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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대학 진학 지옥의 밑바닥에는 '힘과 돈'이 있다"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5. 8. 3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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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북DB

[성래운 가상인터뷰] “대학 진학 지옥의 밑바닥에는 ‘힘과 돈’이 있다”



책 표지에서 ‘성래운’이라는 저자 이름을 확인한 순간, 정말 반가웠다. 이오덕 선생과 함께 우리 현대 교육사의 두 기둥으로 칭송받는 성래운 선생. 하지만 그는 26년 전에 이미 작고해 더 이상 그의 새로운 글을 읽을 수가 없다. 살아생전 펴낸 책들도 이미 절판돼서 쉽게 구해 읽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1982년에 나온 <인간 회복의 교육>이 33년 만에 다시 출간된 것이다.

성래운 선생은 1968년 선포된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하며 1978년에 ’우리의 교육지표’를 초안했고, 송기숙 전남대 교수 등 11명의 이름으로 발표한 뒤 투옥됐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이오덕 선생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리 교육의 길을 모색했고, 출옥한 뒤 민주교육실천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으며 ‘참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등을 지낸 그는 광주대학교 총장으로 일하다 1989년 세상을 떠났다.

이 글은 33년 뒤의 내가 마음으로 묻고 33년 전의 성래운 선생이 활자로 답한 가상 인터뷰다. 책의 전반부는 교육소설 <에밀>을 쓴 프랑스 사상가 루소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돼 있다. 성래운 선생은 <에밀>을 통해 200여 년 전의 루소와 대화를 시도했고, 나는 또 성래운 선생의 글을 통해 30여 년 전의 그와 대화를 시도한 셈이다. 지금의 교육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책을 읽어 내려가는 가운데 답을 구했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지금의 현실을 ‘저격’하는 그의 글들을 보며 깜짝깜짝 놀랐다. 그것은 아마도 그간 우리 교육의 발전이 그만큼 더뎠다는 씁쓸한 반증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교육의 본질에 대한 성래운 선생의 깊은 통찰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제공 : 살림터




Q 선생님의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 <에밀>은 언제 처음 읽어보셨나요?

우리 겨레가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나는 사범대학 교육학과 3학년으로 편입되었습니다. 내가 <에밀>을 소개받았던 것은 그 무렵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 해방이 되고 우리말로 들은 <에밀>의 해설은 엊그저께 일처럼 내 머리에 생생합니다. 숙제를 해내느라 <에밀>을 읽으면서도 정말 재미가 나서 흥분까지 했습니다. (…) 나는 대학을 나오고부터 오늘 이때까지 지금의 우리 아이들 교육을 생업으로 삼와 왔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이 <에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Q <에밀>은 1700년대에 나온 책입니다. 지금 새삼 <에밀>의 교육사상을 소개하시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내가 루소로부터 입은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도 우리 아이들이 받고 있는 반(反)에밀적인 부자연한 교육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 사람으로 낳아 놓았으면 어련히 사람 되게 그르려니, 우리 어른들을 믿고 잠자고 있는 저 수많은 아기들, 우리는 저들을 배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Q 책에서, 아이를 배 안에 가지는 순간부터 아이를 천지신명처럼 섬기는 것으로 교육은 시작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요즈음은 아이를 낳겠다는 부모가 점점 적어지고 출산율도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자녀 두기를 집안 살림의 가난과 고달픔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해진 요즈음입니다. 경제적인 타산 끝에 이득 보자고 둔 자녀인데 그 자녀가 부모를 좋아할 리는 없습니다. 서로 좋아하지 않는 부모가 서둘러 가르친다고 자녀가 배울 리는 없습니다. 부모의 밑천 뽑기 꾸지람만 늘어날 뿐인 요즈음의 우리네 가정입니다. 한마디로, 자연의 순리(順理)를 거스르고 있는 셈이라 하겠습니다.

