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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맛보는 기쁨이 코앞에 왔다

긴 글/생활글

by 최규화21 2014. 3. 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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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맛보는 기쁨이 코앞에 왔다

[얼렁뚱땅 아빠 되기 2]



깜짝 놀랐다. 설날 가족들이 모인 자리, 생각지도 못한 고성이 터져나온 것이다. 그것도 목소리 큰 아버지나 작은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와 큰어머니의 입에서. 내가 홈런이(우리 아기의 태명)는 병원에 가지 않고 낳을 계획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두 분이서 약속이나 한 듯이 “야야, 병원 가야 된다!” 하고 목소리를 높이셨다. 산달을 맞아 장거리 여행을 못하는 아내가 같이 못 온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어느 정도 잔소리(?)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도, 예상보다 훨씬 격한 반응에 깜짝 놀랐다. 두 분은 병원에 가지 않고 아기를 낳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번갈아가며 말씀하셨다. 특히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 어디서 이런 기운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완강하게 나를 말리는 할머니께는 무슨 대답을 해드려야 할까 참 난감했다. 아내한테서, 조산원에서, 다큐멘터리와 책에서 배운 것을 총동원해서 ‘병원 출산은 필수가 아님’을 말씀드렸다. 한 10~20분쯤, 최대한 완곡하게. 진땀이 찔끔 났다.


병원에 가지 않고 조산원에서 자연주의 출산을 하겠다고 결정한 뒤로, 만나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논평(?)을 안 하는 사람이 없었다. 포괄적으로 논평이라고 표현했지만 훈수나 훈계, 만류를 넘어선 간섭도 많다. ‘무슨 일 생기면 어쩔 거냐’고 걱정하는 사람은 차라리 고마웠고, ‘다들 병원에서 잘만 낳는데 유난 떨지 말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동안은 반박도 해봤지만, 이제는 그러기도 지쳐서 그냥 한 귀로 흘린다.


“임신은 질병이 아니고 산모는 환자가 아니다”라는 말만 해주고 싶다. 물론 출산은 힘들고 위험한 일이다. 당연히 그것을 건강하게 해내지 못할 사람은 병원에 가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대다수의 산모들(100명 중 95명쯤 되는 산모들)까지 과도한 의학적 개입을 받아 아기를 낳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병원에서 말하는 ‘자연분만’에도 약물 사용이나 신체 절개 등의 의료 개입이 포함된다. 솔직히 말하자. 그것들은 아기를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기를 ‘꺼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아닌가?


할머니와 큰어머니께도 이렇게 버릇없이 말한 것은 절대 아니다. 조산원에도 나라에서 자격을 인정한 조산사들이 있고, 스스로 출산할 수 있는 몸인지 계속 검사를 받고 있으며, 건강하게 아기를 낳기 위해 꾸준히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드렸다. 만에 하나 스스로 아기를 낳지 못할 경우, 가까운 병원으로 바로 옮겨갈 수 있는 체계도 갖춰져 있다는 말도. 자연주의 출산은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한테 설명하느라 진이 빠진다.


자연주의 출산은 A코스, B코스, 요리 메뉴 고르듯이 선택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앞서 말한 95%의 건강한 산모에 속하지 못한다면, 자연주의 출산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우리가 홈런이를 낳기로 한 조산원은 그런 ‘사전 관리’를 꽤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아내한테 ‘더 이상 살이 찌면 여기서 아기 못 낳을 수도 있다’고 협박(?) 같은 것도 하고, 아내만이 아니라 나한테까지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래서 정말 ‘부모 되기 교육’이라는 것을 받으러 갔다. 토요일 오후에 세 시간씩 두 차례. 자연주의 출산이란 무엇인지, 출산을 하기 위해 몸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론교육을 받고, 집에서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출산할 때는 어떤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기교육도 받았다. 교육 내용에는 대부분 남편의 역할이 포함돼 있었다. 실제로 그곳은 산모방(분만실 겸 산모와 아기의 생활방)에 산모와 남편만 들어가게 돼 있단다. 진통부터 출산까지 우리 두 사람이, 아니 홈런이까지 세 사람이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럼 조산사는 뭘 하냐고? 조산사는 아기가 엄마의 몸 밖으로 나오는 ‘최후의 순간’에 ‘최소한의 도움’만을 줄 뿐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다 도와줄 거면서 말만 저렇게 하는 거겠지’ 하고 느슨하게 생각되다가도, ‘정말 우리 둘이 다 해내려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 하고 결연한(?) 마음을 먹게 되기도 했다. 30년 넘게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출산’이라는 공부를 하자니, 아직도 마음가짐부터 어설프기만 하다.


