 걸린다면 괜찮다. 읽으며 즐기고 마시며 또 즐기는 놀이 같은 책이다.


술이 만든 역사, 역사로 남은 술 이야기

이야기의 원천인 술은 ‘역사’ 또한 만들어낸다. 남녀 사이의 그런 역사(?)도 그렇고, 역사수업 시간에 배우는 역사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나 같은 사람이 술 마시고 토하면 그냥 이야기가 되는 거고, 대통령 같은 사람이 술 마시고 토하면 ‘역사’가 되는 거다.

진짜 그렇게 술 마시고 사고를 쳐서 역사에 남은 대통령이 있는데, 그가 바로 전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이다. 그는 1995년 미국을 방문해, 국빈 전용 숙소인 블레어 하우스 앞에서 속옷 차림으로 택시를 잡으려다 경호원에게 걸렸다. 취기가 만연한 그는 피자를 사러 가는 길이라고 했단다. 그는 그 다음 날에도 숙소 지하실 근처에서 술에 취한 채 발견될 정도였다고 한다.

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 김원곤 교수가 쓴 <세계 지도자와 술>(2013)에 나오는 이야기다.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썰’ 풀기 딱 좋다. 술을 사랑해서 수많은 이야기를 남긴 세계의 지도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역사의 순간에 등장하는 술에 대한 책이다. 윈스터 처칠은 “술이 내게서 앗아간 것보다 내가 술로부터 얻은 것이 많다”고 했을 정도로 주당이었다는데, 그와 루스벨트 사이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 번은 유명한 술꾼 처칠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그와 보조를 맞추어 술을 즐기다, 술자리 후 몸을 회복하기 위해 3일 동안 하루 10시간씩 잤다는 기록도 전해진다.”(<세계 지도자와 술) 21~22쪽)



대박이다. 세상에 처칠과 루스벨트가 ‘대작’을 벌인 것 아닌가. 결국 처참한 패배 후 3일 동안 ‘갤갤거렸다’는 루스벨트가, 순간 우리 같은 ‘민간인’ 급으로 만만하게 보이기도 한다. 제 아무리 대통령이니 수상이니 하는 사람들도 술 앞에서는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이렇게 술이 만들어준 재미있는 역사의 뒷 페이지 이야기와 함께, 책에는 술의 역사, 역사 속의 술 이야기가 가득하다.

“술이란 무엇일까 어젯밤 그녀에게/ 사랑 고백했던 용기가 어디서 생겼을까 정말/ 술이란 신기하지 어색한 친구 놈과/ 부둥켜 안고 울며 불며 밤새워 신세타령/ 신촌 구석진 선술집에 계란말이를 잘 하시는/ 맘씨 좋으신 아주머니 생각만 해도 편안해져/ 술이란 마법 같지 근사한 양복신사/ 허름한 청바지 학생도 취하면 모두 동무.”(토이의 노래 ‘애주가’(1997) 가사 가운데)



도저히 안 되겠다. 어제부터 술 책만 읽고 오늘은 하루 종일 술 이야기만 썼더니 온몸에서 술을 찾는다. 모두가 동무가 되는 마법 같은 술을 마시고, 나도 <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의 한유석 작가처럼 술그늘, 음식그늘, 사람그늘이 함께 있는 반딧불이숲으로 들어가야겠다. 팀장님! 마감도 다 쳤는데 오늘 저녁에 회식 한번 가시죠! 양꼬치&칭따오로,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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