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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를 만드는 시간, 제게도 영광입니다

긴 글/생활글

by 최규화21 2014. 3. 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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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분들 목소리에서 사이다 맛이 납니다. 성우로도 대성할 것이라 생각합니다.ㅎㅎ 감사합니다.”


눈물이 울컥 나올 뻔했다. 댓글 하나에 울고 웃고 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은 분명했다. 방송을 시작한 지 3주째. 2주째까지는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댓글을 확인하는 게 일과였는데, 3주째 되면서는 그 일을 그만뒀었다. 활자로 보는 것이지만 아침마다 어제 없었던 욕설과 비난을 읽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었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 달아준 이 댓글 하나가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던 것이다(지금 생각하니 누구 나를 아는 사람이 ‘국정원짓’을 한 건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기자, 그것도 제 기사도 안 쓰는 편집부 기자라는 놈이 뭔 방송 타령인가 하실 거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어쩌다 일이 이렇게 커졌나 모르겠는데, 내가 정말 팔자에 없던 방송이라는 걸 하게 됐다. 오해 마시라. 텔레비전에 얼굴 나오는 방송은 당연히(?) 아니고, 목소리만 나오는 팟캐스트 라디오 방송이다.


방송의 이름은 ‘사이다’, ‘사는이야기 다시 읽기’의 줄임말이다. 사이다는 원래 연재기사였다. 국내 최초(?)의 생활글 비평을 한번 해보겠다며, 지난해 가을부터 야심차게 시작한 연재. <오마이뉴스>에 올라오는 생활글 ‘사는이야기’ 가운데 매주 한 편씩을 골라 요리조리 뜯어보면서, ‘사는이야기의 매력을 알려주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도 알려주자’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쓰는 사람만 골치 아프고, 읽는 사람 반응은 별 볼일 없는 상태로 이어지다가 약 넉 달 만에 ‘조기종영’ 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방송 이야기가 나왔다. 글쓰기 이야기를 또 글로 하니까 아무래도 딱딱하고 ‘훈장님 말씀’처럼 재미가 없으니, 팟캐스트 방송으로 유쾌하고 친근하게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었다(이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은 같은 부서 김털보 기자요,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하게끔 제안해준 사람은 김미선 편집부장님임을 굳이 밝히는 바이다). 그렇게 해서 팟캐스트 사이다가 시작됐다. ‘진짜 우리가 방송을 하게 될까’ 하는 생각으로 뻘쭘하게(?) 준비에 들어간 지 두 달 만에 정말로 덜커덕 현실이 된 것이다.  


팟캐스트 포털인 ‘팟빵’에 등록된 방송만 해도 6600여 개. 흔한 말로 ‘개나 소나’ 하는 팟캐스트 방송 하나 하는 것 가지고 뭘 그러나, 할 것 같기도 하다. 맞는 말이다. 그냥 친구들끼리 재밌는 사건 하나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일이라면 나도 그러겠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게다가 ‘이털남’이라는 이름을 달고 시작한 일이니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이털남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데일리 시사 팟캐스트 방송 아니었나. 방송의 ‘ㅂ’도 모르는 ‘쌩초보’가 그런 방송의 새로운 시즌을 맡는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나 혼자 그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부서의 이준호 선배, 디자인팀의 이은영 선배와 함께 진행하는 사이다는 ‘이털남 시즌3’의 목요일 프로그램이다. 이털남 시즌3는 요일마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채워진다. 그중 사이다는 이전 시즌의 이털남 같은 시사 프로그램이 아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는 사는이야기(생활글)를 읽어주고 수다도 떨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는 ‘본격시사타치생활감성수다쇼’다.