아내는 이제 임신 38주차에 접어들었다. 출산 예정일까지 보름 남짓 남은 것이다. 홈런이는 2.8킬로그램. 이미 신체기관은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마쳤다 하고, 미숙아를 규정하는 기준이 2.8킬로그램이라고 하니 지금 태어나도 될 만큼 큰 셈이다. 거꾸로 서지 않고 자리도 잘 잡고 있어서 엄마 아빠를 걱정시키지도 않는다. 초음파로 볼 때 한쪽 신장이 조금 더 커 보인다 해서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정상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고 있다 하고. 발차기가 너무 세서 아내 갈비뼈가 부러지지나 않을까 염려되는 것 말고는 모두 ‘오케이’다.


사흘 전에는 큰 걱정 하나를 해결했다. 바로 이사다. 홈런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사를 하려고 빠듯하게 날짜를 잡아놓고 나서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출산 예정일 3주 전에 이사라니, 혹시나 홈런이가 성질 급하게 나와버릴까봐 걱정했다. 첫아이는 대개 예정일보다 늦게 나온다고들 하지만, 우리 큰누나는 첫아이를 2주 일찍 낳았으니 안심할 수가 없었다. 홈런이가 이사 때 뿅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이사가 아내의 몸과 정신에 너무 큰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을까 마음이 많이 쓰였다. 큰돈 오가는 이사, 신경 쓸 게 어디 한둘인가.


다행히 이사는 순조롭게 해냈다. 형편에 맞지 않지만 포장이사를, 그것도 빨리 끝내려고 사람 하나를 더 써서 한 덕에 이삿날의 어지러움은 빨리 사라진 것 같았다. 이사하는 날 아내가 걱정돼서 손수 찾아와주신 아내의 고모님과 이모님도 큰 도움을 주신 것 같다. 이튿날 처가에 들러 부모님과 같이 하룻밤 보내게 해준 것도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됐을 테고. 아내와 홈런이를 위한다고 이사를 결정해놓고는 그게 도리어 두 사람한테 나쁜 영향을 줄까 혼자 가슴을 졸였는데, 참 다행이었다.


이제 홈런이만 건강하게 잘 나오면 된다. 예전에는 홈런이가 기왕이면 2월이 지나고 새 봄인 3월에 나오기를 바랐는데, 이사까지 탈 없이 끝내고 나니 그냥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그리고 홈런이가 빨리 보고 싶어진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기침대! 홈런이가 누워 잘 아기침대를 내 손으로 만든…… 것은 아니고 조립한 것이다. 목공을 배워서 아기침대를 직접 만들어주는 아빠들이 많다는 얘기에도 그냥 시큰둥했는데, 비록 조립에 불과하지만 막상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뿌듯한 거였다.


허리가 좀 좋지 않은 아내가 바닥에서 아기를 들고 내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 직장 선배한테 아기침대를 하나 얻어왔다. 분해한 채로 가져와서 조립은 못하고 있다가, 이사를 하고 나서야 조립을 해서 안방 우리 침대 옆에 나란히 붙여둔 뒀다. 까짓것 수고라고 할 만한 것도 없지만, 우리 침대 옆에 예쁘게 찰싹 붙어 있는 아기침대가 너무 예뻐 보여서 그랬을까? 빨리 홈런이를 눕혀보고 싶고,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생색도 좀 내고 싶었다. 이거 이거, 나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초보아빠들처럼 유치해지기 시작하나보다.


이제 홈런이를 만날 날이 언제 불쑥 찾아오게 될지 모른다. 조산원에서 교육받은 대로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빨리 만나서 내가 조립한(!) 아기침대를 자랑하고 싶다는 설렘도 크다. 가끔은 너무 초조해지기도 하고 너무 흥분하기도 하지만, 아내한테 들키지 않게 애써 마음을 다잡곤 한다. 누구보다 마음이 오르락내리락 널뛰기를 할 사람은 아내인데, 내가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니까. 그래서 이렇게 글로만 조용히, 흥분되고 떨리는 마음을 슬쩍 털어놓는 것이다. 아내 앞에서는 최대한 담담한 척!


두 달 뒤 ‘얼렁뚱땅 아빠 되기’ 세 번째 글을 쓸 때는 아마 홈런이가 세상에 나와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아빠 되기’는 그때부터 시작이겠지. “너 이제 좋은 시절 다 갔다”, “지옥문이 열리겠구나”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한마디씩 겁을 주지만, 그런 얘기는 솔직히 귓등으로도 안 들린다. 어른들이 자신의 늙어감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이 자라기 때문이다. 지금껏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기쁨이 드디어 코앞에 왔다.


* <삶이보이는창> 2014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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