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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첫 단추'에 대한 노(老)혁명가의 증언

긴 글/리뷰

by 최규화21 2014. 1. 1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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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첫 단추’에 대한 노(老)혁명가의 증언

[서평] 안재구 자서전 <끝나지 않은 길 - 1 가짜 해방>

 


정말 이 책을 기다려왔다. <통일뉴스>에 이 글들이 연재되던 때부터 언젠가 책으로 묶여 나오기만 기다렸다. 팔순 통일운동가의 삶을 한자리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한가. <끝나지 않은 길>은 안재구 선생의 자서전이자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민낯을 세밀히 그린 역사서다.


모두 4권으로 기획된 <끝나지 않은 길>. 1권 <가짜 해방>은 안재구 선생의 중학생 시절인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48년 새해 벽두까지를 그리고 있다(2권 <찢어진 산하>는 1권과 함께 출간, 3권과 4권은 출간 예정이다). 안재구 선생은 1933년 대구에서 태어나 밀양의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안재구 선생의 할아버지는 항일혁명가인 안병희 선생. 책은 안병희 선생의 재판 장면으로 시작한다.


“내가 너를 눈 한 번 깜박 안 하고 잡을 테다!”라고 큰소리치는 검사. 일제 식민지 시대 동포들을 학대한 검찰청 서기였던 그는 해방 이후 검사가 됐다. 그리고 그 앞에는 밀양군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안병희 선생이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분명 해방이 됐고 일제는 물러갔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 현대사에는 해방 이후부터 분단과 전쟁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공백기’가 있다. 안재구 선생은 자신의 삶에서 찾아낸 생생한 증거들을 통해 그 ‘불편한 공백’을 선명하게 채워넣었다. 해방의 기쁨은 석 달도 채 누리지 못했고, 착취에서 벗어날 거라는 농민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일제의 앞잡이들은 미 군정의 계산에 의해 다시 등용됐고, 항일운동가들은 ‘백색테러’의 희생양이 돼갔다.


안재구 선생은 1947년 중학생이 되면서 ‘학생자치회’를 만드는 등 활동을 하다 노동절 집회 사건으로 퇴학당했고, 이에 항거하다가 구속돼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열다섯 청소년에게 ‘비행기 고문’을 하는 장면. 분통이 터졌다. ‘친일 청산에 실패했다’는 문장으로만 알고 있던 역사를 한 사람의 체험으로 생생하게 확인한 것이다. 책을 읽다가 가슴이 뻐근하게 노여움이 번진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현대사의 ‘불편한 공백’ 속에 존재하는 ‘전평’과 인민위원회 등도 안재구 선생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특히 내가 주목한 것은 10월 항쟁. 대구 등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해방 이후 최초의 인민항쟁이 벌어졌지만 그 역사는 지금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대구는 내 고향이다. 60~70년 사이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는 증발해버리고, 지금 그곳은 ‘허수아비도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우익의 땅’이 돼버렸다.


지난가을부터 시작된 현대사 교과서 논란은 여전히 시끄럽다. 좌익과 우익, 친일과 자주로 어지럽게 뒤엉켜 있는 한국 현대사의 첫 단추. 안재구 선생의 책 <끝나지 않은 길-가짜 해방>은 그 ‘어긋난 첫 단추’에 대한 살아 있는 증언이다. 팔순의 노(老)혁명가가 자신의 삶을 쌓아 이뤄낸 역작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풀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끝나지 않은 길 - 1 가짜 해방> 안재구 씀, 내일을여는책 펴냄, 2013년 11월, 500쪽, 2만 원

* <삶이보이는창> 2014년 1-2월호

  


끝나지 않은 길 1 - 가짜 해방

저자
안재구 지음
출판사
내일을여는책 | 2013-11-2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식민과 해방, 분단과 전쟁의 격동기를 헤치며 민주주의와 통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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