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죽음도 부럽다"... 나를 울린 '부부젤라 청년'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3. 7. 4. 10:54

본문


“죽음도 부럽다”... 나를 울린 ‘부부젤라 청년’

[인터뷰] 다큐멘터리 <청춘유예> 안창규 감독




이쯤 되면 정말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5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말 때문에 또 한숨이 나왔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 시간제 일자리가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단다. 대선 후보 당시, 법정 최저임금이 시간당 5000원도 안 되냐고 되묻던 그분이 말이다. 친구들과 후배들이 걱정됐다. 시간제 일자리, 시간당 4860원 하는 ‘알바’에 목매고 사는 청년들이 저 말을 듣고 또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 싶었다.


청년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 큰 이슈로 떠올랐다. 다큐멘터리 <청춘유예>(2012)는 바로 그런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개사료의 원료가 되는 고기를 하루 종일 썰지만 자신의 끼니는 두부 한 모를 두 끼에 나눠먹는 청년, 취업에 번번이 미끄러지고 사회인이 아니라 ‘백수’로 세상에 나오게 되는 대학 졸업반 청년, 콜센터의 실적 강요에 성대결절, 치질(!)을 달고 일하면서도 ‘밥줄’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청년 등.


안창규 감독(37)은 그런 청년들의 목소리를 진실하게 담으며, 그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문제’를 ‘우리들의 문제’로 만들어나갔는지 보여준다. 2010년 청년유니온의 시작부터 그들과 함께한 감독은 그들의 자발적인 실험이 청년문제를 푸는 데 작은 힌트가 될 것이라 말한다. 5월 29일 서울 성산동 ‘인권중심 사람’에서 안창규 감독을 만나 <청춘유예>와 ‘청년’ 다큐 감독으로서 그의 삶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강에 몸 던진 명문대 청년... 카메라를 잡게 했다



- 2009년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통해 대학생들의 등록금 문제를 다뤘습니다. 첫 장편인 <청년유예>에서 청년문제를 다룬 것은 그 고민이 세대 전반의 문제로 확대된 거라 보면 될까요?

“경제적 문제 때문에 다큐 작업을 접으려던 시점에 후배들을 만났어요. 그때 등록금 얘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그만두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뜻밖에 영화 반응이 좋았던 거예요. 거기서 힘을 받아서 다큐 작업을 계속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러다보니 청년문제에 관심이 생겼어요. 등록금하고 이어지는 문제, 청년들이 꿈을 펼칠 수 없는 사회적 구조가 보였어요. <학교를...>의 확장판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 그럼 처음부터 취재 대상을 청년유니온으로 정하고 촬영에 들어간 건가요?

“아뇨. 사실 인터뷰 섭외에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사람을 찾기 위해서 청년유니온을 찾아간 거예요. 그래서 우연히 청년유니온을 준비 단계부터 지켜볼 수 있었죠. 저는 청년유니온이 안 만들어질 줄 알았는데, 만들더라고요. 신기하더라고요. 낯선 사람들을 모아서 쑥덕쑥덕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모습들이 되게 신기했어요. 그래서 이 친구들 얘기를 다뤄보면 어떨까 했죠.”


- ‘콜센터 청년’이 후반부 인터뷰에서 ‘내 문제와 사회문제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하는데, 그 말이 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감독님의 메시지라고 보면 될까요?

“제가 그 인터뷰를 그래서 넣었어요. <청춘유예>의 핵심은 그거거든요. 그 인터뷰를 한 진아씨는 워낙 콜센터 일이 힘들어서 그걸 해결해보려고 청년유니온에 가입했어요. 그분은 대학을 안 다니셨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자신과 상관없는 반값등록금 집회에도 나가게 되고, 자신의 문제와, 자신과 무관한 사람들의 문제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진아씨 인터뷰가 그 맥을 짚어줬다고 봐요.”


- 인상 깊은 인터뷰 장면이 많았습니다. 알바를 하는 개사료 가게에서 고기를 훔쳐오고 싶었다던 ‘개사료 청년’의 삶도 참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몇 해 전 생활고로 숨진 최고은 작가를 두고 ‘능력이 있으니까 사회가 빨아먹어서 죽은 거다’라면서 ‘차라리 부럽다’고 했던 ‘작가지망생 청년’의 말도 참 찡했습니다.

“그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할 줄은 몰랐어요. 원래 기웅이(‘작가지망생 청년’)이 참 밝은 친구거든요. 저도 그 인터뷰 하면서 마음이 되게 안 좋았어요.(안 감독은 다시 한번 눈시울을 붉혔다.) 그 친구가 되게 까부는 캐릭터라서 그런 얘기 잘 안 해요. 별명이 ‘인간 부부젤라’였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그 친구를 다시 알게 됐죠. 카메라 앞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들이 있는데, 그런 걸 보는 게 다큐 감독으로서 느끼는 재미랄까, 그래요.”


