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 연재에 선배의 비중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편집부 후배기자 ‘김털보’가 오늘 나한테 보낸 스마트폰 메시지다. 내 아내는 시민기자. <오마이뉴스>에 ‘두근두근 엄마 되기’라는 제목으로 태교일기를 연재하고 있다. 털보기자의 말은 아내의 연재글에서 내 얘기가 점점 줄어들고 다른 얘기가 더 많아진다는 소리인데, 그래도 뭐 좋다. 누가 아내의 글을 보고 무엇이든 얘기해주는 것 자체가 마냥 좋을 뿐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일하는 <오마이뉴스>는 ‘시민기자’ 제도라는 희한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신문이다. 시민 누구나 기자회원으로 가입하면 글을 쓸 수 있고, 평범한 사람들이 쓴 생활글도 기사로 채택해서 톱에 올리는 특이한 신문이다. 내가 하는 일은 바로 시민기자들의 글을 편집해서 독자들한테 보여주는 일. 시민기자가 생산한 기사의 가치를 힘껏 끌어올려서 독자에게 서비스하는, ‘직거래 뉴스 소매상’쯤 되나?
그래서 나는 어딜 가나 “여러분 글 쓰세요” 하고 다닌다. 한 사람이라도 더 글을 써서 시민기자가 되는 것이, 회사의 살림에도 보탬이 되고 내 보람도 높여주고 국익도 끌어올리는 일(!) 아니겠는가. 내 아내가 팔자에 없는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나 때문이다. 그 전에, 나한테 써준 짧은 편지 말고는 아내가 쓴 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실 그냥 툭 던져본 건데, 처음 쓴 글을 보니 뜻밖에 가능성이 보였다.
아내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지난 7월 말, 공교롭게도 아내는 그달 마지막 날부로 사직서를 내둔 상태였다. 다른 일터로 옮기려던 계획은 이룰 수 없게 됐고, 아내는 갑작스레 집에서 놀게(가사노동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일을 하려다 못하게 된 상태라는 말이다) 됐다. 나는 아내가 하루 종일 집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낼지 걱정됐다. 심리적으로 약간은 공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출산에 대해 무슨 준비를 어떻게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잘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써보라고 한 건 그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자기가 어떻게 이 시간을 보냈고 무엇을 생각했으며 어떻게 느꼈는지, 자기만의 목소리를 차분히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권했다. 자기만 알아듣게 일기처럼 써도 좋고, 남들이 보기에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내심 후자 쪽을 바라고 있었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올리면, ‘육아일기’는 많지만 일단 ‘태교일기’는 흔치 않으니 잘하면 ‘인기 연재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김칫국도 조금은 들이켰다.
그래서 8월 초에 첫 글을 쓰게 됐는데, 어라, 생각보다 잘 썼다. 띄어쓰기, 맞춤법 이런 거야 전문가가 아니면 누구나 틀리는 거고, 글 짜임이 꽤 마음에 들었다. 아내가 연재를 시작했을 때 편집부 동료기자들은 ‘내가 완전 뜯어고쳐서 새로 써주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지만, 맹세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아내는 메모도 많이 하고 며칠 동안 여러 번 글을 통째로 새로 쓰면서, 기대보다 훌륭한 글을 써냈기 때문이다.
‘내가 아내의 글을 사전 검열해서 나한테 불리한(?) 내용은 덜어낼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내 아내는 참 착하기는 하지만 바보는 아니다. 부부 사이에 그런 압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상상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단언컨대, 나는 내 아내의 글을 편집할 동료들을 수고를 덜기 위해(진심이다) 띄어쓰기나 맞춤법 정도를 손봐주는 것밖에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그것조차 아내한테 맡기고 아예 봐주지 않기도 한다. 처음 글쓰기를 권한 건 나지만, 아내는 엄연히 자기 이름으로 글을 올리는 독립된 시민기자다. 그뿐이다.
초반에는 매주 글을 올렸는데 요즘은 열흘쯤으로 살짝 주기가 길어졌다. 8월 초부터 두 달 반 동안 쓴 글이 여덟 편. 아내의 글 때문에 나는 욕도 좀 얻어먹었다. ‘처음 산부인과 가는 날 아내 혼자 가게 했다’는 글 때문에 욕먹었고, ‘임신 사실을 모르던 여름에 아내 몸이 너무 뜨거워서(임신을 하면 몸에 열이 많아진다고 한다) 내가 손가락만 잡고 자자고 했다’는 글 때문에 또 욕먹었다. 하지만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게 그런 마음인가. 그만큼 독자들이 아내의 마음에 공감해줬다는 얘기니까 나는 욕먹어도 좋았다.
아내가 글을 써서 제일 좋은 건, 얼굴 보고는 말 잘 못하는 아내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아무래도 그런 만큼 두 사람이 대화하는 시간은 더 많을 거다. 그런데도 직접 말하기는 좀 쑥스럽고 낯간지러워서 말 못하고 넘어가는 이야기들이 분명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아내의 글에서 발견하게 될 때면 ‘글쓰게 하기 정말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태동이 시작되면 아기가 들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태담을 해주기로 결심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쯤 책을 집어 들고, 편하게 기대앉아 우리 신화를 읽어준다. 책을 읽으면 내 목소리를 듣고 있을 홈런이(우리 아기의 태명)가 떠오른다. 어떤 때에는 홈런이가 정말 내 목소리를 듣고 대답하듯이 내 배를 쳐줄 때도 있다. 그럴 땐 책을 잠시 내려놓고 홈런이에게 재미있냐고 묻기도 한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쑥스러운 건지 모르겠다. 곧 익숙해지겠지.
내가 출근하고 아내 혼자 집에 있는 시간 동안 아내는 이렇게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래놓고 정말 쑥스러워서 나한테는 말도 못하고. 아내의 속마음을 이렇게 글로 읽으니 새삼 더 반갑고 고마웠다. 밖에서 어쩌다 강의 같은 걸 하면, 생활글의 의의는 ‘자신과 하는 대화, 타인과 하는 소통’이라고 늘 강조한다. 정말 아내의 글을 통해 내가 소통을 경험하고, 아내는 또 자신의 마음과 대화하고 있는 것 같다.
더불어 아내가 글 한 편을 써내고 그 글이 지면에 실리기까지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편집기자로서 나를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솔직히 하루에 백 건, 이백 건 되는 기사들을 처리하다보면, 모니터에 쭈욱 쌓여 있는 기사들이 그냥 ‘일거리’로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글 한 편을 써 올려놓고 설레며 기다리는 ‘시민기자’ 아내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기사 하나하나가 전부 정성과 의미와 애정의 덩어리가 된다.
아내는 지금 임신 22주째. 앞으로 넉 달 정도는 ‘두근두근 엄마 되기’ 연재를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열흘에 한 번씩 정도라도 부지런히 써둔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아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 고민하고 노력하고 분투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게 되는 거니까. 아, 물론 그동안 기사 원고료도 소중하게(!) 남게 되겠지, 후후. ‘시민기자’ 아내의 ‘애독자’ 남편으로 사는 것, 이래저래 참 즐겁다.
* <난지도 파소도블레>(blog.daum.net/nanpa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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