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내식당의 밥맛은 그게 무슨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오늘의 핵심메뉴는 오늘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밥상을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두 번 세 번 읽어봐도 ‘구내식당 밥맛은 새삼스럽지 않다’는 말밖에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방송인 유병재씨가 ‘구내식당 밥맛 좋기로 유명한’ 한 연예기획사와 계약을 맺은 뒤 SNS에 남긴 글. 이 글을 해독하려면 ‘원조’부터 알아야 한다.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한다.”
5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유병재씨처럼 수많은 누리꾼들이 패러디하며, 일약 유행어가 된 ‘그네어’ 또는 ‘박근혜 사투리’. SNS에는 대통령의 발언만 번역하는 ‘번역기’ 페이지가 있을 정도다. 재기발랄한 패러디 글들을 보면서 웃기는 웃는다만, 어째 남 일 같지 않다. 말하기, 화술, 화법 같은 단어들은 ‘말이라도 잘하면 먹고살기가 좀 낫지 않을까’ 싶은 우리한테나 중요한 줄 알았는데, 대통령도 말하기가 마음대로 안 되기는 매한가지인가 보다. 그놈의 말하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http://bimage.interpark.com/milti/renewPark/evtboard/20150623102403856.jpg)
말하기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달변가’의 조건
미국의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샘 혼(Sam Horn)은 그의 책 <사람들은 왜 그 한마디에 꽂히는가>(2015)에서, 대화의 핵심은 ‘관계 맺음’이라고 했다. 그는 “삶의 성공과 만족은 당신이 세상에서 맺는 관계의 질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관심과 집중이다”(242~243쪽)라며 대화 이전의 ‘관계’와, 그것을 만드는 ‘관심과 집중’을 강조했다.
구체적인 대화 기법으로는 ‘INTRIGUE(인트리그)’ 기법을 소개했다. ‘흥미를 불러일으키다’라는 영어 단어의 각 철자에, 순서대로 또 다른 단어의 머릿글자를 대응시켜 만들었다. 이것은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일종의 레시피로, 의사소통 참여자 모두의 가능성을 배려하는 대화 기법이다.
Intro(서두) : 두려운 것은 딱 하나, 지루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New(새로움) : 진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워야 한다
Time(시간) : 시간은 누구나 아까워한다
Repeatable(반복) : 사람들은 왜 그 한마디에 꽂히는가
Interact(상호작용) : 아는 것을 서로 나눠야 한다
Give(관심 주기) : 상대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뭔지 찾아내라
Useful(유용함) : 우리는 모두 연관성을 찾아 달리고 있다
Example(예시) : 익숙한 장면을 뒤흔들고 감정을 움직여라
일단 저 철자들을 다 끼워 맞춘 게 참 신기하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뭔가 더 확실한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 5월 한국을 찾은 샘 혼은 <북DB>와 한 인터뷰에서 더 흥미롭게 와닿는 ‘팁’을 줬다. 그것은 뜻밖에 ‘눈썹’이다.
“대화를 할 때 (줄임) 눈썹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눈썹이 올라가면 대화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지만 눈썹이 잘 움직이지 않으면 상대가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에요.”
우리한테는 샘 혼보다 더 친숙한 ‘말하기 전문가’가 또 있다. 검은색 뿔테안경, 멜빵, 팔뚝까지 걷어올린 셔츠 소매, 책상에 팔꿈치를 괴고 앞으로 바짝 당겨 앉은 자세. 바로 미국의 방송진행자 래리 킹(Larry King)이다. 우리 나이로 82세인 그는 1957년에 방송에 데뷔한 뒤 5만 명 이상을 인터뷰해왔고, 자기 이름을 건 토크쇼를 25년간 진행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토크계의 ‘레전드’가 말하는 말하기 비법은 뭘까?
