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마지막 주말이었습니다. 장마 사이 반짝 햇볕이 따갑던 날, 저도 교외로 피서를 한번 나가봤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바닷가는 엄두가 안 나고,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한 나절 시원하게 앉아 쉬다 올 수 있는 근교의 계곡으로 알아봤습니다. 가까운 파주에 보광사 계곡이라는 곳이 있다 하더군요. 물이 맑고 깊지도 않아 발 담그고 쉬기에 안성맞춤이라고들 글을 올려놨더군요.
점심을 먹고 출발했습니다. 미리 알아본 대로 주차장이 참 넓어서 좋았지만, 생각보다 차가 많아서 놀랐습니다. 간식과 책, 돗자리를 들고 주차장 아래쪽에 있는 계곡으로 다가갔습니다. 졸졸졸 시원한 물소리 대신 왁자지껄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먼저 들린 것쯤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곡의 모습이 드디어 눈에 들어온 순간, 물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빼곡한 평상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근처 식당에서 설치한 것들이었습니다. 계곡 가라면 또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계곡 안에, 바로 계곡 물이 흐르는 곳 위에 다닥다닥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평상을 하나씩 차지하고 음식도 먹고 살살 물장구도 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식당 안에서 먹는 것보다 계곡 물에 발 담그고 시원하게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 당연히 더 좋겠죠. 그런데 식당 음식을 사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요? 계곡을 점령한 식당 평상들 때문에, 저 같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져버렸습니다.
백숙이나 닭볶음탕 같은 음식은 5만 원 안팎이라고 합니다. 저 평상에 앉아서 계곡 물에 발이라도 담그려면,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라도 억지로 시켜 먹어야 합니다. 거대한 ‘야외식당’이 돼버린 계곡. 사람들은 평상에 휴대용 가스레인지까지 두고 음식을 끓여 먹습니다. 한쪽 옆에는 식당 직원들이 테이블을 설치해두고 수저나 반찬 같은 걸 갖다줍니다. 바로 옆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 때문에, 계곡 한쪽 틈에 앉아 있는 것도 참 ‘뻘쭘’합니다.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그 옆에서 물장난을 치는 것은 ‘민폐’일 뿐입니다.
식당 평상이 없다면 누구나 저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재미나게 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곡 전체가 야외식당이 되는 바람에, 정당하게(?) 돈을 주고 앉아서 밥을 먹는 사람들 틈에서 민폐를 감수하며 눈치껏 놀아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결국 저 같은 사람들은 계곡 상류나 하류에 사람이 드나들 틈이 있나 찾아 헤매거나, 계곡과 주차장 사이 둑에 앉아 계곡 아래 사람들을 구경이나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먹고사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음식 값을 받고 음식이 아니라 계곡을 파는 저 식당들에게도 저마다 사정은 있겠죠. 하지만 ‘모두의 것’인 자연을 제 것처럼 이용해 ‘나 혼자’ 먹고살겠다는 천박한 이기심은 참 고약하기만 합니다. 갑자기 지난 몇 년간, 온 강을 제 것처럼 뒤집고 파고 막으며 토건재벌들만 먹고살게 해주겠다 설치던 분의 얼굴까지 떠오릅니다. 더위를 피해 갔다가 우리들 속의 ‘작은 이명박’만 확인하고 오는 피서가 되지 않기를, 씁쓸한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 <리얼리스트100>(www.rea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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