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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오월, 멈춰버린 명수의 시계

긴 글/리뷰

by 최규화21 2013. 7. 2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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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오월, 멈춰버린 명수의 시계

[서평] 김해원 역사동화 <오월의 달리기>



미안하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또 5·18이야?’ 하고 생각했다. ‘오월정신 계승하자’는 구호조차 식상해지고 신문의 5·18 기획기사는 매년 같은 소리라 느껴졌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 ‘오월 광주’는 만신창이 가 돼 있었다. 종편에서 왜곡당하고, ‘일베’에서 조롱당하는 ‘오월 광주’를 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마침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참 다행이었다. 동화 <오월의 달리기>는 ‘국민학교’ 5학년 명수의 이야기를 통해 오월 광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먼저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주인공 명수가 겪은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레 그날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는 어느 역 앞 시계방에서 시작된다. 액자식 구성. 두 사내는 수수께끼 같은 대화를 나누며 과거로 이야기를 끌어갔다. 얼떨결에 전국소년체전 육상 전남대표가 된 명수. 5월 말 체전 개막을 앞두고 광주에서 합숙훈련을 시작하는데, 하필이면 라이벌 정태와 같은 방이다. 티격태격 하는 사이 미운정 고운정 들어갈 무렵, 진규와 성일을 포함한 ‘육호 방’의 사총사는 합숙소를 벗어나 잠시 탈출을 감행한다.


그들은 군인들이 시민들을 두들겨 패는 참혹한 광경을 보고 돌아온다. 합숙소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아이들은 일찌감치 불을 끈 방에서 가슴 속에 담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주정뱅이 아버지, 이복형과의 불화, 소아마비 아버지 등. 참극의 목격이 소통과 공감을 이뤄내는 장면이었다. “내라도 명수 니맹키로 그랬을 껴”라고 서로의 아픔을 끌어안는 그들을 통해 오월 광주의 뿌리인 ‘민중들의 유대’를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한 번 내 시선을 멈춰세운 장면은 박코치가 모든 광주시민들을 대신해 억울함을 ‘폭발’시키는 장면이었다. 군인들이 시민들을 총으로 쏘는 모습을 보고 온 박코치가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다”며 울먹이고, 그 순간 성일은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하며 국민교육헌장을 암독한다. 자연스럽게 ‘나라’란 무엇인지, 권력과 국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극적인 장면이다.


그 뒤로 명수에게 생긴 여러 절망적인 일들을 뒤로하고, 명수는 나주 고향집으로 운명적인 달리기를 하게 된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다시 현재로 돌아와 시계방의 두 사내가 나타나는데, “삼십삼 년 동안 멈춰 있던 시계가 이제야 가는군요”라는 말로 드디어 수수께끼는 풀리게 된다. 끝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게 만드는 구성이 참 탄탄하다. 아울러 현장감 있는 사투리와 생생한 장면묘사들이 독자의 시선을 오래 붙잡는다.


맨 뒤에 역사적 사실들을 정리한 부록이 있어, 명수의 이야기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궁금증을 채울 수도 있다. 오월 광주를 왜곡한 이들에 대한 법적 대응이 진행되고 있다 한다. 처벌이야 당연하겠지만, 그 자체로 참 서글픈 일이다. 이런 서글픔이 쌓이지 않도록 ‘기억’을 잘 물려주는 일, 이 책의 가치는 거기 있다.



* <오월의 달리기> 김해원 씀, 홍정선 그림, 푸른숲주니어 펴냄, 2013년 5월, 176쪽, 9800원

* <삶이보이는창> 2013년 7-8월호



오월의 달리기

저자
김해원 지음
출판사
푸른숲주니어 | 2013-05-10 출간
카테고리
아동
책소개
1980년 5월 어느 날 전국소년체전 광주 합숙소, 네 아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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