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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대변은 금지” 팻말에 담겨 있는 ‘비자 계급사회’의 현실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5. 9. 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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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북DB

[저자 인터뷰] “대변은 금지” 팻말에 담겨 있는 ‘비자 계급사회’의 현실




“워킹이 한국의 일상하고 이렇게 많이 맞닿아 있을 줄은 몰랐어요.”

토익 만점이 몇 점인지도 몰랐으면서 호주 워킹은 무슨 자신감으로 갔느냐고 묻자, 정진아 작가가 답했다. 해당 국가를 여행 중인 젊은이가 어학연수, 취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 비자. 이 비자로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들을 정식으로는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라 부른다. 줄여서 ‘워홀러’, ‘워홀’, ‘워킹’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지만, 정진아 작가는 <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에서 ‘워킹’이라는 용어를 썼다. “‘홀리데이’가 빠진 현실을 잘 보여 주는 것 같아”서 이 용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는 단순한 ‘고생담’에 그치지 않는다. 매년 3만여 명의 한국 청년들이 호주로 워킹을 떠나는 현실. 단순히 비자의 종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분’이 돼버린 워킹의 의미를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만나게 될 ‘비자 계급사회’의 현실도 꼬집는다. 땀냄새가 풀풀 나는 것 같이 생생한 작가의 체험에, 이후 작가가 직접 취재하고 조사한 자료들을 더했다.

워킹 이후 전공을 바꿔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정진아 작가. 성직자라는 그의 꿈이 ‘떼인 돈 받아주는 변호사’로 바뀌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9개월간의 워킹이 바꿔놓은 그의 삶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워킹을 하면서 쓴 일기가 바탕이 돼서 책이 나왔다고요. 처음부터 책을 내겠다고 일기를 쓰신 건가요?

처음에는 일기를 안 썼죠. 즐거웠기 때문에.(웃음) 초반에는 시드니의 야경, 이색적인 ‘먹방’ 같은 걸 블로그에 올렸어요. 사람들이 “외국 가서 좋겠다” 그런 반응을 하는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그들이 원하는 얘기를 올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부터 블로그에 안 올리고 혼자 일기를 쓰기 시작했죠.

같이 간 대학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밤마다 같이 얘기를 했어요. 오늘 겪은 부당한 일은 무엇이었는지.(웃음) 그때 ‘세상에 우리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언젠가는 누군가는 우리 얘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로 정리를 했어요. 나중에 한국에 와서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하는 강좌를 들었어요. 뒤풀이 자리에서 일기 얘기를 하니까 출판사에서 ‘보여줄 수 있겠느냐’ 해서 일기를 보내드리고, 그 다음부터 책 작업이 시작됐어요.

Q 워킹의 ‘장밋빛 미래’를 말하는 책들이 많습니다. 그런 책들이 그리는 호주 워킹의 모습은 어떤 건가요?

초반에 출판된 책들은, 영어도 배울 수 있고, 외국인 친구들도 만나고, 외국생활의 환상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리고 후반에 출판된 책들은 사실 제가 겪은 사례들에 대해서 조금씩은 이야기하고 있어요. 하지만 둘 다 공통적으로 방점을 ‘여행자’에 찍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현실과 다르지 않았나 해요. 그들이 말하는 장밋빛 미래에는 항상 단서가 달리거든요. ‘당신이 열심히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는 자리는 한정돼 있고, 다수는 그렇게(성공) 할 수 없는 구조인데 모든 걸 개인에게 돌리는 식으로 서술하는 건, 거기(워킹)서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한테는 더 큰 상처를 주는 일인 것 같아요.


Q 워킹으로 온 사람들이 ‘투잡’ 등으로 상당히 오랜 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호주의 최저임금은 얼마 정도인가요? 워킹들의 임금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호주는 주(州)별로나 업종별로 최저임금보다 높은 기준들이 있어요. 제가 일한 다섯 군데 일터 중에서 최저임금을 지켜서 준 곳은 딸기농장 한 군데였어요. 나머지는 다 ‘교민최저임금’을 받았어요. 그 당시 제가 있던 주의 최저임금이 17달러(약 1만4000원, 이하 호주달러)쯤 됐는데 교민최저임금은 9~10달러(약 8000원)였어요. 누가 딱 정한 것은 아니지만 암묵적인 합의로 모든 교민 사업장에서 적용되는 임금이에요.

