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긴장하나 보다.”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정말 이런 일로 내가 긴장한 걸까. 2014년 새해 첫 주말, 우리 부부는 함께 조산원으로 갔다. 출산 예정일을 7주 정도 남겨둔 아내. 아내는 조산원에서 자연출산을 하기로 일찌감치 마음먹었다. 그날은 조산원에서 ‘부모교육’을 받기로 한 날이다.
교육은 오후 2시부터 세 시간. 우리는 한참 일찍 가서 상담부터 했다. 그동안 산부인과 병원에 같이 가면서는 들지 않았던 묘한 기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여기가 아내가 홈런이(우리 아이의 태명)를 낳을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기웃기웃 들여다보고 구석구석 미리 기억해두고 싶었다.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되묻는다. “위험하지 않겠어?” 그날 한 상담은 아내가 ‘위험한 산모’인가 아닌가 알아보기 위한 거였다. 조산원에서는 산전검사 결과지를 가져오라고 했다. 산모나 아이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위험하겠다 싶으면 아예 조산원 출산을 권하지 않는다. 아내한테도 갑상선 관련 건강검진 기록을 더 가져와보라 하고, 더 이상 몸무게가 늘면 안 된다고 꾸중(?)도 했다.
산모의 95% 정도는 자연출산이 가능하단다. 자연출산이란 병원에서 말하는 자연분만과 다르다. 의료적 개입을 전혀 하지 않고, 말 그대로 산모와 아이의 힘만으로 출산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출산이 불가능한 산모는 5% 정도. 만약 내 아내가 그 ‘5%’에 해당한다면, 조산원에서는 먼저 ‘불가’ 판단을 내리고 병원으로 보내고 말 거다. 그리고 조산사도 엄연히 국가에서 자격을 관리하는 의료인이다. 또 정말 만에 하나 위급한 순간이 오면 가까이 있는 종합병원으로 보낸다 하는데, 그래도 불안하다면 어디서도 애 못 낳는 거 아닌가.
조산원이라고 해도 병원 같은 느낌이 없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훨씬 아늑하다. 산모의 방이 네다섯 개 정도. ‘분만실’이 아니라 정말 산모의 ‘방’이다. 진통이 시작되면 아내와 나는 이 방으로 와서 같이 진통을 하고, 이 방에서 홈런이를 낳고, 그대로 이 방에서 며칠을 더 홈런이와 보내며 쉴 거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집 같다. 낯선 병실의 차가움이 아니라 익숙한 집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교육시간에 맞춰 다시 들어왔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는 교육장에는 부부 열 쌍의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남편들끼리 눈이 마주치니 정말 어색하다. 앞만 보고 멀뚱멀뚱. 첫 시간 주제는 ‘순산을 위한 몸관리’였다. 제일 연세가 있는 듯한 조산사 선생님이 나와서 산모 건강관리 방법을 설명해주셨다. 먹는 습관, 자는 습관, 운동하는 습관 등, 특별히 아기를 가진 엄마가 아니라도 그냥 알아두면 좋을 건강법 강의였다. 양반다리를 하고 한 시간쯤 앉아 있으니 여기저기 좀이 쑤신 것 빼고는 별 어려움 없이 흘러갔다.
이어서 ‘간식 및 출산 영상 보기’ 시간. 내 관심은 오직 간식에 맞춰져 있었다. 영상은 그냥 간식을 먹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배경처럼’ 틀어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핀처럼 생긴 떡과 과일 약간. 간식 접시를 받아들고 신나서 떡 봉지를 뜯고 냠냠 맛을 보는데, 분위기가 금세 이상해졌다. 잠시 웅성거리던 것도 멈추고 모두 초집중. 맞다, 출산 영상. ‘100% 리얼’ 그대로 보여주는 실제 출산 모습이었다.
아, 떡이 안 넘어갔다. 아무리 배경음악으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하는 노래가 무한반복 되고 있다 해도, 엄마의 몸을 뚫고(!) 아기가 얼굴을 내미는 모습과, 현장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담긴 엄마의 비명은 차마 그 앞에서 떡이나 뜯어먹고 있을 수는 없게 만들었다. 아내가 집에서 보여준 영상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지만, 이렇게 길게(한 20분 동안), 그것도 내 아내가 몇 주 뒤에 바로 이곳에서 저 영상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보는 느낌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었다.