- 어렵겠지만, 감독님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장면을 골라주신다면 어떤 장면일까요?

“이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정적으로 마음먹은 사건이 있었거든요. 2009년 봄에 고려대 학생이 생활고 때문에 한강에 투신해서 시체가 밤섬에서 발견됐어요. 저한테는 충격적이었죠. 그래서 겨울에 한강이 얼어붙었을 때 직접 가서 찍었죠. 영화 초반에 나오는 그 섬이 밤섬이에요. 그 장면이 애착이 가는 장면이에요.”


-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청년유니온의 활동상 중심으로 그려져서, ‘그래서 결론은 청년유니온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청년유니온 홍보물 같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죠. 저는 청년유니온이 꼭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근데 당시에는 청년유니온이 청년문제에 있어서 많은 일들을 했고, 가능성들을 많이 만들었던 것 같아서 청년유니온 활동 자체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이 영화가) 10년 뒤, 20년 뒤 봤을 때 ‘아 과거에 청년들이 이런 활동들을 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게 하는 기록물로 남게 된 거잖아요.”


"한국의 '청년 5적' 1위는 프랜차이즈 업체 오너들"



- 감독님에게도 이 영화 속의 청년들과 같은 시절이 있었나요?

“‘신다모’라는 모임이 생겼어요. ‘신진다큐멘터리작가들의모임’. 작년에 실태조사를 했는데, 월 100만 원을 못 버는 친구들이 되게 많아요. 저도 2010년에 직장을 못 구했다면 이 영화 작업을 끝내지 못했을지 몰라요. 반대로 작업을 사적으로만 해야 하다 보니 생긴 아쉬움도 있어요. 그런 갈등이 어려운 거죠. 26살에 다큐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2년 정도 일본에서 돈을 벌었고 28살부터는 쭉 알바나 미디어 교육 같은 걸로 살았죠. 다큐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입은 거의 없어요.”


- 독립 다큐 감독이 되려는 꿈을 가진 청년들에게 이 영화는 어떻게 다가갈 것 같나요?

“누군가 제 영화를 보고 이 길에 관심을 갖는다면 기분 좋겠죠. 저도 10년 전에 그랬거든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에 참 많은 일들을 겪었어요. 물론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삶의 만족도는 높거든요. ’신다모‘ 중에 삶에 만족한다는 사람들이 80%를 넘었어요. 제 영화를 보고 또 누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뿌듯할 것 같아요. 하지만 강요할 수는 없고, 아낌없는 격려와 조언과, 가끔은 밥과 술도 줄 수는 있죠.”


- 2013년 대한민국의 ‘청년 5적’을 꼽아주신다면, 누구일까요?

“일단 대기업 프랜차이즈 오너들이죠. 물론 점주들도 나쁜 놈들이 많은데, 구조상으로는 점주들도 피해자거든요. 두 번째는 일반 대기업들요. 정규직을 고용하지 않고 인턴들만 부려먹는 대기업들. 세 번째로 공직자들도 문제예요. 취업교육 예산 같은 게 엄청 나거든요. 그 돈으로 그냥 고용을 하는 게 나은데 눈먼 돈이 막 나가는 거죠. 그리고 네 번째는 대학. 대학은 정말 빠질 수 없죠. 다섯 번째는... 어렵네요.(웃음)”


-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주제를 다뤄보고 싶으신가요?

“일본 우익청년들 얘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10년 전에 일본에 있을 때, 시간제 노동 문제가 크게 불거지면서 일본 청년들 사이에서 공산당 가입률이 높아지고 그러다가 갑자기 우익 청년들이 나타났거든요. ‘10년 뒤 한국이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해서 그들을 찍고 싶었어요. 왜 우익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사회적 배경 같은 것도 알아보고. 근데 지금 보니 그들과 우리나라 ‘일베’ 등과는 좀 다른 것 같아서 고민하고 있어요.”


- 마지막으로 정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창규에게 청년이란’?

“‘나도 청년이다’.(웃음) 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사실은 임기웅(작가지망생 청년) 같은 입장이어서 그렇기도 하고요. 저도 ‘넌 아직도 다큐를 하고 있냐’, ‘장래에 어떡하려고 그러냐’ 하는 얘기들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자괴감에 빠진 적도 많았었는데, 사람들하고 같이 슬퍼하고 좋아하고 부대끼면서 건강해지는 것 같았어요. 사회에서 상처받은 청년들이 같이 밥 한번 먹고 술 한번 마시는 모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 <청춘유예>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상영 문의 ‘시네마달’(cinemadal.tistory.com)

* <전태일 통신> 2013년 7-8월호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