Q 그럼 업주가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호주 당국은 단속을 안 하나요?

저도 단속을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잘 안 해요. 책에도 썼다시피, 위생검사는 엄청 열심히 하는데 일하는 환경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더라고요. 올해 이 책을 쓰는데 ‘호주에서 한 교민 업소가 당국에 최저임금 위반으로 고액의 벌금을 물었다’는 기사를 봤어요. 한 업소가 단속에 걸린 것이 기사가 될 정도니까 단속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거죠.

Q 책에서, 한 교민 업소에는 “근무 중 소변만 가능, 대변은 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는 얘기를 읽으면서는 정말 실소가 터져나왔습니다. 이런 것이 얼마나 보편적인 사례라고 봐야 할까요?

그 일을 겪은 친구는 그게 재밌다고 얘기해준 거예요. 진짜 산업혁명 시기에 일어날 법한 일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거예요. 교민 업소가 아니라도 임금이나 일하는 환경은 비슷해요. 제가 책에서 교민 업소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은 민족적으로 “한국 사람들끼리 왜 그러냐” 이런 문제를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교민 업소들에서 제공하는 상품들이 되게 저렴하고 질이 좋아서 호주 사람들이 좋아해요. 그렇게 (워킹들을) 쥐어짜야 그렇게 저렴한 물건들이 생산될 수 있더라고요. 그런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싶더라고요.

“저는 여기 6개월 일하면서, 화장실 안 갔어요.”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처음에는 놀라웠지만, 워킹이라면 자주 겪는 일이다. 같이 하숙을 하던 친구의 가게에는 “근무 중 소변만 가능, 대변은 금지” 팻말이 붙어 있기도 했다. 게다가 소변도 너무 자주 보면 경고였다! 이후 직원들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자신은 대변이 아니라는 것을 꼭 알린 후 최대한 빠른 시간에 다녀왔다고 한다. 친구는 변비에 걸릴 뻔 했다고 했다.(82쪽)



Q 기억에 남는 교민 업주들의 ‘갑질’ 이야기, 어떤 게 있나요?

이것도 불법인데, 워킹 일 시작하면 보증금이 있거든요. 석 달을 일해야 받을 수 있는데, 2~3주치 임금을 (업주가) 묶어놔요. ‘워킹이 석 달 안에 도망가면 안 주겠다’ 이런 식으로. 한 친구가 석 달을 채우기 일주일 전에 휴가를 받았어요.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니 쉬고 오라고. 감사하다고 쉬고 오니, 이미 자기 자리에 다른 사람이 와서 일하고 있는 거예요. 사장님한테 물어보니, 이미 다른 사람을 구했으니 일을 그만두라고 그러더래요. 그래서 보증금을 달라고 하니까, 3개월을 채우지 않아서 줄 수 없다고 그랬대요.





Q 최저임금을 주는 곳을 찾다가 결국 농장까지 가서 일하게 됐다고 읽었습니다. 참 재미있던 것이 “슈바” 티셔츠를 입은 남자들이었어요. 그들의 정체는 뭔가요?

한국분들이고요, (티셔츠에) “슈바”라고 한국어로 써 있어요. 녹색 티셔츠에 빨간 글씨, 아니면 빨간 티셔츠에 노란 글씨로 딱 앞뒤로 써 있어요. (일꾼들을) 군대식으로 움직이게 해요. 구호를 외치게 하거나 노래를 막 부르게 하거나. 농장에는 일꾼들을 대는 브로커들이 있고, 일꾼들을 받으면 현장에서 관리하는 관리자들이 있는데, 슈바(슈퍼바이저)는 현장 관리자를 겸하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중에는 같은 워킹들도 있는데, 그건 장기적으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유학생 비자나 다른 비자를 가지고 있죠.

Q 책에, 문 수리기사 같은 기술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호주 사회에서 일반적인 노동자의 지위는 한국에 비해 어떤가요?

