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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선물해준 새해 목표, "불편하게 살기"

긴 글/리뷰

by 최규화21 2012. 3. 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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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선물해준 새해 목표, “불편하게 살기”

[서평] 녹색연합 스무 살의 비망록 <아름다운 지구인>



MB정권이 ‘녹색성장’을 참칭하며 '녹슨 성장'을 밀어붙일 때, 아마도 가장 열불이 났던 사람들은 이들일 것이다. ‘한국의 그린피스’, 녹색연합(상임대표 박경조). 1991년 배달환경연구소로 시작해 1996년 녹색연합으로 이름을 바꾼 이 단체가 지난해로 출범 20년을 맞았다. <아름다운 지구인>은 스무 살 청년이 된 녹색연합이 지난 20여 년 동안 눈과 발과 마음으로 겪은 것들을 기록한 한국 환경운동의 비망록이다.


한국 환경운동사에 굵직굵직한 선을 남겨온 이들이지만, 환경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부끄럽게도 2004년이 돼서야 이들의 존재를 알았다. 바로 ‘천성산 도룡뇽 소송’ 때였다. 경부고속철도 터널 공사로 파괴될 생명의 삶터를 지키기 위해 3년 동안 350일이 넘게 단식을 한 지율스님의 곁에 바로 녹색연합이 있었다. 도룡뇽 소송을 비롯해 그동안 녹색연합이 해온 실천들이 18가지 환경운동 이슈로 정리돼 이 책에 담겨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데는 좀 창피한(?) 우연이 작용했다. 고향으로 설을 쇠러 가려고 가방을 싸다가 귀성길의 지루함을 달래줄 책이나 한 권 가져가자고 생각했다. 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책상 위에 놓인 책들을 대충 들춰보다가 올컬러에 사진도 많고 글씨도 큼직큼직하길래 그냥 가방에 집어넣은 것이다. 그렇게 우연히 고른 책 속에 나는 몰랐던 열 살배기 사육곰이 있고, 설악산 산양이 있고, 백령도 물범이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우연은 한 번 더 있었다. 백두대간 생태축을 단절시키고 예산을 낭비하는 도로 건설 문제를 지적하는 ‘다시 그리는 지도’ 편을 읽던 중이었다. 500미터 이내에 옛 3번 국도와 새 3번 국도, 그리고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세 개의 길이 있는 이화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 길 앞에 터널이 보이길래 책장을 덮고 무심코 표지판을 보았는데, 그 터널이 바로 이화령 터널이었다.


터널을 지나는 내내 머릿속이 멍했다. 수많은 터널을 뚫어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이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한 뒤로, 서울에서 내 고향까지 가는 시간은 20분 정도가 줄었다. 내게 20분의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이 산의 그 많은 생명들이 보금자리를 잃고 더러는 도로 위에서 로드킬을 당했으리라 생각하니, 갑자기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 뒤로도 터널을 몇 번 더 지나는 동안, 쇳덩이를 얹어둔 것처럼 가슴이 무거웠다.


에너지 자립형 공동체를 소개하는 ‘마을이 지구를 구한다’ 편을 끝으로 책장을 덮으면서, ‘내가 죄가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작은 이익과 편리 때문에 생명을 죽이고 없애는 세상. 나의 무식과 침묵도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 분명히 큰 도움을 줬을 것이다. 이제 좀 알겠다. ‘녹색의 삶’이란 다른 생명을 위해 불편함을 기꺼이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불편하게 살기!” 임진년 새해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아름다운 지구인> 녹색연합 씀, 북센스 펴냄, 2012년 1월, 294쪽, 1만5000원



아름다운 지구인

저자
녹색연합 지음
출판사
북센스 | 2012-01-20 출간
카테고리
기술/공학
책소개
『아름다운 지구인』은 지난 20여 년 동안 녹색연합에서 일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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