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
도종환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쓰촨성의 한 마을
돌더미 밑에서 갓난아이 하나를 구해냈지요
누구네 집 아이인지 부모 중 누구라도 살아남았는지
그런 걸 먼저 확인해야 하는
긴 절차를 향해 아이를 안고 달려가다
그녀는 벽돌과 씨멘트 더미 위에 앉아서
재가 뽀얗게 내려앉은
제복 윗옷 단추를 하나하나 끌렀지요
천막 사이를 돌며 의사를 찾거나
물 가진 사람 없어요 소리치기 전에
그녀는 젖을 꺼내 아이에게 물렸지요
놀람과 두려움과 굶주림으로 컥컥 막히는 식도
억눌린 어린 뼈와 상처 사이를 비집고 나오다
끊어지곤 하는 울음을 무엇으로 달래야 하는지
그녀는 더 생각하지 않았지요
먼지 묻은 땀방울인지 눈물인지
젖을 빠는 아이의 이마에 똑똑 떨어졌지요
가슴을 다 내놓고 폐허 위에 앉아
그녀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
여진도 요동을 멈추고
우주도 숨을 쉬지 않은 채 잠시 그대로 있었지요
아직 살아 있는 모든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
-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도종환 시집, 2011, 창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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