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내는 경기도 부천에 있는 한 지역아동센터 교사로 일합니다. 그곳에서는 기초수급대상 가정이나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등의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느 아이들이나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노는 게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아내가 일하는 곳에는 아프거나 다치는 것을 더더욱 조심해야 할 아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자녀, 이른바 ‘불법체류’ 아이들 말입니다.
아동센터가 공단 지역에 있다 보니 이주노동자 자녀들도 꽤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미등록 노동자’일 경우, 아이들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가 없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지만, 출생신고를 할 수 없으니 ‘없는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교육권·의료권·보육권 등 그 어떤 권리도 이들에게는 없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빌려 다른 사람의 의료보험 혜택을 ‘훔쳐야’ 합니다. 그것도 못한다면 모든 치료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데, 대개의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냥 참고, 약만 사먹으며 버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딱한 사정을 알고 몰래 도움을 주는 의사들도 있다고 하지만, 그런 의사들을 만날 수 있는 이들은 정말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아이가 기침만 한번 해도 병원에 안고 가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아이가 아픈 것만큼 엄마들을 긴장시키는 일이 없지요. 하지만 바로 당신의 이웃에는 병원비 때문에, 의료보험 때문에, 아픈 아이를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모든 ‘한국인’ 아이들에게 보장되는 보육혜택도, 이들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입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부모들 때문에, 아이들은 대책 없이 방치되기 십상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추방의 공포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아이들 역시 ‘불법체류’ 사실이 드러나면 본국으로 추방됩니다. 본국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사람으로 자란 아이들에게 그 나라는 낯설기만 할 뿐입니다. 실제로 지난해에 몽골 출신의 미등록 이주민 자녀가 ‘홀로’ 본국으로 추방된 사례가 있습니다. ‘불법사람’이라는 낙인으로, 아이들에게까지 너무 가혹한 삶을 강요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습니다. 그것은 ‘망명, 난민, 이주아동 등 어떠한 경우에도 모든 아동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으로, 유엔은 그동안 우리 정부에 여러 차례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장토록 권고했습니다. 굳이 ‘국격’이라는 말까지 거론할 것 없이, 누구의 아이들이든 건강하게 자라고, 안전하게 돌봄받고, 제때 배우며 살게 보장해주는 게 ‘인간의 마음’ 아닐까 싶습니다.
5월이 코앞입니다. 1일은 노동절, 5일은 어린이날이네요. 이주노동자인 부모로도 모자라 그들의 아이들에게까지 ‘합법-불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대한민국. 그들의 ‘일할’ 권리와 그 아이들의 ‘살아갈’ 권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한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 <리얼리스트100>(www.rea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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