Q 우리 어린이들의 행복지수가 지난 2014년까지 6년간 OECD 23개 국가 중 꼴찌였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 까닭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자기가 할 수 없는 큰일을 바라도록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도 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우리 어린이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른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을 욕심내게끔 강요당함으로써 무척이나 괴로워하고 있는 어린이들입니다.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도록 강요당함으로써 고통스럽게 아이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Q 어떤 교육이 ‘어른 되기를 강요하는’ 교육일까요?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장난을 치는 어린이를 보면 마치 그것이 좋지 못한 짓이나 하고 있는 것처럼 대하고, 어른스러운 말씨로 조용히 얘기하는 어린이를 보면 성숙하다느니 점잖다느니 하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입니다. 빨리 어른 되기를 바라는 나머지 어린이에게 어른의 흉내를 내게 함으로써, 속이 채워지지 않은 껍데기만의 어른이 되게 하고 있는 우리입니다. 어린이다운 어린이 시절을 겪게 함으로써 이성이 발달되게 하고, 그 정도만큼만 이성에 의한 교육을 시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Q 2013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만 2세 이하 영아 부모의 41.9%가 보육비 이외의 사교육비를 쓰고 있다 합니다. ‘돌쟁이’들에게까지 내려가 조기교육, 어떻게 보시나요?

이른바 조기 교육이 크게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두 살이면 두 살배기 아기로서 알차게 발달시키려는 생각이라기보다는 머리만 어른스러운 아기이기를 바라는 생각일 경우가 많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그나마 그 아기의 이해를 위한 세심한 관찰도 거치지 않고, 좋다는 것은 무턱대고 이것저것 가르쳐 보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나 봅니다. 우리에게는 예부터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이다음에 깊은 이치를 터득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도 아기 시절이 그 속에서 무르익게 해야 할 것입니다.

Q 조기교육에는 영어로 대표되는 외국어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요,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점은 어떤 것일까요?

‘어렵게’, ‘많이’, 그리고 ‘빨리’ 가르치는 것이 한국 영어 교육의 전통이지요. 그리하여 모든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영어를 배우고 있으련만 3년간의 중학교는 고사하고 3년을 더 배워 고등학교를 나오고도 간단한 영어 편지 하나를 못 쓰는 것이 통례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간 한국 영어 교육을 가장 좋게 보아 준대도 학생이 열 명 있으면 그중 한 명만 가르쳐 온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머지 아홉 명의 학생은 하나를 위해서 들러리를 서 주었던 셈이지요.

Q 우리 교육의 모습이 좀 다양해지려면 공부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요?

공부라면 책으로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요즈음의 우리 부모요 선생입니다. 책의 공부, 그나마도 외우게 하는 것이 그 전부이다시피 되어 가고 있으며, 그것을 잘하고 못하고는 오직 종이 위에 시험 친 점수로만 따지려 하고 있습니다. 지식과 기능을 터득하고 태도가 개선되어 어린이의 삶이 나아지는 것과는 무관한 채로 미덕보다는 악덕으로 이끌리고 있는 셈이기도 합니다.

Q 교과서에만 갇힌 학교 공부, 교사들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교사들은 자기 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너무 많은 분량의 교과서인데도 정해진 기한 안에 모두 가르칠 의무를 지고 있는 판국입니다. (…) 공부가 뒤떨어진 아이들은 물론, 교사의 교과서 풀이를 알아듣고 따라가는 학생들마저 학생 생활이 지겨워 못 견딜 지경입니다. 자기 반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아는 이는 그 교사뿐입니다. 가르치는 속도도 교사만이 그들에게 알맞게 결정할 수가 있습니다. 어느 수준의 것을 얼마만한 속도로 가르칠 것인가는 그 교사에게 맡겨져야 하겠습니다.


제공 : 살림터




Q “학생 생활이 지겨워 못 견딜 지경”으로 만드는 교과서 중심 공부가, 장기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몇 해씩이나 책만 배우다가 나온 학교련만, 책이 좋아 책방을 찾는 졸업생들이 별로 없는 실정입니다. 간혹 책을 사는 경우조차, 겉치레를 위해서이거나 취직시험 참고서가 고작입니다. 생각하면, 학생들은 졸업 후부터야말로 자연과 세상의 이치에 맞게 자력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시키는 이가 없어도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 유력한 수단의 하나인 책을 싫어하게 되니, 학교 세워 도리어 학생을 해친 결과가 된 것입니다.

Q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예 책을 읽지 않고 공부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학생들이 책을 골라 읽도록, 읽은 내용 중에서 골라서 제 것으로 삼도록, 그래서 독서의 즐거움을 터득하도록, 학교는 학생들의 뒤를 받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읽어서 즐거웠던 경험이 쌓이고 쌓여야만 학생들은 더 좋은 다른 책을 골라 읽으려 할 것입니다. 교과서가 아닌 개인의 전기, 따라서 시험 준비와는 무관한 개인의 전기일수록, 먼저 책읽기를 즐거움으로 맞는 태도부터 학생들에게 길러 주어야만, 책을 스스로 찾아 읽는 학생들이 될 것입니다.

