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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오후 4시 46분... '아빠'로 태어났습니다

긴 글/생활글

by 최규화21 2014. 3. 1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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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울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도 눈물이 많은 아내가 당연히(?) 울 거라고 생각했고, 아내가 울면 달래야 하나 놀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온몸에 노르스름한 태지를 묻히고 내 손가락만큼 굵은 탯줄을 늘어뜨린 홈런이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아내 가슴에 안겼을 때, 아내는 울지 않았다. 아내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얼굴로 활짝 웃으며, 제 몸에서 나온 홈런이를 맞이했다. 드디어.


3월 2일 일요일 밤. 나는 소파에 가로로 누워 <개그콘서트>를 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병원에서 말해준 홈런이의 탄생 예정일은 2월 28일. 예정일 일주일 전부터 '비상대기'에 돌입했던 우리는 일주일 넘게 계속된 긴장 상태에 살짝 지쳐 있었다. 날짜가 하루하루 지날수록 아내의 몸 속에서 홈런이는 그만큼 더 자랄 테고, 자연출산을 목표로 오랜 시간 준비해온 아내한테는 그만큼 더 부담이 되는 거였다.


그날 낮에는 엄마가 보내준 장어를 구워먹고 우리 둘이 결의대회(?) 같은 것도 했다. 홈런이한테 "엄마 아빠는 힘쓸 준비를 해놨으니 오늘 좀 나와주면 어떨까?" 하고 설득도 했다. 그리고 정말 그날 밤, '상황'이 시작됐다. 아내가 화장실에 갔다 나오면서 "자기야 어떡해, 뭐가 나와" 하고 말했다. 그리고 양수가 터진 것 같다면서 "이제 정말 홈런이가 나오려나봐" 하고 울먹였다.


침착해야 한다. 내가 침착해야 한다. 나는 양수는 얼마나 나오는지, 진통은 오는지 물었다. 그리고 출산하기로 예정된 조산원에 전화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분히 물어보라고 했다. 다행히 양수는 터진 게 아니라 새는 거였다. 진통도 아직 없어서, 조산원에서는 그냥 마음 편히 한숨 자고 진통이 3분 주기로 오면 조산원으로 오라고 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느냐……고 생각했지만, 진정하고 침대에 누우니 잠이 또 왔다(나는 그랬는데, 미안하지만 아내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산원에 갈 채비를 하고, 부장님한테 전화를 해 상황이 시작됐다고 알렸다. 밤새 진통은 심하게 오지 않았는데, 양수는 계속 새고 있어서 걱정이었다. 양수가 너무 많이 빠져나가면 그만큼 홈런이가 나오는 데 힘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조산원 가는 길에 들른 곳은 24시간 설렁탕집. 아내가 홈런이 낳기 전에 꼭 먹을 거라고 벼르던 음식이 설렁탕이었다. 조금씩 진통이 오는 와중에 설렁탕 한 그릇씩을 싹 비우고 조산원으로 갔다. 조산사 선생님이 초음파와 내진을 통해 홈런이의 상태를 봤다. 아직 양수 양도 괜찮게 남아 있고, 홈런이도 태변을 누거나 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있다 했다. 아내 배 속에서 태변을 누고 그걸 먹거나 하면 위험하다 했다. 아직 진통이 심하지 않아 우리는 조금 머쓱하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진통을 촉진하는 체조와 마사지를 계속 하라고 했다. 아내는 진통 주기를 체크하는 스마트폰 앱으로 주기를 기록하고(정말 별 게 다 있다), 나는 열심히 그동안 '아빠 되기 교육'을 통해 배운 마사지를 해줬다. 12시가 다 돼가자 진통은 2~3분 주기로 왔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이제 조산원에 가야 할 때 아닌가' 말했지만 아내는 점심을 먹고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먹은 점심 메뉴는 자장면과 볶음밥. 나는 철없이 자장면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아내가 먹다 남긴 볶음밥도 냠냠 잘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조산원으로 출동!


도착하니 오후 1시가 조금 넘었다. 아내의 몸 밖으로 새어나오는 양수의 빛깔을 봤는데, 약간 누르스름했다. 홈런이가 태변을 눈 것이라 했다. 불안했다. 조산사 선생님이 나한테만 따로 살짝 이야기했다.