노동하는 분들이 눈에 많이 띈다는 점에서 한국이랑 다르다고 느꼈어요. 예를 들면 지하철이 고장 나면 우리는 새벽에 사람들 안 다닐 때 고치잖아요. 호주는 (낮에) 지하철을 멈추더라고요. 밤에는 일하는 사람들도 자야 된다고. 우리는 작업복 입고 시내에 다니지 않잖아요? 호주는 작업복 그대로 입고 시내를 다니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마트를 가더라도 계산원한테 재촉을 한다거나 ’고객은 왕인데‘ 하는 게 전혀 없어요.

그런데 그런 사회가 워킹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여기는 정말 이중세계구나. 같은 곳에 살고 있지만 다른 원칙 속에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대적인 박탈감이 큰 거죠. 소위 선진국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이 들었어요. 좋은 제도를 유지하고 자국민에게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서 그 밑에서 더러운 일,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 사회가 정말 좋은 모델인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워킹은 단순히 비자의 형태가 아니라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분‘이었다. 워킹들끼리 호주 한인 사회의 신분 피라미드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워킹은 최하층이다. 그 위에는 이민을 준비 중인 직업학교 유학생, 그 위에는 일반 유학생, 그다음은 현지 교민, 그 위는 현지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계 호주인들이 있다.(63쪽)




Q 농장에서 일하다가 잔디 위에 누워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더니, 사람들이 “멋지다”, “가고 싶다”는 댓글을 달았다면서요.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솔직히 말하면 ‘아 이래서 워킹 관련 책들을 다 그렇게 썼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이런 게 팔리는구나. 사람들은 이런 데 반응하는구나.’ 제가 남의 아파트 거실에 파티션 쳐놓고 살았거든요. 아파트가 고층이라서 야경은 좋아요. 그날도 일을 너무 힘들게 하고 거의 기어 들어와서, 해가 지길래 사진을 한번 찍어서 올렸는데, 반응이 정말 좋은 거예요. ‘호주의 고층 아파트 테라스에 앉아서 일기를 쓰다니!’ 뭐 이런 반응. 그런 데서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 빼고 다 행복한 세계 같은?

Q 바퀴벌레가 나오던 모텔의 주인아주머니가 신혼여행으로 다시 오라는 말을 했다고 썼습니다. 시간을 되돌려서 스물다섯 살 그때로 돌아간다면, 호주 워킹은 다시 가실 것 같아요?

네, 또 갈 것 같아요. 저는 워킹 제도가 문제점도 많고 개선해야 할 점도 많다고 얘기는 하고 있지만, 이 제도를 만들고 홍보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목적과 다른 차원에서 얻는 게 많았어요. 시각이 넓어진다고 할까? 그냥 외국 나가서 큰 땅 봐서 시각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볼 때 여러 층에서 같이 볼 수 있게 됐어요. 이런 것들은 한국에서 한국 사람으로서는 이주노동자가 돼볼 수 없잖아요. 배제된 사람의 시각으로 세상을 봤다는 거, 그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쉽게 얻을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Q 대학교에서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가 지금은 진로를 바꿔서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워킹 경험이 얼마나 영향을 준 건가요?

정말 (워킹을) 안 갔다 왔으면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생각도 안 했을 것 같아요. 성직자가 되는 거나 사회단체 활동가가 되는 것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는 게 이런 거구나, 사람한테 필요한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정확하게 알게 된 것 같아요. 대학원 입학할 때 자기소개서에 이렇게 썼는데요, ‘떼인 돈 받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일하면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것,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 그게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워킹을 가려고 준비하는 사람, 워킹을 다녀온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고 쓰셨습니다. 그렇다면, 워킹을 가보지도 않았고 갈 생각도 없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할까요?

사실 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표지에도 그런 걸 담았는데,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죠. 운동화가 ‘일’을 상징하고요, 위는 보이는 세계, (점으로 그려진) 아래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징해요. 워킹과 같은 노동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는 문제고 전 세계적으로도 다 일어나는 거니까요. 한국 청년들의 얘기니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더 쉽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식의 시선으로 내가 있는 곳을 한번 보면 (그 전과는) 좀 다르지 않을까요?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새로운 ‘시선’이었다. (……) 어느 건물을 가든 직원용 통로나 물건 수송용 엘리베이터를 유심히 본다. 직원용이 손님용에 비해 너무 열악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마음이 쓰인다. 어디에서 배우거나 뉴스에 나왔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들과 공감하게 된다.(14~15쪽)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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