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가 없다. 사무실 사람들은 눈치 챘을까. 내가 지난 일주일 내내 기모 스판 청바지 하나로 버텼다는 사실을. 여름에서 겨울로 순식간에 계절이 바뀌면서 장롱 깊숙이 곱게 접어둔 겨울옷들을 다시 꺼내야 할 때가 왔다. 어느새 영하를 오락가락 하는 날씨. ‘오늘 날씨에는 그 바지 정도는 입어야겠구만’ 하고 지난해의 기억만으로 바지를 꺼내 입어봤지만, 이럴 수가. 단추가 안 채워진다. 이것도 저것도, 한결같이 작다.
그동안 살쪘다는 소리를 아침 출근길 신호 걸리듯 자주 들어왔지만, 그래도 1년 전에 입던 옷은 아직 입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여름옷도 아니고 조금은 넉넉하게들 입는 겨울옷. 하지만 이게 다 뭔가. 원단의 신축성 덕분에 간신히 버티는 기모 스판 청바지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스란히 장롱으로 다시 들어갔다. 결혼 후 지난 1년 사이에 나는 얼마나 더 살이 찐 것인가.
그러고 보니 몸무게를 달아본 적도 까마득하다. 지난여름까지 수영장에 다니면서 매일 몸무게를 쟀다. 76킬로그램에서 왔다 갔다 했다. 내 키는 175센티미터. 이 정도면 아직 ‘건장한’ 수준 아니겠냐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다. 그때도 며칠 운동 쉬고 삼결살 막 먹으면 78킬로그램까지 나갔으니, 지금도 아마 최소 78킬로그램은 될 것 같다. 80킬로그램까지는 아직 아닐 거다. 그래, 아니어야 한다.
7월 건강검진에서 ‘경도비만’ 진단을 받은 뒤에는 내 스스로도 ‘이제는 건장한 것이 아니라 뚱뚱한 거다’라는 위기감이 들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마침 그때 아내가 임신 두 달째인 것으로 드러났고, 아내의 입덧을 핑계(라고 쓰고 기회라고 읽는다) 삼아 나 역시 무시로 먹어대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임신 일곱 달째인 아내의 입덧은 이미 끝났지만 한껏 무르익은 나의 식욕은 여전히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사실 중간 중간 살을 빼려는 시도는 늘 있어왔다. 지난해 봄, 뜻밖에 병원 신세를 잠시 진 뒤 한 달간 음주, 육식, 분식, 간식을 모두 끊는 혹독한 식이요법으로 무려 4킬로그램을 뺀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올해도 아마 분기별로 한 일주일씩은 다이어트를 결행했을 거다. 고기를 끊은 적도 있고, 야식을 끊은 적도 있고, 단 음식과 간식을 끊은 적도 있고. 하지만 결과는, 지금 내 몸이 말해주는 대로다.
솔직히 이 정도(양치를 하다 치약 거품을 흘리면 배에 묻는 정도)까지만 아니라면, 나는 이 살들을 좀 데리고 살아볼 생각도 했다. 수영장에 다니던 시절처럼 ‘건장한’ 수준이라면. 그래도 사람이 마르고 비실비실해 보이는 것보다는 등빨(?)도 좀 있고 튼튼해 보이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태어나서 20년 정도까지는 평생 작고 약하고 연약하게만 살아온 내 과거(?) 때문인가 보다.
초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에 적혀 있는 내 몸무게는 19킬로그램. 그 나이의 평균 몸무게가 약 25킬로그램이니, 나는 또래 덩치의 80퍼센트밖에 안 됐다. 특기는 잔병치레와 결석. ‘6년 개근’은커녕 한 학년을 개근한 적도 없었고, 멀쩡히 운동장에서 놀다가 누가 찬 축구공에 맞고 쓰러지면 이튿날쯤 깨어나곤 했다. 내내 교실 앞에서 둘째 줄 정도에 앉았고, 6학년이 돼서야 셋째 줄로 밀려날(?) 수 있었다.
그래봤자 중학교 입학할 때 내 키는 150센티미터 정도였다. 키 순서대로 번호를 정하는데, 9번이 되느냐 10번이 되느냐 치열한 전쟁을 벌인 기억이 난다. 9번과 10번의 차이는 ‘1’이 아니다. 한 자릿수냐 두 자릿수냐 하는 문제는 어마어마한 것. 입학식에서 처음 만난 놈(이름이 박태용이었던 것 같다)과 서로 자기가 더 크다고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담임선생님이 판결을 내려주셨다. 선생님 땡큐. 내가 10번이었다.
키는 작아도 몸이라도 튼튼하면 좋으련만 나는 너무 마르고 약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첫 번째 반전이 일어났다. 2차 성징과 함께 성장판이 사력을 다해 폭주했다. 1년 사이에 거의 20센티미터가 큰 것. 그해에만 교복을 두 번이나 새로 해 입어야 했다. 엄마는 그게 다 초등학교 때 약 네 재를 연달아 먹은 사물탕(해물탕 같은 거 아니다. 한약이다.) 덕분이라고 지금도 강조한다. 어느새 키가 170센티미터! 기적이었다.
지긋지긋한 ‘단신월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충분히 감격할 만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이 있었다. 나는 아직 너무 말랐다. 키는 평균 정도 됐지만 여전히 체격이 작고 체력도 약했다. 축구를 무지무지 좋아했지만 몸싸움을 하면 번번이 튕겨나갔고, 남들 뛰는 것 반만 뛰어도 다리에 쥐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간절한 소망이 생긴 것 같다. ‘아, 건장하다는 소리 한번 들어봤으면.’
그러나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고도 건장하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내 목표 몸무게는 75킬로그램이었다. 키가 175센티미터니까 100 빼고 75. 그 정도면 아무도 나보고 말랐다는 말은 못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뚱뚱하지도 않은 ‘딱 좋은’ 몸무게였다. 그 목표를 이룬 때는, 애석하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20대 후반까지도 73~74킬로그램 정도를 유지하던 몸무게가 30대가 되면서 2~3년 사이에 76킬로그램 이상으로 쭉 늘었다. 75킬로그램이었던 때는, 아마 그 과정에서 내가 느끼지 못할 만큼 반짝 하고 지나가버렸을 것이다.
엄마는 요즘 나를 볼 때마다 “몸에 옷을 맞추면 안 된데이. 옷에 몸을 맞차라. 관리 쫌 해라” 하고 신신당부 하신다. 하지만 그것도 일단 바지 단추가 채워질 때 할 수 있는 얘기고. 결국 새 겨울 바지를 샀다. M, L, XL 세 사이즈 가운데 XL로. 아직 겨울은 석 달이나 남았는데 언제까지 청바지 하나만 입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러면서 ‘빌어먹을 요즘 옷들이 스키니니 뭐니 하는 꼬라지로 나와서 내가 이번에는 XL를 샀지만 다른 스타일이라면 나는 아직 L를 입을 수도 있어’ 하고 흥흥거리고 있는 내가 참 못나 보인다.
야식부터 끊어, 아니 좀 줄여, 아니 아니 끊어봐야겠다. 그리고 가을 내내 쉰 운동도 뭐든 다시 시작하고. 며칠 전부터 퇴근길에 버스 두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오는데, 이 버릇도 아무쪼록 꾸준히 이어가봐야겠다. 지금은 일요일 저녁, 토요일에 당직근무 서고 자정 넘어 들어온 나를 위해 아내는 항정살 구이를 준비했다. 일단 이건 아내의 사랑이니 맛있게 먹고,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시작하자. 냄새 좋~다.
* <난지도 파소도블레>(blog.daum.net/nanpaso) 2013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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