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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 더 촛불을 향해 가겠습니다

긴 글/칼럼

by 최규화21 2013. 7. 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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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난리입니다, 난리. 국가의 안보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국정원이 아니라,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정치에 개입해서 국민들에게 걱정만 끼치는 ‘걱정원’이 돼버린 그곳, 국가정보원 말입니다. 검찰이 작성한 ‘범죄일람표’만 해도 무려 2120쪽입니다.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적국’과 심리전을 벌이라고 세금으로 연봉 따박따박 줬더니만, 자기네 국민들을 상대로 정신병자 수준의 심리전을 맹렬히 하고 있었습니다.


기막힌 일은 또 있었죠. ‘2010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멋대로 공개해버린 것 말입니다. 여당 지도부에게는 이미 지난해에 ‘은밀히’ 보고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습니다.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랬다는데, 명색이 ‘국가’정보원이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국가의 기밀이고 뭐고 ‘청와대도 모르게’(일단 자기들 말로는) 까버린 것입니다. 정말 뭐 하는 인간들인지, 국민들의 속을 연타석으로 까뒤집어놨습니다.


그래서 ‘속이 뒤집힌’ 국민들이 나섰습니다. 6월부터 시작된 국내외 크고 작은 단체들의 시국선언은 <오마이뉴스>에서 확인한 것만 100여 건.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겁니다. 그리고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였습니다. 지난 주말(6일) 서울시청 광장에만 1만여 명이 모였고, 부산·대구·광주·대전·창원 등 전국의 주요 도시들과 미국·캐나다·프랑스·호주 등 해외에서도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여당이 마지못해서라도 국정조사에 합의한 것은 바로 이렇게 들고일어난 국민들이 무서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등 떠밀려 시작한 국정조사는 시작부터 삐걱거립니다. 국정조사특위 위원 구성을 놓고 여야는 서로 ‘너 나가라’고 싸우며 험난한 앞길을 예고했고, 때 맞춰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이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해주기를 바란다”며 사실상 면죄부를 줘버렸습니다. 죄 지어서 벌 받을 일만 남은 죄인한테 ‘네가 알아서 반성하고 앞으로 잘해’라고 말한 꼴입니다. 역시 믿을 건 국민들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국민들마저 차츰차츰 관심을 거둬버린다면, ‘국정원 쿠데타’는 또 한 번의 ‘성공한 쿠데타’로 기억될 것입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거나, 시국선언에 함께하거나, 집 앞에 작은 펼침막이라도 내걸거나, 그렇게 싸우는 사람들의 소식을 스마트폰 메신저와 SNS로 열심히 퍼나르거나, 촛불을 지키는 시민단체와 정당과 언론을 후원하거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밖에도 참 많습니다. SNS상에는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한줄 시민성명’ 운동도 활발하더군요. 국가 정보기관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이 못난 정치, 후진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서 딱 ‘한 발짝’씩만 더 움직이면 됩니다.


이 글은 저 혼자만의 ‘시국선언문’이기도 하고 혼자만의 ‘결의문’이기도 합니다. 언론사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기사를 만들고 전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자연스레 돌아보게 됩니다. 한 발짝 떨어져 구경만 하고 이래라저래라 논평하는 일에만 재미를 들인 것은 아닌지. 저 역시 한 발짝 더 움직여야겠습니다. 이 저녁에도 촛불을 들고 광장을 지키는 사람들 곁으로 말입니다. 이 모니터 밖에도, 이 글 밖에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 <리얼리스트100>(www.rea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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