월화수목금, 모든 요일의 프로그램이 한꺼번에 시작했으면 부담감이 좀 덜했을 거다. 그런데 제일 ‘시사스럽지’ 않은 사이다가 시즌3의 첫 타자로 문을 열었다. 이털남의 컴백을 기다리던 팬들이 황당해하고도 남을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했다. 지난 3주 동안 확인한 청취자들의 댓글 반응은 대충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주차 : “이털남이 돌아왔다, 오예!”. 2주차 : “엥? 그 이털남이 아니네?”. 3주차 : “(댓글 없음)”.


나름대로 바쁜 일과 시간을 쪼개 열심히 연습을 한 끝에 시작했다. 그 전에 글로 쓰던 연재기사를 확실히 더 재미있게 살려보겠다는 각오도 있었다. 딱딱한 시사 프로그램의 틀을 벗어나서 이웃들의 진솔한 생활글로 친근하게 세상 이야기를 풀어내보자는 포부도 있었다. 그런데 청취자들의 초기 반응은 좀 속상했다. 그래도 몇몇 ‘잘 들었다’, ‘재미있다’ 말해주는 이들이 있어서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글이 방송에 소개되고 난 뒤, 정말 기뻐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 있었다.


“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다들 목소리도 좋고, 유머도 재미있고요. 더 잘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에 안절부절 했지요. 고생들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이 영광스러운(?) 사건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게요.”


첫 번째 방송에 자신의 글이 소개된 시민기자의 소감이다. 중증은 아니지만 청각장애가 있는 분이라 방송을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방송을 약한 소리로나마 들으셨다 했다. 자신의 글이 방송에 소개되고, 자신과 같은 장애여성의 삶이 같이 이야기되는 것을 듣고 정말 기쁘셨다고. 한 사람의 일상에 “영광스러운 사건” 하나 만들어주는 것, 사실 이런 게 우리 방송의 목적이다.


첫 방송에서는 그동안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살다 40대 중반에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 장애여성의 글을 읽었고, 두 번째 방송에서는 덩치 큰 삼형제의 투정과 주위 사람들의 주제넘은(?) 걱정에도 경차만을 고집하는 중년 남성의 글을 읽었다. 세 번째 방송에서는 취업에 계속 실패하면서 가족들과도 점점 서먹해져 고민하는 스물여덟 살 취업준비생의 글을 읽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공감하며 수다를 떨고, 그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시를 읽고, 그들과 우리가 사는 세상도 꼬집었다.


자신의 삶을 용기 있게 글로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려 한 사람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사건’을 만들어주는 일. 그리고 청취자들에게는 자신과 같이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로 공감과 위로를 느끼게 하는 일. 너무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우리 방송은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좋은 댓글만 잔뜩 달리기를 바라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팟캐스트 순위에서 1등 먹자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매회 최선을 다해 하다보면, 그런 것은 따라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뭐 ‘겨우’ 그런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내가 즐거운 것 아니겠는가. 누가 이거 안 하면 월급 깎겠다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이거 잘 하면 부장 시켜준다고 꼬드긴 것도 아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 삶의 진실이 담긴 글을 읽고 우리의 삶과 이 세상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이 즐거운 일을 하면서 너무 이것저것 자잘하게 신경 쓰고 쓸데없이 욕심내는 꼴이란 얼마나 우습나. 오마이뉴스, 이털남이라는 이름은 그래도 무거운 것이지만, 그저 즐겁게, 하지만 겸손하게 그냥 지고 가는 거다.


요즘은 어딜 가나 사이다 얘기를 제일 먼저 하게 된다. 나도 안다. 방송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들뜬 표정을 짓는지. 네 번째 방송이 나가면 또 어떤 댓글들이 달릴지 여전히 궁금하고 좀 떨리지만, 그것 하나 때문에 기분 나빠 풀이 죽거나 반대로 기고만장 건방을 떨지는 않을 거다. ‘처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차근차근, 내가 가장 보람을 느끼고 즐거워하는 일을 해나갈 거다. 이것은 내게도 ‘영광스러운 사건’이니까.



* <난지도 파소도블레>(blog.daum.net/nanpaso) 2014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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