절반 정도의 남편들은 중간중간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랬다. 아내도 겁이 나는지 얼굴이 꽤 상기됐다. 영상이 끝나고 시작한 두 번째 교육시간, 주제는 ‘자연출산의 의미와 순산을 위한 준비자세’였다. 야구선수 강정호와 개그우먼 안선영을 반반씩 섞어놓은 것 같은 얼굴의 조산사 선생님이 경남 사투리를 쓰며 참 재미나게 강의하셨다. 낄낄 웃으며 들었지만 정말 중요한 이야기가 많았다.
자연출산의 의미에 대해 먼저 알려줬는데, 한마디로 ‘임신은 병이 아니고 산모는 환자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엄마의 몸에는 출산을 견뎌낼 만한 힘이 있다. 아이의 몸에도 마찬가지. 스스로 아이를 낳기 힘든 사람이 의료적 도움을 받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조건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병원에서 하는 출산은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꺼내는 것’에 가깝다.
한 자세로 의자에 ‘묶여’ 아이를 낳는 것은 산모가 아니라 의료진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아이가 빨리 나오게 하려고 주사를 놓고, 산모의 회음부를 찢는다. 나올 준비가 안 된 아이를, 산모의 배를 눌러 밀어내기도 하고, 아이가 나오자마자 아직 태맥이 뛰고 있는 탯줄을 잘라버린다. 어두운 엄마 배 속에서 갑자기 눈부신 조명이 있는 수술실로 나온 아이는 엄마의 품에 안기지도 못하고 신생아실로 옮겨진다.
제왕절개 수술이 아니라 병원에서 ‘자연분만’이라 말하는 것에도 이처럼 많은 ‘의료적 개입’이 이뤄진다. 제왕절개 이야기를 하면 입이 더 벌어진다. 우리나라의 제왕절개 수술 비율은 2012년 현재 36.9%. 세계보건기구(WHO)는 15% 이하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안전하게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걸까? 그러면 이게 정말 안전하고 정상적인 걸까?
내 또래 역시 대부분 병원에서 태어난 세대다. 하지만 난 집에서 태어났다. 엄마가 일부러 자연출산을 고집해서 그랬던 것 같지는 않고, 집안 형편이나 뭐 그런저런 이유들이 있었을 것 같다. 어쨌든 엄마는 엄마의 엄마,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집에서 낳았고, 외할머니는 나를 받았다. 내가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다 그래도 된다는 소리를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정말 병원에서 낳는 게 아니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왜 하게 된 건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는 소리다.
미지의 세계가 확 열린 기분이었다. 솔직히 30년 넘게 살면서 단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출산이라는 주제. 아이는 어떻게 태어나야 하고, 산모는 어떻게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이제서야 처음으로 고민하게 됐다. 내 머릿속에 깜깜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주제. 한 곳이 ‘뽕’ 뚫리고 그곳으로 빛이 들어오니, 한 순간에 환해지면서 온갖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공부인가 보다.
‘아기 맞이 과정과 호흡, 출산 자세’까지 세 시간을 꽉 채워 진행된 교육은 언제 시간이 갔나 모르게 흘러갔다. 출산을 쉽게 하기 위한 생활 속의 운동법부터, 아내가 진통을 할 때, 그리고 진통과 진통 사이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상세하게 배웠다. 조산원 출산은 아내와 내가 온전히 우리들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라(조산사 역시 최소한의 개입만을 한다고) 기억하고 연습해야 할 것이 많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낯선 공부지만 즐겁고 뿌듯하다. 나중에 홈런이한테 아빠도 뭔가 열심히 했다고 공치사(?) 할 게 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걸 떠나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는 것 자체가 즐겁다. 역시 아이는 부모를 자라게 한다는 말이 맞나 보다. 다음 번 교육 때는 부부가 함께하는 요가를 배우고 아이에게 편지도 쓴단다. 아, 배움은 즐겁지만 편지는 좀 낯간지럽다. 그날도 긴장깨나 하게 생겼다.
* <난지도 파소도블레>(blog.daum.net/nanpaso) 2014년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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