래리 킹은 그의 책 <대화의 신>(2015)에서, 말하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태도’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내가 배운 한 가지는, 우리가 올바른 태도만 가진다면 이 세상에서 말을 건네지 못할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6쪽)라면서, 진심 어린 경청과 솔직함을 소통을 위한 최고의 무기로 꼽았다. 성공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대화의 기술만 익힐 것이 아니라 대화를 위한 기본 자세,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성공 노하우는 이 평범하지만 중요한 진리 안에 있다고 말한 래리 킹은 더 구체적인 조언도 잊지 않았다. 말 잘하는 사람들의 8가지 말하기 습관이다. ‘나는 이 가운데 몇 가지나 해당되나’ 한번 보시라.
1) 익숙한 주제라도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2) ‘폭 넓은 시야’를 가지고 일상의 다양한 논점과 경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한다.
3) 열정적으로 자신의 일을 설명한다.
4)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려 하지 않는다.
5) 호기심이 많아서 좀 더 알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6) 상대에게 공감을 나타내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 말할 줄 안다.
7) 유머 감각이 있어 자신에 대한 농담도 꺼려하지 않는다.
8) 말하는 데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34~35쪽)
관계와 태도, 연민과 지식을 통해 완성되는 진정한 ‘말하기’
말하기를 잘하는 핵심 노하우로 샘 혼은 ‘관계 맺기’, 래리 킹은 ‘태도’를 강조했다. 하지만 <비폭력대화>(2011)의 저자 마셜 B. 로젠버그(Marshall B. Rosenberg)는 더욱 정서적인 개념인 ‘연민’을 내세웠다. 로젠버그는 연민을 서로 주고받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고 믿고, 연민이 우러나는 유대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대화 방법인 ‘비폭력대화(NVC)’를 고안했다.
오랜 세월 동안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소통만을 강요당해온 우리 사회의 경험을 돌아보면, ‘대화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비폭력대화는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를 본성에 머무르게 하는 의식, 연민 어린 연결을 길러주는 소통방법, 협력하여 모든 사람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힘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비폭력대화>를 따라 읽으며, 내가 하는 대화는 얼마나 ‘폭력적인지’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http://bimage.interpark.com/milti/renewPark/evtboard/20150623102813670.jpg)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말하기의 비법은 바로 ‘지식’이다. 앞서 말한 관계나 태도, 연민 같은 것들은 그냥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지만, 이번엔 ‘지식’이라고 하니 이거 뭔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남을 주눅 들게 할 정도로 전문적인 것도 아니고, 술자리에서 아는 척하는 데 쓰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것도 아니다. 오직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그것이다.
같은 이름의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며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014)을 펴낸 ‘채사장’. 제목 때문에 오해를 어지간히 받았나 보다. 그는 지난 4월 <북DB>와 한 인터뷰에서 “제목만 보고 비판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실제로 읽어보면 역사, 경제, 정치, 사회 등 개별 분야의 지식에 대해 쓴 것이 아니라 구조를 전달하는 책이다”라고 말했다. 근데 왜 ‘말하기’ 이야기를 하다가 ‘지식’에 ‘구조’까지 나오는 걸까?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공통분모다. (줄임) 과거와 미래의 사람들까지 아울러서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공통분모, 그것을 교양, 인문학이라고 부른다.”(‘프롤로그’ 중에서)
채사장은 ‘넓고 얕은 지식’이란 곧 교양과 인문학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모든 사람은 세상에 무엇인가를 배우러 온 순례자”이며, “그 무엇인가를 배워나가는 방식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라고 정의했다. 지식을 통해 대화의 공통분모를 갖추고, 대화를 통해 또 지식을 넓혀가는 것이 대화와 지식의 ‘선순환’이라고나 할까? 말하기의 비법 중 마지막으로 ‘지식’이 들어간 까닭은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을 따라한 패러디 글을 보며 낄낄거리고 시작했다가, ‘관계’와 ‘태도’, ‘연민’을 거쳐 좀 부담스럽게도 ‘지식’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혹시나 뭔가 숙제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드신다면 미리 사과드린다(솔직히 나부터 그런 느낌이다). 이상의 말하기 비법에 내 마음대로 한 가지를 더한다면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말하기를 잘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