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점심을 먹고 회사 건물 밖으로 나가 둘레를 한 바퀴씩 걷는데, 그날은 너무 더워서 회사 건물 지하상가를 돌아다니며 ‘실내산책’을 했습니다. 그러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건물 구석 어느 방에서 청소노동자 아주머니가 나오시는 것을 봤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앞을 지나갔는데 방 이름이 좀 이상했습니다. ‘알람밸브실’. “관계자외출입금지”라는 문구도 적혀 있었습니다.
사무실이나 엘리베이터처럼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만 청소하시는 줄 알았는데 이런 곳까지 청소하시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아까 아주머니 손에는 비도 걸레도, 아무 청소도구도 들려 있지 않았습니다. 마침 문이 살짝 열려 있길래 안을 슬쩍 들여다봤습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는데, 바닥에 장판이 깔려 있는 것이 조금 보입니다. “실례합니다” 하고 기척을 내며 조심스레 문을 살짝 더 열어봤는데, 아, 그곳은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의 쉼터였습니다.
반 평이나 될까 말까 한 공간. 벽 쪽으로 사람 몸통만큼 굵은 관들이 빨갛고 파란 색으로 줄줄이 서 있고, 그 앞 바닥에 장판이 깔려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 공간에는 수건이 한 장 널려 있었고 미니 선풍기 한 대가 달랑 놓여 있었습니다. 빛이 들어오는 창도 없고 전등도 없고, 문을 닫으면 빛도 바람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회사 건물은 이 ‘미디어 단지’ 안에서 제일 크다고 합니다. 22층 이 거대한 건물 안에 정말 이분들을 위한 공간이 이만큼도 없어서 ‘알람밸브실’을 빌려 써야 한단 말일까요.
4년 전쯤 읽은 한 대학 청소노동자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찬밥을 여자 화장실 맨 구석 좁은 한 칸에서 둘이 무릎을 세우고 먹었습니다. 학생들이 바로 옆 칸에 와서 ‘푸드득, 뿡~’ 하고 용변을 보면 우리는 숨을 죽이고 김치 쪽을 소리 안 나게 씹었습니다”라는 문장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분들보다는 낫지만, 빛 한 줌,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알람밸브실’ 역시 사람다운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닙니다.
그 뒤로 사흘쯤 지나 기사를 한 편 봤습니다. 전남대 여수캠퍼스에서 한여름 전기사용을 줄인답시고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에 있는 에어컨 선을 강제로 끊어버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청소노동자 휴게실도 있고 거기에 에어컨까지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웠지만, 결국 그분들의 처지도 우리 회사 아주머니들이나 ‘화장실 식사’ 노동자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언제나 ‘타의에 의해’ 가장 먼저 권리를 양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말입니다. 이분들의 삶과 노동의 수준은 곧 우리 사회의 양심과 평등의 척도입니다.
화장실에서 식사를 하던 대학 청소노동자분들에게는 나중에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쉼터”가 생겼습니다. 그에 앞서 “그 상황을 대자보로 붙여서 온 학교가 다 알게” 알려준 학생들의 노력이 큰 힘이 되었다 하고요. 우리 회사 건물 청소 아주머니들에게도 햇빛도 들고 바람도 통하는 쉼터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대자보부터 써야 할지 뭘 해야 할지, 아주머니들께 먼저 물어봐야겠네요.
* <리얼리스트100>(www.rea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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