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월 17일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을 임명함으로써 첫 내각 구성이 마무리됐습니다. 취임 52일 만입니다. 인사청문회 당시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동문서답만 하며 자질 논란을 불러일으킨 윤진숙 장관. 하지만 다른 부처의 장관 후보자들에 비하면 ‘자질 논란’쯤은 귀여운(?) 수준이었습니다. 자질 검증은커녕 비리 의혹만 캐묻는 데도 청문회 시간이 모자랐으니까요.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병역 비리는 3대 기본 의혹이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여기에 세금 탈루에 전관예우, 각종 이권 개입, 국적 논란, 논문 표절, 성접대, 성희롱, 재산신고 누락, 공금 유용, 과태료 채납, 채용 비리 등, 종류만 나열하기에도 숨이 찰 지경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의 ‘인신공격’ 청문회를 문제 삼기도 했지만, 이들은 공직의 전문성을 논하기 이전에 인신의 흠결이 너무 커 보입니다.
줄줄이 낙마하는 장관 후보자들을 보면서 ‘어디서 이런 사람들만 골라서 뽑아왔나’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참담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의 수준이 바로 우리 국민의 수준이라는 것 말입니다. 비리 의혹으로 낙마한 장관 후보자들은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몸소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명문대에 들어가면 병역은 요리조리 피해가고, 학연, 지연, 혈연을 동원해 요직에 오릅니다. 그리고 어디에 땅값이 오를 거라는 정보를 공유하며 집이든 땅이든 사고팔아 부를 늘리고, 자식에게도 그것을 물려주기 위해 위장전입으로 ‘쉬운 길’을 열어줍니다. 세금을 피하고 논문을 적당히 베끼고 지위를 이용해 여기저기 이권에도 손을 대면서 부를 더하고 권력을 쌓습니다. 그런 삶을 우리는 ‘성공’이라 불러온 것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그런 성공을 ‘속으로’ 긍정해왔습니다. 정직하게 살면서 굶어죽느니 적당히 융통성을 발휘하며 잘사는 게 낫다 생각해왔습니다. 이 정도는 남들도 다 하는데, 능력 없어서 못하는 놈이 바보라고 비웃으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왜곡된 ‘성공신화’가 이명박시대와 박근혜시대를 만들었습니다. 오물 투성이 인사들을 내세워놓고는 오히려 야당을 탓하고 국민을 나무라는 시대. 보수세력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근대화 이후 ‘비틀어진 50년’이 지금의 뻔뻔한 시대를 만든 것입니다.
노무현정권이 들어서는 데는 ‘반칙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기대가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지난 대선 때의 안철수 열풍도 비슷한 맥락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정치인 한두 명이 별처럼 반짝 등장한다고 해서 이 비뚤어진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머릿속에 자리잡은 비뚤어진 성공신화, 왜곡된 성공의 기준을 바꿔내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묻지 마 성공’. 두 세대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단단히 다져지고 이어져온 이 가치를 깨뜨려야겠습니다. 이 ‘가치전쟁’의 과정은 박근혜정부 내각 구성에 걸린 52일과는 비교도 안 되게 지난할 것입니다. 원칙과 상식을 품은 이들이 지치지 말고 싸워나가기를, 매일 작은 승리라도 맛보며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 <리얼리스트100>(www.rea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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