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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 도종환

시/시 읽기 세상 읽기

by 최규화21 2011. 9. 1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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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종환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쓰촨성의 한 마을

  돌더미 밑에서 갓난아이 하나를 구해냈지요

  누구네 집 아이인지 부모 중 누구라도 살아남았는지

  그런 걸 먼저 확인해야 하는

  긴 절차를 향해 아이를 안고 달려가다

  그녀는 벽돌과 씨멘트 더미 위에 앉아서

  재가 뽀얗게 내려앉은

  제복 윗옷 단추를 하나하나 끌렀지요

  천막 사이를 돌며 의사를 찾거나

  물 가진 사람 없어요 소리치기 전에

  그녀는 젖을 꺼내 아이에게 물렸지요

  놀람과 두려움과 굶주림으로 컥컥 막히는 식도

  억눌린 어린 뼈와 상처 사이를 비집고 나오다

  끊어지곤 하는 울음을 무엇으로 달래야 하는지

  그녀는 더 생각하지 않았지요

  먼지 묻은 땀방울인지 눈물인지

  젖을 빠는 아이의 이마에 똑똑 떨어졌지요

  가슴을 다 내놓고 폐허 위에 앉아

  그녀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

  여진도 요동을 멈추고

  우주도 숨을 쉬지 않은 채 잠시 그대로 있었지요

  아직 살아 있는 모든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



  -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도종환 시집, 2011, 창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저자
도종환 지음
출판사
출판사 | 2011-07-1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치열했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를 지나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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