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시의 하늘 위를 나는, 시인의 시간
[서평] 도종환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받은 지 두 달이나 지난 이 책을 뒤늦게 읽게 된 것은 ‘이소선’ 때문이다. 9월 3일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어머님이 돌아가셨고, 나는 그날 밤 두 편의 추모시를 썼다. 하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고인의 영전에 바치기는커녕 어디 보여주지도 못하던 차에 이 책에 실린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고 박영근 시인에게 바친 <못난 꽃>. 떠난 이의 삶이 남은 이의 슬픔 속에 되살아나는 것을 보며 나는 시를 다시 배웠다.
도종환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인생의 시간을 하루에 빗댄다면, 나의 오늘은 지금 몇 시쯤일까. 이 시집에서 도종환은 민족민중문학운동에 투신한 뜨거웠던 열두 시와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해직과 구속의 가시밭길을 걷던 오후 한 시, 그리고 병든 몸으로 산에 들어가 새로운 길을 만난 오후 두 시를 지나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서서 인생을 돌아보고 있다.
도종환이라는 이름을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어떤 이들은 <접시꽃 당신>으로 대표되는 서정시인으로만 기억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의 운동권 시인으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서 있는 도종환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세계에 대한 관념은 조금 변화했지만, 그늘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들에 대한 사랑은 더욱 뜨거워졌다.
흘러가는 시간이 도종환의 사랑을 그만큼 단련시켜왔음을 보여주는 시는 <젖>이다. 지진으로 무너진 도시의 돌 더미 속에서 갓난아이를 구한 여성 구조대원. “의사를 찾거나/ 물 가진 사람 없어요 소리치기 전에” 그녀는 젖을 꺼내 아이에게 물렸다. “여진도 요동을 멈추고/ 우주도 숨을 쉬지 않은 채 잠시 그대로” 있는 그 시간, 그녀를 “살아 있는 모든 아이의 어머니”를 노래하는 그의 시간은 여전히 ‘열두 시’다.
용산에서 “연초부터 벼랑으로 몰린 사람들이/ 망루를 오르다 불에 타 죽고” “망각의 상자 속에 갇혀 이승에 방치되어” 있던 그 시간(<그해 여름>)에도, “발기한 중장비들이 으르렁거리며” “어린 몸을 밤낮없이 파헤치고 들쑤셔놓던 날”을 겪은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시간(<강>)에도 마찬가지다. 어린 꽃들이 “징벌적 통보를 받고 차등 대우를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탈락하고 천천히 잊혀간” 그 시간(<카이스트>)에도 도종환의 시간은 어느새 뜨겁게 되돌아와 있다.
부디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를 바보처럼 ‘네 시’로만 읽지는 말았으면 한다. 활자가 아니라 행간에 담긴 시인의 삶을 가슴으로 함께 곱씹다보면, 앞으로 도종환의 인생이 다섯 시로, 여섯 시로 ‘뻔하게’ 이어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입체니까. 여전히 그를 꿈꾸게 하는 사랑이라는 절대적인 힘은 그의 다음 시간을 두 시의 땅 속으로 흐르거나 열두 시의 하늘 위로 날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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