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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의 건강, 이런 병원에 맡겨야 하나요?

긴 글/칼럼

by 최규화21 2013. 6. 1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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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갔습니다. 건강검진 결과 조금 안 좋은 곳이 발견돼서 검사를 더 받아보기 위해서였죠. 조마조마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진찰을 받고 다음 검사를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병원 입구에서 큰 펼침막 앞에 자리를 깔고 앉은 노동자들을 봤습니다. 우리 엄마의 몸을 검사하고 치료해줄 이곳에서 어떤 일이 생긴 것인지, 문득 불안한 마음도 들어 더 궁금해졌습니다.


“비정규직 해고철회”라는 큰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농성 148일째”라는 숫자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간 곳은 대구 삼덕동에 있는 경북대병원 본원. 비정규직 해고가 일어난 곳은 칠곡 분원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14일 칠곡 경북대병원은 2년의 계약기간이 만료된 비정규직 노동자 40명을 대상으로 무기계약직 신규채용 시험에 응시하도록 하고, 그중 6명을 해고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대통령선거 유세가 한창이던 때입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도 기억납니다.


노조는 반발했습니다. 새해 초부터 병원장을 항의방문 하고 이어 천막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본 “148일째”라는 숫자의 의미를 알겠습니다. 그런데 노조의 항의가 계속되는데도 병원은 또 다시 비정규직을 해고했습니다. 2월 초 병원은 2차 업무지원직 지원공고를 통해, 먼저 해고된 6명의 빈자리를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우고 2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추가로 해고한 것입니다.


사실 사태는 2010년 칠곡 경북대병원이 개원할 때부터 예견됐습니다. 병원은 정부에서 정규직 TO를 충분히 주지 않는다면서 진료보조 업무를 외주화하려 했습니다. 노조의 반대에 병원은 일단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정규직 TO를 확보해 점차 정규직화 하겠다 약속했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점차 정규직화”가 아니라 “줄줄이 해고”로 드러났습니다. 앞으로 2년의 계약기간이 만료하는 노동자들의 미래 또한 어두울 뿐입니다.


병원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병원 측의 성명이나 언론 보도에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노동자들이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거꾸로 묻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환자들의 생명”을 왜 2년짜리 ‘하루살이’ 노동자들에게 맡겨두고 있는지 말입니다. 2년 뒤면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갖기란 힘듭니다. 일자리에 대한 보장이 있어야 일에 대한 의욕도 생기고 애정도 커집니다.


“환자들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는, 어느 곳보다 안정적으로 일에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노동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2년 뒤면 잘리고 없을 사람들이 아픈 우리 엄마를 맞이하고 치료를 도와주는 것을 보호자인 저는 절대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칠곡 경북대병원이야말로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비용절감이라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불쾌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입니다. 다음번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갈 때는 병원 입구에서 농성 펼침막이 사라져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응원합니다.



* <리얼리스트100>(www.rea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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