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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성기라니... '그딴 거 없다!'

긴 글/생활글

by 최규화21 2013. 4. 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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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나는 서른두 살이 됐다. 올해는 내가 은근히(?) 기다려오던 해다. 학교를 졸업하거나 정년이 되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올림픽도 월드컵도 없는 해를 내가 왜 기다려왔을까. 그건 바로 올해가 내 인생의 ‘전성기’로 예고된 해이기 때문이다.


스물다섯인가 스물여섯인가 그때쯤으로 기억한다. 별로 뜻하지 않게 사주카페라는 곳에 가게 됐다. 스포츠 신문에 실리는 ‘오늘의 운세’ 정도나 재미로 보던 내가 ‘내 돈 주고’ 사주를 보겠다고 거길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았을 거다. 사주카페도 카페니까 그냥 차만 마시고 나가도 될 텐데, 막상 들어가니 호기심이 또 생겨서 재미로 한번 봐달라고 했던 것 같다.


사주카페 사장님과 마주 앉았다. 생년월일시, 사주를 말해주고 대화를 시작했다. 난 그냥 시큰둥했다. ‘물가에 가지 마라’, ‘어느 쪽에서 귀인이 나타난다’ 하는 소리만 할 거면 그냥 그만 듣겠다고 얘기하리라 생각도 했다. “초년에 고생이 많았겠다”는 소리에 잠깐 솔깃했을 뿐, 나머지는 거의 다 흘려들었다. 사장님이 나를 보고 “예술 쪽으로 일하실 분”이라고 하고는 확인 차 내 전공을 물었다. 국문과라는 내 대답에 사장님이 “역시 그렇다”며 스스로 감탄하는 걸 보고는 피식 웃기도 했다.


하지만 흘려들을 수 없는 얘기가 딱 한마디 있었다. “스물여덟 살부터 인생의 문이 열리고 서른두 살에 인생의 전성기가 온다”는 말! 지금은 어지럽고 혼란스럽지만 금세 인생이 활짝 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는 내가 군 생활을 마치고 복학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어느새 졸업은 코앞이고 해먹을 것은 뭔지 몰라 막막하던 때 아닌가. 그런 내게 ‘전성기’라는 단어는 깊이 각인되고 말았다.


시간은 흘러 스물여덟 살이 됐다. 이제 인생의 문이 열릴 때! 나는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언제쯤 인생의 문이 열릴까 문득 문득 궁금해하며 한 해를 보냈다. 스물아홉, 서른, 서른하나. 그 사이에 직장을 옮겨 신문사에서 일하게 됐지만 딱히 ‘이게 바로 인생의 문이로구나!’ 하고 느낀 때는 없었다.


‘이게 지금 다 열린 건가? 요 정도 열린 걸로 전성기를 어떻게 맞으란 말인가!’


서른둘이 되는 올해를 앞두고, 지난해 말에는 한동안 돌팔이(?) 사주카페 사장을 욕하며 보내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그 소리도 다 뻔했다. 남자 대학생이 군대 다녀와서 졸업하고 취직하는 게 대개 스물여덟 전후. 서른둘쯤 되면 직장에서 ‘대리’ 직함도 달고 경력직으로 어디 옮길 마음도 좀 먹고 그럴 때 아닌가. 보통 그때쯤 돈 모아서 결혼도 하고 집도 얻고 차도 사고 할 테니, 굳이 사주팔자 짚어보지 않고 대충 때려잡아도 ‘스물여덟 인생의 문, 서른둘 전성기’ 정도의 발언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13년, 드디어 서른둘이 됐다. 사주카페 사장의 지극히 ‘사회경제적’인 예언의 실체를 깨달은 뒤였지만, 나는 미련하게도 또 전성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 1월 1일부터 뿅 하고 뭔가 터지지는 않을 것이니, 기다렸다. 사주로 본 운명이니까 우리 민족의 전통에 맞춰 음력 설부터 시작될지도 모르다고, 또 기다렸다. 진정한 새해의 시작은 새 봄부터니까 3월이 되기를, 다시 기다렸다. 하지만 3월마저 저물고 4월이 된 지금, 전성기도 안성기도 변성기도, 그 무엇도 내게 오지 않았다.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그 사주카페 사장님의 말처럼, 정말 지금이 내 전성기라면. 지금이 전성기고, 앞으로는 쭉 내리막길만 있는 거라면! 서울도 아닌 경기도의 열다섯 평 빌라 전세가 내 전성기라면, 나는 얼마나 더 가난해질 거란 말인가. 원고료 받고 글쓰는 처지도 못 되고 인기도 없는 블로그 글만 억지로 억지로 쓰는 게 내 전성기라면, 내 인생은 얼마나 더 흐지부지될 것인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니, 내가 너무 한심해진다. 그까짓 전성기가 다 뭐라고 ‘이 정도가 전성기라니, 인정할 수 없어!’ 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건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귀촌을 할 거라는 둥, 느리게 살 거라는 둥, 못나게 살 거라는 둥, 전성기 같은 낱말과 전혀 상관없이 살 것처럼 글을 쓰고서는 말이다. 말 나온 김에 지난해 봄과 여름에 쓴 그 글들을 찾아보니, 정말 쪽팔릴 만하다.


“속도와 경쟁의 시계를 거부한 채 거짓말하지 않는 노동을 증명하는” 귀농운동가들의 삶이 “무엇보다 용기 있고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면서, “행복은 성공만큼 빠르지 않다”며 “누가 뭐래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느리게 살 테다”라고 잔뜩 결의를 드높였지 뭔가. 또 “울퉁불퉁 거칠고 만만한 시 한 편씩 남기며 나는 그냥 못나게 살란다”라고 아예 전성기 따위 없이 ‘못난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까지 했다니!


집이야 월세 못 내서 전전긍긍하는 것도 아니니 이만하면 됐고, 글쓰는 일도 나 좋아서 하면 그만이지 무슨 원고료 팍팍 받는 ‘작가님’ 소리가 듣고 싶었던 건가. 겉으로는 욕심 없이 허허 하고 살 것처럼 글을 써놓고 속으로는 ‘내년이면 전성기라고 했으니까 엄청 잘나가겠지? 오예!’ 하고 김칫국물을 들이켜고 있었다니, 보통 한심한 게 아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인생의 걸음걸음에 글을 남기는 걸까. 내 글이 나를 가르쳤다.


전성기. “형세나 세력 따위가 한창 왕성한 시기”란다. 나도 살다보면 그런 때 한 번쯤 없으라는 법은 없겠지. 하지만 그게 돈 잘 벌고 이름 날리는 ‘뻔하디 뻔한’ 전성기라면, 그런 것쯤 기다리지 않으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형세나 세력 따위’는 왕성한 날도 있고 안 그런 날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내 인생의 기준을 내가 세우고 그 안에서 스스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지혜와 고집만은 매일같이 늘 왕성했으면 좋겠다.



* <난지도 파소도블레>(blog.daum.net/nanpa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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