Q 청소년과 교육 이야기를 하면서 ‘탈선’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겠습니다. 요즈음 청소년들의 탈선, 까닭이 뭐라고 보십니까?

아기 시절에는 예보다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부모 밑에서 애정에 굶주렸고, 학교에 다니고부터는 예보다 잘사는 집의 우등생 중심으로 가르치는 교사 밑에서 차별과 냉대를 받아 왔을 뿐만 아니라, 예보다 도시 위주인 교육 시책 까닭에 꼬마이고도 부모와 헤어져 도시 유학을 해 왔으며,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예보다 획일적인 복종만 강요당해 왔기에 지금 그들은 난폭한 청소년들이 된 것입니다.

Q 그런 학생들을 바르게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확실한 길은 어른들 전체가 그들의 불행을 나누어 갖는 일입니다. 빼앗긴 인권(人權)이 있다면 교사들부터가 함께 찾아 주는 일입니다. 사람의 애정에 굶주리고 있다면 교장부터가 채워 주는 일입니다. 한마디로, 그들 스스로가 인간적 필요들을 충족할 수 있게끔 학교가 최대한 돕는 일입니다. 감시, 적발, 처벌보다 이것이 그들의 탈선을 줄이는 길입니다.

Q “인간적 필요들을 충족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강조하셨는데요, 교육 시스템 중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바로 대학만이 목표가 되는 진학 시스템입니다. 왜일까요?

대학 진학 지옥의 밑바닥에는, 권력 잡고 돈 벌어서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학부터 들어가고 볼 일이라는 집념이 서려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장차 더 크게 불태우려고, 오늘은 감춰 두고 있는 관능(官能)일 따름입니다. 학교에 대한 지나친 관료적 통제도 이 시기 학생들의 삶을 일그러뜨리고 있지만, 그보다는 이 사회에 정의(正義)를 대신해서 군림하고 있는 ‘힘과 돈’이 문제입니다.

Q ‘힘과 돈’의 문제, 큰 구조의 문제를 짚어주셨습니다. 그럼 이 구조를 어떤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할까요?

지금의 우리 고등학생들이 내일의 나라 주인답게 착하고도 유능한 사람으로 자라나려면, 학교 밖의 사회부터가 정의롭고 민주적인 것이어야 할 것은 물론, 학교 안의 사회 또한 사람이 으뜸으로 존중되는 분위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고등학교의 운영도 지금의 학제 본래의 정신대로 전인 교육을 해야 하고, 학생들에게 바른 공부를 외면하게 만드는 대학 입학 자격고사라는 것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참교육을 가로막는 구조의 문제로는 동포에 대해 적개심을 강요하는 분단 현실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동족상잔과 국토 분단, 그것은 자연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평화와 통일, 그것은 자연이 새긴 글자이어서 다른 누구도, 무엇도 지우지 못할 글자입니다. (…) 사람은 사는 대로 사람이 됩니다. 어린 시절을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그는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세계 어린이들이 어른들과는 달리 전쟁을 모르고 평화 속에서 창조를 즐기며 살아가게 하는 길은, 지금 그들에게 우리의 과거와는 달리 평화를 살게 하는 것뿐입니다.

Q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삶에서 확인하신 ‘한국 어린이 교육의 나아갈 길’은 뭔가요?

그것은 자기의 선생님을 저희 부모와도 같이 신뢰하고 어느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있는 어린이들이었습니다. (…) 그 뒤에는 학교 선생을 신뢰하고 존경하는 학부모와 사회 인사들이 있었으며, 다시 그들이 그렇게 된 까닭을 알아본즉 그들에게서 그와 같은 신뢰와 존경을 얻어낸 학교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또 학교 선생들에게는 뒤에서 그들을 믿고 섬긴 교육행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공 : 살림터


* 각각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책 <인간 회복의 교육>에서 모두 직접인용 했다. 출처는 답변 순서대로 10쪽(종결어미만 바꿈)/ 13쪽(종결어미만 바꿈)/ 46쪽/ 55쪽/ 61쪽/ 64쪽/ 225~226쪽/ 74쪽/ 99쪽/ 108~109쪽/ 147쪽/ 136쪽/ 137쪽/ 139~140쪽/ 162쪽/ 117~118쪽과 174쪽/ 188~189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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