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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사촌형은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긴 글/칼럼

by 최규화21 2013. 5. 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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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산업시설 견학이라는 걸 가봤습니다. 기업에서 기자들을 초대해 생산시설을 둘러보게 하는 것입니다. 오전에 한 곳, 오후에 한 곳, 재벌 그룹 계열의 공장 두 곳을 돌아봤습니다. 공장 부지가 여의도 크기의 몇 배라느니, 한 해 생산량이 몇 천만 톤이라느니, ‘근로자’ 몇 천 명에 협력업체와 지역사회에 걸쳐 몇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느니 하는 자랑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싸늘해졌습니다. 그 공장에는 제 사촌형이 ‘협력업체 직원’으로,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홍보팀 직원은 1년 내내 1초도 쉬지 않고 공장이 돌아간다 자랑했습니다. 지난 설에도, 추석에도 사촌형의 얼굴을 보지 못한 까닭을 알게 됐습니다. 그날도 사촌형은 일터에 있는지,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초로 공장 내 폐기물에서 전력을 얻는 친환경 발전시설을 갖췄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역시나 세계 최초로 야구장만 한 돔을 몇 개나 지어 원료를 저장한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몇 조 원을 또 투자해 새로운 시설을 짓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저는 사촌형의 안부가 궁금할 따름이었습니다.


정규직 직원만큼이나 많다는 ‘협력업체 직원’들.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두 곳의 공장을 돌아보는 동안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워낙 자동화 시설이 많이 갖춰진 까닭도 있었고, 노동자들 역시 낯선 이들이 불쑥 나타나 그들을 구경하는 것을 원치는 않았겠지요.


오후에 들른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모습을 몇몇 볼 수 있었습니다. 생산라인을 따라 노동자들이 모여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데군데 “금원”, “신창” 하는 식의 간판들이 작게 붙어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작업복도 제각각입니다. 조끼만 같은 것으로 입고 있었는데, 조끼에는 그 재벌 기업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사내하청, 파견, 비정규직…… 그들 말로는 ‘협력업체 직원’들이었습니다.


견학을 마치고 돌아와 기사를 검색해봤습니다. “○○○○ 노동자, 발암물질 무방비 노출”, “○○○○ 사내하청업체, 고용불안 빌미로 부당노동행위”, “○○○○ 잇단 사망사고... 특별근로감독 요구” 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줄줄이 떴습니다. 오전에 방문한 공장에서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6명의 노동자들이 숨졌다는 것도, 그리고 그 기업이 노동건강연대 등이 지난달 선정한 2013년 ‘최악의 살인 기업’ 특별상 후보였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왜 미리 알고 가지 못했는지, 제 자신이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자부심 넘치던 홍보팀 직원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건물 밖까지 나와서 우리를 맞아주던 이사니 상무니 하는 ‘높은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그날 끝내 사촌형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것처럼, 그들 눈에도 ‘협력업체 근로자’ 아니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됐습니다. 기자로서 참 한심한 저입니다만, 그래도 이 일을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그들이 돈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눈을 갖게 될 때까지 말입니다.


* <리얼리스트100>(www.rea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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