"지금은 다행히 맥도 정상이고 자연출산을 시도해볼 수 있는데, 양수가 너무 적어지고 태변 양이 많아지거나 태동이 줄어들거나 하면 위험해요. 그때는 병원 가서 수술해야 하니까 미리 알고 계시라고요. 우리가 계속 태동하고 맥하고 체크할 테니까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아내나 홈런이의 건강에 무슨 문제가 생길 거라는 불길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아내가 온전히 제 힘으로 홈런이를 낳기 위해 준비해온 시간들을 잘 알기 때문에, 만약 수술을 할 경우 아내가 실망할 것이 걱정됐다. 괜찮다. 아직 기회가 있으니 열심히 해보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미련 없이 결과를 받아들이면 된다. 아내와 나는 심호흡을 하며 '아기 낳는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두 사람뿐, 진통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진통은 이미 한 시간도 전부터 2~3분 주기로 오고 있었다. 진통을 늦춰서는 안 된다. 진통이 잦아들고 시간만 흘러가면 양수 양은 점점 더 적어질 것이고, 그럼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거였다. 아내는 나보다 그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진통을 끙끙 하면서도 계속 나한테 진통을 유도하는 마사지를 더 해달라고 했다. 평소에는 아파도 엄살 한번 부리지 않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정도인데도, 계속해서 진통을 유도하는 운동을 했다.


나는 그동안 내가 그냥 참 착한 여자와 결혼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참 대단한 여자와 결혼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두꺼운 겨울 긴팔 셔츠를 입고 있었고 아내가 그 위로 내 팔을 잡았는데, 나중에 보니 내 팔뚝에 아내의 손톱 자국이 선명했다. 손목과 손가락 관절이 안 좋아서 심할 때는 병뚜껑 하나 돌려서 못 따는 아내다. 그 정도로 아픈데, 어떻게 더 아프게, 더 진통이 오게 해달라고 할 수 있었을까. 참 지금 생각해도 존경스럽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엎드렸다 누웠다 섰다 앉았다, 그렇게 진통을 견딘 지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그동안 때때로 방에 들어와 홈런이의 상태를 체크하던 조산사 선생님이 장비(?)를 챙겨들고 다른 조산사 선생님 한 분을 모시고 왔다. 본격적으로 홈런이를 낳기 시작한 거였다. 나는 아내를 품에 안은 것 같은 자세로 아내의 등 뒤에 앉아, 계속해서 호흡과 '밀어내기'를 유도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하는 구령(?)을 몇 번이나 말했을까, 세상에나, 아내의 몸 밖으로 홈런이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감격적인 순간, 나는 어쩌자고 그렇게 유치한 생각을 했을까. 아직 아내의 눈에는 홈런이가 보이지 않는 상황. 나는 세상에 나온 홈런이를 아내보다 내가 먼저 봤다는 걸 두고두고 자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잠시 이렇게 유치함에 빠지는 사이에도 아내는 사력을 다해 홈런이를 밀어냈다. 2014년 3월 3일 오후 4시 46분이었다. 홈런이가 드디어 우리와 눈을 마주쳤다. 아내와 내가, 부모로 태어난 순간이었다.


홈런이는 아내의 가슴 위에 엎드려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나오는 순간에는 조금 '응애' 소리가 나더니, 엄마 가슴 위에서는 울지도 않았다. 나는 태맥이 멎기를 기다려 탯줄을 잘랐다. 아내는 열 달을 준비해온 자연출산을 정말 멋지게 해냈다. 어떤 의료개입도 없이, 스스로 홈런이를 낳고 엄마가 됐다.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온 힘을 다해 홈런이를 낳은 아내가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제 홈런이가 세상에 나온 지 보름쯤 됐다. 아내는 밤새 배고프다 보채는 홈런이를 그 아픈 손목으로 달래가면서도(아내의 손목은 출산 후에 더 안 좋아졌다. 흑.), 자연출산에 이은 또 하나의 목표인 '완전 모유수유'를 위해 애쓰고 있다. 아내의 대단한 결심과 헌신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소중한 기적과 손잡을 수 있었다. 내게 너무도 벅찬 행복을 선물해준 내 아내 곽지현씨,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 <난지도 파소도블레>(blog.daum.net/nanpaso) 2014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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